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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땅의 천사들

天上 2020. 9. 15. 04:52

 

1981년 전도사로 교회를

담임하였습니다.
그것이 제 부족한 목회의

시작이었습니다.

 

20대 나이의 담임자의

여정이 어떠하였을까?

열정과 순수 빼고는
있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도시 노동자들과 2층교회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목회의

전부였습니다.

 

중국집 보이-당시엔 그렇게 불렀다-
페인트 가게에서 썬팅하는 이들
2시간씩 차를 타고 오는

구로공단 노동자들
몇 되지도 않는 그 청년교회는

그나마 불경기가 오니
대부분 일자리가 없게 되자
도시를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캠퍼스 선교를 했습니다.
대학원 친구들 중심으로
수십 명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3개월 만에

쓰러졌습니다.
알고 보니 영양실조였습니다.

노동자들이나 대학원생들이나
헌금할 여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스터 인쇄로 주보 낼 비용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인쇄비

8000원이 없던 날
장로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믿음의 아버지이신

곽 장로님이셨습니다.
평생 교회를 위해 사신 분입니다.

6.25 피난 나갔다가 교회가 걱정 되어
한강을 건너 공산당 치하의

서울로 잠입하여
교회를 지키고 가난한 자의

아버지로 사셨습니다.

 

장로님은 뜻밖에 찾아오셔서

제단에서 혼자 기도하시더니
돈 봉투를 건네시며

한 말씀 던지시고는
홀연히 가버리셨습니다.
“목회는 돈으로 하는 거 아니다!”

 

없다는 소리 한번 한 일이 없는데
이렇게 나타나셨다 가셨습니다.

 

-그런데 장로님 장례 기간에

수도 없이 많은 교우들이 고백하기를

도움이 꼭 필요할 때마다

"주님이 네 집에 가보라 해서 왔다"며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그것이 제게 평생 목회에 대한
단 한 마디의 조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생
“그렇군요!” 하는
가장 큰 울림이 있는

체험의 말씀입니다.

 

몇 주 전에도 재무부에서
교역자 생활비를 채워서

지출하였다는 것입니다.
바닥이 아니라,

바닥이 뚫렸기에 채운 것입니다.

 

잠시 이 일로 재무부 모임을 가지며
우리 교회 20년은 매달

바닥이면 채워주셨으니
이번에도 믿으며 가자는 것이

대책회의였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
산마루서신 가족께서
1,000만 원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형편 중에
서울역에서 어느 목사님

부부가 매 끼니를
도시락을 만들어 나누는데

쌀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기획위원들이 돕자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가진 쌀을 확인하니

200Kg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반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으로 떡을 해서
13일 주일에 노숙형제들에게

전하고 나니,
이제 쌀도 다 되어서 20Kg뿐이라고
전도사님이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정대로 주일에 서울역에서

떡을 나누고 왔는데
월요일 아침 연락이 왔습니다.
CGNTV로 예배를 드리며

산마루를 알게 되었다며
쌀 100Kg을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마스크도 모두 나누어주고 말았는데

약 3000장을 지난 번에 이어서

또 000 형제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 주간에는
온누리교회가 비전헌금을 한다고
영상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사적으로

온누리 담임목사님께
부탁 드린 바도 없었습니다.


늘 이러할 때마다

"주님은 당신과 통하는 분들을
들어 천사로 삼으시는구나!"

감탄할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목회를 잘하지 못해서
늘 바닥에서 헤맨다 하는데
곁에서는,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하니
얼마나 좋으냐고 합니다.

 

이러한 형편 속에서

여전히 마지막 남는 음성은
“목회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아리가 있습니다.
“목회는 십자가와 하나님 나라

-천국-로 하는 것이다!”

 

주여,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돕는 천사들을 영화롭게 하소서!
주여, 이 죄인
십자가와 천국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며-

이주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