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北海道)기행
세 부부가 홋카이도를 여행하기로 계획을 세운 것은 1년전 이었다. 생각대로 라면 나는 홋카이도를 여행하기 전에 면밀히 사전 준비를 했어야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홋카이도에서 2년이나 살다온 호진이네가 있었기 때문에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 지도를 보며 일본열도가 혼슈(本州), 시코쿠(四國), 규슈(九州), 그리고 홋카이도(北海道)의 4개의 큰 섬으로 구성되어있고 홋카이도가 맨 위의 북쪽에 자리 한다는 것만 알고 가기로 했다. 또한 호진이네가 언어에 문제가 없는데다 스케줄을 꼼꼼히 세웠으므로 모든 것을 맡겨 버리고 따라 가기만 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2002. 8. 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오전 10시 비행기를 탑승해야 한다. 그래서 전날인 7. 31일 서울 화곡동에 있는 호진이네 집에서 만나 짐 꾸러미를 점검해야하고 몇 가지 의견도 나눠야 했다. 우리와 채우네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으므로 광주역에서 함께 서울로 출발했다.
물론 식품류가 기내에 반입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호진이 아빠가 대한항공 직원이다 보니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화곡동에서 짐 정리를 마친 우리는 밖으로 나와 분위기 좋은 도심 속 노천 생맥주집에서 소시지를 안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모두는 내일부터 있을 홋카이도 여행에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 공항의 검색대 >
공항 출국장에는 여행객들이 아주 많았다. 짐을 부치고 좌석배정을 받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여권 검색과정은 너무 지루했다.
법무부 직원이 늑장을 부리는 것인지 절차가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좌우로 설치된 10여개의 검색대에 늘어져있는 줄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겨우 수속을 마치고나니 30분이 늦어진 10시 30분에야 이륙 할 수 있었다. 우리의 비행기는 금방 구름을 벗어나 12,000m의 고도를 유지 하더니 속도는 840Km/h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삿포로 “신 치도세 공항”에 착륙한 것은 12시 54분 이었다. 일본의 입국 수속도 오래 걸렸다. 특히 외국인의 입국 수속이 더뎌 13시 30부경에야 끝났다. 호진이 아빠가 예약된 렌터카를 인수 하러 간 사이에 공항 주변을 관찰했다.
이 시계는 또 다른 두 난쟁이가 먼저 나와 큰 책을 열고 닫아주는 일을 하는데 아이디어가 재미있었다.
일본의 자동차는 운전석이 한국과는 반대였다. 따라서 차선도 반대로 운행해야한다. 국제운전면허를 준비해 갔지만 일본인들의 확실한 안전의식 때문에 실제 차를 운행하는 테스트를 거친 뒤에야 차량 인수가 되었다. 그때가 16시 경이었다. 9인승 차량인데도 뒷좌석까지 짐을 채우다보니 겨우 6명의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 도야코(洞爺湖)의 방갈로>
렌터카는 “신 치도세 공항”을 빠져나왔다. 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그날 사용될 생필품(가스)을 샀다. 그런데 여기에서 채우 아빠가 물건을 살 때 일본어 실력을 발휘했다.
일본어는 호진이 아빠만을 생각하고 왔는데 또 다른 실력자가 있었다. 이후로는 안내판을 읽고 해석하는 것은 채우 아빠 차지였다.
그는 일본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도 매우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시코쓰코”호수를 관광하기로 했는데 차량인수가 늦어 진데다 첫 숙박지인 “도야코(洞爺湖)”의 방갈로에 17시까지 가야했기 때문에 호수 변을 지나쳐 서둘러 왔는데도 약속 시간보다 1시간 늦게 도착 했다.
방갈로 주변은 짙은 안개가 끼어 주변 식별이 어려웠다. 이날 저녁은 가져간 닭고기와 팩 소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 홋카이도의 개요 >
홋카이도는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있는 섬이다. 면적은 한국의 84%인 83,451Km²이고 인구는 약 570만 명이다. 일본 인구가 1억 2,700만 명이니까 홋카이도 인구가 4.5%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는 한국과 같아서 4계절이 확실하다.
