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詩 25

감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허영자許英子1938- 최영미의 어떤 詩 조선일보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 이웃집 담벼락 위로 뻗은 감나무에 매달린 감을 보며 가을을 느끼곤 했는데, 요즘 도시인들은 감나무를 보기 힘들다. 어디 하나 뺄 곳 없이 순도 높은 시어들로 완성된 시. “떫고 비리던”이라니. 얼마나 생생한 표현인가. 덜 익은 감의 떫은맛에 “비리던”이 들어가 청춘의 아픔과 서투른 우여곡절이 연상되었다. 더 이상 떫고 비리지도 않은 ‘내 피’가 갑자기 약동하면서 빈속에 소주 한 병을 들이부은 듯 가슴이 쓰렸다. 허영자 선생님은 현존하는 한국 시인 중에서 한국어의 맛과 ..

文化/詩 2023.11.20

가을 노트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 못 다한 말 못 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 문정희- ​

文化/詩 2023.10.24

장미를 생각하며

우울한 날은 장미 한 송이 보고 싶네 장미 앞에서 소리내어 울면 나의 눈물에도 향기가 묻어날까 감당 못할 사랑의 기쁨으로 내내 앓고 있을 때 나의 눈을 환히 밝혀주던 장미를 잊지못하네 내가 물 주고 가꾼 시간들이 겹겹의 무늬로 익어 있는 꽃잎들 사이로 길이 열리네 가시에 찔려 더욱 향기로웠던 나의 삶이 암호처럼 찍혀 있는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오늘도 내 마음에 불을 붙이네 -이해인-

文化/詩 2023.10.16

장미를 생각하며 이해인

우울한 날은 장미 한 송이 보고 싶네 장미 앞에서 소리내어 울면 나의 눈물에도 향기가 묻어날까 감당 못할 사랑의 기쁨으로 내내 앓고 있을 때 나의 눈을 환히 밝혀주던 장미를 잊지못하네 내가 물 주고 가꾼 시간들이 겹겹의 무늬로 익어 있는 꽃잎들 사이로 길이 열리네 가시에 찔려 더욱 향기로웠던 나의 삶이 암호처럼 찍혀 있는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오늘도 내 마음에 불을 붙이네 -이해인- 2023.5.19.쵤영 개럭시 S23 울트라 2023.5.19.쵤영 개럭시 S23 울트라

文化/詩 2023.05.25

바퀴 The Wheel

겨울이면 우리는 봄을 찾고 봄이 오면 여름을 애타게 부르며 생울타리가 이곳저곳 둘러쳐질 때면 겨울이 최고라고 선언한다. 그다음에는 좋은 것이 없다 왜냐하면 봄이 오지 않았기에- 우리의 피를 휘저어 놓는 건 무덤에 대한 갈망뿐임을 알지 못한다. -예이츠 W. B. Yeats 1865~1939- 인생의 무상함을 한줄의 詩로~~~ 조선일보 기사본문 바로가기 ▽ [최영미의 어떤 시] [121] 바퀴(The Wheel) 최영미의 어떤 시 121 바퀴The Wheel www.chosun.com

文化/詩 2023.05.22

장미를 위하여

가시가 없는 장미는 장미가 아니다 동그라미 탁자 위 유리꽃병 속에서도 모진바람 불어 지난 담벼락 밑에서도 너의 모습 변함없이 두 눈이 시리도록 매혹적인 것은 언제든 가시를 곧추 세우고 아닌 것에 맞설 용기가 있기 때문 아니라고 말할 의지가 있기 때문 꽃잎은 더없이 부드러워도 그 향기는 봄눈처럼 황홀하여도 가시가 있어서 장미는 장미가 된다 -홍수희 시인 -

文化/詩 2023.05.19

아담의 자손들 Bani Adam

동일한 본질로부터 창조된 아담의 자식들은 서로 연결된 전체의 일부분이다. 한 구성원이 다치고 아플 때, 다른 사람들은 평화로이 지낼 수 없다.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면, 당신은 인간이라고 불릴 수 없다. -페르시아.사디 시라즈- -Saadi Shirazi 1210~1291- 조선일보 「최영미의 어떤 詩」 조선일보▽ [최영미의 어떤 시] [120] 아담의 자손들(Bani Adam) 최영미의 어떤 시 120 아담의 자손들Bani Adam www.chosun.com

