경주 최씨의 시조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은 신라 말기의 대표적인 학자, 문신, 그리고 뛰어난 문장가입니다.
857년에 경주 사량부에서 태어났으며, 한국 한문학의 원조이자 유·불·선 삼교 조화론을 펼친 대지성으로 꼽힙니다.
최치원 선생과 경주 최씨 가문에 대한 핵심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문의 기원과 시조
- 원조 소벌도리공
경주 최씨의 연원은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 6촌 중 돌산고허촌의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 공에게 둡니다.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최崔'씨 성을 하사받았습니다
- 시조 최치원
소벌도리공의 24세손인 최치원 선생을 1세조시조로 삼아 본격적인 계보가 이어집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최씨 분파는 경주 최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최치원 선생 생애 업적
- 12세의 당나라 유학
부친 견일肩逸의 엄격한 교육 방침에 따라 12세의 어린 나이에 홀로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빈공과 급제토황소격문
유학 6년 만인 18세874년에 외국인 대상 과거 시험인 빈공과에 수석으로 급제했습니다. 이후 당나라 관직에 있으면서 황소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쓴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은 중국 전역에 그의 이름을 떨치게 만든 최고의 문장으로 평가받습니다.
- 신라 복귀개혁 시도
28세에 신라로 귀국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신라 말기의 문란한 정치와 골품제(6두품의 한계) 장벽에 부딪혔습니다.
진성여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올려 개혁을 시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 은거와 말년
정계에서 물러난 후 전국의 명산지리산, 해운대 등을 유람하다가, 마지막에는 합천 해인사에 들어가 불교와 학문에 정진하며 여생을 마쳤습니다.
역사적 평가와 저서
- 방 18현
고려 시대에 '문창후'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아 성균관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 한 사람입니다.
- 대표 저서
당나라에서 쓴 글을 엮은 '계원필경 桂苑筆耕'이 전해지며, 이는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개인 문집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