봄에는 산야가 꽃으로 뒤 덥히고 여름에는 산천이 푸르러 고산식물을 보러 등산하기에 좋은 계절이라 한다. 가을에는 자연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이고, 겨울에는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 관계로 스키를 위시해서 눈 관련 축제가 대단하다고 한다.
홋카이도의 옛 명칭은 “에조치”이다. 원주민은 “아이누”족 이나 메이지시대(1868~1912)부터 일본 본토인 혼슈에서 많은 인원을 이곳에 이주시켜 개척에 주력했다고 한다.
삿포로시 교외의 “놋포로 삼림공원”에 가보면 당시 개척자들의 생활상을 전시할 목적으로 “홋카이도 개척촌”을 조성하였다.
이 공원은 1983년 4월 16일에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시가지군, 농촌 군, 어촌 군, 산촌 군으로 구분하여 당시 청사, 건조물 등을 원형대로 복원해서 옛 생활을 재현해 관광객에 개방하고 있다.
개척자들이 피땀으로 개간한 원시림은 불과 1세기만에 미개의 원시림에서 일본 내 유수의 식량공급 기지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외의 구역에서는 자연이 야생인채로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6개 공립 공원, 5개의 국정공원과 12개의 도립공원에 의해 철저히 보호, 관리되기 때문이란다.
< 노브리베쓰시 (登別市)의 地獄谷 >
‘02. 8. 2. 둘째 날 아침은 까마귀 울음소리에 눈을 뜨니 05시 30분경이었다. 이 시간은 한국에서는 새벽이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2시간정도 해가 더 빨리 뜨므로 대낮과 같았다. 지난밤의 안개가 말끔히 개인 도야코의 주변 경관은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좌측이 쇼와신산(昭和新山)이고 우측의 우스산(有珠山)인데 우스산은 불그스름한 색을 띄고 있었다.
2000년 3월 31일에는 우스산 서쪽이 갑자기 분화하여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낸 활화산 이란다. 좌측의 쇼와신산에서는 세 줄기 증기가 피어올라 바람 따라 방향이 이리저리 바뀌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 방갈로에는 우스산 관측소가 있었다. 이곳 전망대에 카메라 두 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을 사전 감시 하고 있었다.
곳곳에 크고 작은 온천장(호텔, 여관)등이 즐비하고 이곳에 투숙 한 듯한 사람들이 가운만 걸치고 거리를 거니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이곳은 거대한 도깨비가 뿔 방망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새워져 관광객의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노브리베쓰시의 지옥 곡”에 7시 20분경 도착했다. 시간이 너무 빨라서 무료로 입장하는 행운을 얻었다.
안쪽의 유료 도로를 따라 입장하니 지표와 바위들이 따뜻하다. 산골짜기에서는 증기가 피어오르고 이 골짜기의 원천인 “지고쿠다니”(地獄 谷 : 지옥의 골짜기)에 이르렀다.
지옥 곡 여기저기에서 적갈색 바위위에 희뿌연 증기가 자욱한 가운데 도로 끝에는 “오유누마(大湯沼)가 있어 뜨거운 온천물의 수증기가 힘차게 솟아올랐다가 사그라지는 등 반복되는 온천수의 분출모습을 가깝게 볼 수 있었다.
< 온천의 보고 홋카이도 >
일본은 전국적으로 약 3천6백 개의 온천이 산재해 있는 온천 대국이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주로 홋카이도에 있다. 또한 풍부한 수질과 아름다운 풍광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홋카이도는 동쪽에 “치시마 화산대”가 있고 남쪽에는 “나스 화산대”와 “쓰우카이 화산대”등 3개의 커다란 화산대가 있다. 그래서 이곳에만 200개가 넘는 온천이 산재하여 있는 것이다.