文化/詩 2023.05.15

하늘빛 고운 당신

​하늘빛 고운 당신 ​내가 힘이 들 때 당신은 나의 아픔이 되고 내가 슬플 때에 당신은 나의 슬픔이 되어 울어 준 사람 ​ 내 삶의 길에서 또는 사랑의 길에서 내가 나의 인생이 아파 울고 있을 때 나의 목숨이 되어 나의 삶을 사랑했던 사람 ​ 이제 당신을 사랑함이 나의 전부이고 나의 모든 인생입니다. ​ 같이 함께 하여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고 같이 아파하여 쓰러져도 일어날 수 있었던 시간 차가운 가슴속에 햇살처럼 다가온 당신 ​ 살아가는 동안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과 이 세상 함께 살 수 있어 나는 오늘도 정말 행복합니다. ​ -하늘빛 고운 당신중-

文化/詩 2023.02.05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정호승 시인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저자정호승 출판비채 2020.11.05.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 내가 아는 정호승 시인의 시는 ‘수선화에게’와 ‘풍경달다’다. 다른 시도 어느 한 구절을 어디선가 들어... blog.naver.com https://blog.naver.com/alth0803/222896762540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산산조각 수선화에게 시 가을이 찾아왔네요. 성큼성큼 언제 이렇게 왔을까요? 외롭다, 허전하다. 쓸쓸하다는 감정이 불쑥 튀어나 올... blog.naver.com

文化/詩 2023.02.01

귀천 歸天

귀천 歸天 천상병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프로필 1930.1.29.-1993.4.28. 1952년 문예'갈매기'등단 작품 도서 42건 막걸리를 좋아 하셨던 천재 시인 천상병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 못하나 그렇게도 순수와 맑은 지성 이었던 시인은 가고 없어도 아름다운 소풍을 끝내시고 하늘 나라에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셨을 그 시인의 향기는 오래도록 우리에게 남아있다 순수와 무욕의 삶을 살다가신 국보급시인 천상병은 아이러니 하게도 서울대학교 ..

文化/詩 2022.07.24

장미와 가시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요 ​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김승희 作 ​ 장미의 계절, 오월이 왔다. 꽃 중의 꽃, 장미를 노래한 시인은 많이 있었지만, 김승희 선생의 '장미와 가시' 처럼 내 가슴을 때린 시는..

文化/詩 2022.05.04

바람이 그리움을 안다면

꽃의 향기는 우리로 하여금 계절의 시점을 짐작하게 합니다. 봄이 절정일 때 찾아오는 향기, 라일락 향기가 바람을 타고 옵니다. 라일락 꽃 강원석 ​ 한 자락 바람이 그대 곁에 불 때 어디서 라일락 향이 날아오거든 어쩌다 바람 타고 온 스치는 꽃 냄새라 생각하지 마세요 ​ 남몰래 그리워한 내 마음이 향기 되어 그대에게 간 것입니다 ​ 한 자락 바람이 그대 곁에 불 때 어디서 라일락 꽃잎 흩날리거든 어쩌다 바람 따라 온 떨어진 꽃잎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 죽어도 변치 않을 내 사랑이 꽃잎 되어 그대에게 간 것입니다 ​ 시집 -바람이 그리움을 안다면-

文化/詩 2022.04.11

서시序詩

서시序詩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이성복 詩 1952~ 내가 읽은 서시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서시. 시집 ‘남해 금산’의 첫머리에 나오는 시인데, 젊은 날 이성복 시인의 날카로운 감수성과 순수한 열정이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냥 그렇고 그런 상투적인 표현이 거의 없고, 쉬운 듯 어렵고 어려운 듯 쉬운 시다. ‘늦고 헐한’ 저녁. 싸구려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은 시인은 ..

文化/詩 2022.03.28

첫눈

첫눈 골 고루 가볍게 조심조심 내리는 눈 고요하고 순결한 첫눈의 기침소리에 온 세상이 놀라네 첫 마음 첫 설렘 잃지 말고 살라고 오늘은 사랑처럼 첫눈이 내리네 욕심을 버린 가벼움으로 행복해 지라고 자유로워 지라고 오늘은 기도처럼 첫눈이 내리네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으로 하얀 눈 사람 하나 마음안에 빚어놓은 나의 새해 나의 새날 영원으로 이어질 첫 그리움이여 이해인

文化/詩 2021.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