유명 온천으로는 노브리베스온센(登別溫泉), 도야코온센(洞爺湖溫泉),
조잔케온센(定山溪溫泉), 아칸코온센(阿寒湖溫泉), 시레토코온센(知床溫泉),
아바시리코온센(網走湖溫泉), 소운쿄온센(層雲?溫泉),
유노카와온센(湯의川溫泉), 그리고 도카치가와온센(十勝川溫泉)등 9대 온천이
있다. 따라서 지역별로 온천을 중심으로 관광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 아이누 민속박물관 >
입구에는 “고단고루구루상”이라는 촌장의 거대한 인형을 세우고 사진 촬영용 무대까지 설치되어있었다. 옛날 이곳 원주민들에게는 곰과 연어가 식량의 주요 공급원이었다.
썰매는 눈 속에서 생활을 하는 도구였던 것 같고 몇 채의 움막 속에는 실제 불을 피우고 연어를 말리며 베를 짜는 등 당시 생활을 재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굿샤로코: 屈斜路湖 >
이곳을 빠져나온 일행은 다음 행선지인 “굿샤로코(屈斜路湖)를 향해서 달려갔다. 지도상으로 동쪽 끝 부분을 향해 달려야 하므로 일종의 대륙을 횡단하는 셈이다.
그러나 고속도로로 가는 것이 아니고 소도시의 2차선을 달리기도 하고, 4차선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려야 했기 때문에 5시간 후에야 겨우 도착했다.
그러니까 널따란 밭에는 해바라기가 노랗게 피어 볼거리를 제공 하는가 하면 다른 밭에서는 감자, 야채 등 식물들이 가득가득 심어져있었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에는 건강하고 수령이 오래된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로를 낼 때 흔히 산허리를 자르거나 터널을 내는 일이 많다. 그러면 나무를 베어낸 자리가 황토색 절산 부분이 보이는 것이 통례이나 이곳에서는 산의 나무를 자르거나 공사한다고 산의 흙을 퍼내는 일이 보이질 않았다.
최대한 자연을 훼손 하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찻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도로변 곳곳에 지천으로 깔린 머윗대였는데 잎의 크기가 작은 우산 크기만 했다. 어디를 가나 머윗대였다. 또 하나는 키 작은 조릿대가 산중턱에서부터 나무들 사이로 가득했다.
중간 중간에 사슴가족이 조릿대 잎을 먹으며 평화로운 나들이를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사슴이 가장 맛있게 먹는 먹이가 조릿대 인가보다.
? 오토 캠프장 “구아 하우스”
오늘밤도 흐린 날씨다. 호수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 간밤에 는 캠프장 주변에 사슴가족 5마리가 나들이를 나왔다가 우리를 발견 하고는 돌아가는 모습이 발견되었었다.
‘02. 8. 3. 아침은 까마귀가 울어대는 소리 때문에 깨어나 보니 새벽 5시경이었다. 그들은 이곳에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노리고 있었다. 비닐봉지에 담겨져 있는 음식물 쓰레기는 까마귀의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가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음식물 취급 쓰레기통은 철망 속에 넣어두고 있었다. 굿샤로코는 매우 넓은데다 주변이 온통 온천 천지였다. 우리는 캠프장을 중심으로 굿샤로코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오전에는 시계방향으로 돌고, 오후에는 반대로 돌기로 했다.
? 사탕 (砂湯)과 노천온천
장소에 따라 미지근하기도 하고 뜨겁기도 했다. 뜨거운 지점에서는 냄비로 물을 덥히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으로 간곳이 “잇게 유”라는 노천온천이었다. 이곳은 더운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므로 탕을 만들어 두고 있는데 물은 호수로 흘러들어 갔다. 탕 옆에는 2개의 탈의실이 준비되어있었다.
? 와고도 반도의 지옥 곡
조금 더 나아가면 “와고도 반도”가 나온다. 그런데 도로변에는 해바라기 밭이나 밀밭, 감자밭 등이 널따랗게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대단위 농작물재배지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가던 길을 멈추고 해바라기 밭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와고도 반도에도 露天風呂가있었다. 일행은 이곳에 잠시 발을 담그고 담소 하다가 반도의 산책코스로 등반하며 산속의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허기져 오므로 라면으로 중식을 대신했다.
? 아칸코 국립공원의 유황 산
가까이 가보니 계란 판을 유황분출구 곳곳에 놓고 그 증기로 삶아 관광객에게 팔고 있었다. 위쪽으로는 유황덩어리가 큰 바위를 이루고 있는데 관광객은 더 이상 오르지 못하도록 경계표시가 되어 있었다.
? 아바시리, 오츠호크 해
아칸코를 뒤로하고 일행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태평양에 접한 “아바시리(綱走市)”로 이동했다.
앞으로 보이는 것은 끝없는 태평양의 수평선 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오츠호크해(Ohotsuku Kai)”의 “게(가니)”전문매장에서 그렇게도 유명하다는 게 한 마리를 샀다.
식사 후에는 낮에 들렀던 “잇게 유”에서 야간 노천온천을 즐기고 돌아왔다.
오늘 하루는 온천의 여러 모습을 둘러보고 발을 담그기도 하며 직접 몸에 느껴 본 하루였다.
<홋카이도의 7대 명물 먹을거리>
홋카이도에서의 명물 먹을거리는 7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라면”이 유명하다. 민소라면, 쇼유라면, 그리고 시오라면이 있다.
둘째는 “게”가 유명하다. 털게(케가니), 무당게(다라바가니), 바다참게(하나사키가니)가 있다.
셋째는 “스시”라는 초밥이 유명하다.
넷째는 “우니, 이쿠라돈”이 유명하다.
? 우니돈은 흰밥위에 김을놓고 위에 싱싱한 성게알을 듬뿍 올린 것이다.
? 이쿠라돈은 흰밥위에 간장과 술에 절인 연어 알을 놓은 것이다.
? 우니,이쿠라돈은 밥위에 이쿠라를 올리고 위에 우니를 올린 덮밥이다.
다섯째는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
여섯째는 “징기스칸”인데 양고기 구이가 유명하다.
일곱째는 “에키벤”이라고 하는데 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이다.
※ 이외에도 연어요리, 옥수수가 유명하다.
< 시레토코(知床五湖) >
‘02. 8. 4.일은 굿샤로코의 오토 캠프장에서 이틀째 맞이하는 아침이다.
어제는 굿샤로코 에서 동쪽으로 아바시리까지 다녀왔지만 오늘은 홋카이도의 최고 동쪽인 시레토코(知床五湖)까지 가기로 했다. 이곳은 태평양이 접한 해변이다.
해변을 달리며 차창가로 많은 볼거리가 있었다. 물고기 사냥의 명수 가마우지무리가 바다 위를 나는 모습이 평화롭고, 여기저기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운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해변과 같이 양식장의 부표가 가득한 모습은 별로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간간히 양식장의 부표가 약간 보일뿐 이었다.
? 知床五湖및 知床大橋
드디어 시레토코(知床五湖)에 도착했다. 여기에는 호수가 5개가 있는데 산책코스가 마련 되어있다. 그런데 1~2호는 산책이 가능하나 3~5호는 곰이 출현 한다는 이유로 관람이 불가 하단다. 1호 호수에는 물속에 노니는 물고기(붕어류)수가 매우 많았다.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 이었다. 담수호라 호수의 물이 그리 맑지는 않았다.
외길인데도 버스 기사들은 무전기를 통해 운전자간 연락을 하며 교차장소를 잘도 맞추었다.
종점에 도착하니 두 계곡을 연결하는 큰 다리가 있었다. 이 대교 넘어는 곰이 나온다며 여기까 지가 관광코스란다.
? 시레토코 노천 온천
버스로 한정거장을 더 내려와서 하차했다. 여기서 부터는 길옆의 계곡을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오르면 유명한 “시레토코 온천”이 나온다. 밑에서부터 약 25분정도 걸어 올라가야 된다는데 우리는 발등에 따뜻한 수온을 감지하며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온천은 안전상 생고무 바닥의 신발을 신도록 권장하고 있었다. 온천수가 쏟아지고 있는 폭포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센 폭포 물줄기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웅덩이는 자연이 만들어낸 우아하고 아름다운 욕조라고 하며 이곳이 유명한 “시레토코 노천온천”이라고 했다.
버스마다에는 안내하는 여자 안내원이 있었다. 산을 오르내리며 특이한 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여우가 나타나거나 사슴 무리가 나타나면 안내원은 버스를 세우고 그 짐승이 지나갈 때까지 보충 설명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꼬마 손님들은 동물 출현에 좋아서 소리를 지르곤 했다.
굿샤로코에 돌아온 우리는 와고도 반도 부근에 있던 “三 香 온천”에서 노천온천을 즐기고 돌아왔다.
일본인들의 온천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와 같이 오래 머무르지 않고 금방 끝내는 듯 했다. 어떤 여인은 혼자 차를 몰고 와서 온천하고 돌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 기타미시의 神社 >
‘02 .8. 5.아침 6시에는 굿샤로코 오토캠프장에 와서 3일간 잠을 자고 아침에는 “오타루”로 가기위해 출발했다. 8월 2일 이곳에 올 때는 아래쪽 길을 택했다면 오타루로 갈 때는 지역적으로 윗길을 택했다.
아침 8시 경이라 건물 내부의 문은 잠겨 있었다. “北見神社”라는 간판의 정문을 통과하자 잘 가꿔진 정원과 깔끔한 건물이 엄숙하게 서 있었다. 입구 게시판에는 천황내외가 정답게 웃으며 서있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신사 내부는 역사적인 인물, 즉, 일본의 영웅들 (유공자)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전범들의 신위도 모셔져 있기 때문에 일본 수상이 신사를 참배 한다고 할 때 마찰을 빚던 일이 떠올랐다.
한쪽 편 게시판에는 작은 팻말에 글을 써서 걸어 둔 것이 눈에 띄었다. 내용을 보니 “?…합격기원”, “…건강기원”등 개인의 소원을 비는 판지가 무수히 매달려 있었다.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서는 옆에 준비된 절차대로 손을 씻고 몸을 정결히 한 다음에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건물내부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우리는 일과이전에 방문 했으므로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옆 건물의 절도 문이 잠겨 볼 수 없었다. 한국의 절이 산속에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일본은 시내에 있다고 한다. 그 역할 또한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이곳을 빠져 나오면서부터 내가 운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운전석의 방향이나 조작방법이 한국과 반대라서 약간 혼동이 되었다. 방향 지시등을 켜기 위해 왼쪽 레버를 올리면 와이퍼가 작동되고, 반대로 와이퍼를 작동 시키려하니 방향 지시등이 작동 되는 등 한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도 금방 적응이 되었다.
< 일본의 교통문화 >
일본차의 구조는 우리와 반대다. 그래서 방향지시등을 넣기 위해 한국식으로 레버를 올리면 순간 와이퍼가 움직인다. 물론 차선도 반대다. 주행을 하려면 중앙선의 좌측 차선으로 운행해야 한다.
홋카이도에서 도로 운행 시 차량속도 표지판은 4가지였다. 즉 40Km/h, 50Km/h, 70Km/h, 그리고 80Km/h였다. 도시 중심부를 지날 때는 왕복 4차선까지 있지만 일반적으로 2차선이었다. 도로 폭은 한국보다 좁게 보였다.
속도 표시와 실제 운행하는 운전자의 주행속도는 너무 달랐다. 우리도 리듬을 살리기 위해서 다른 차와 같이 보조를 맞춰 운전을 했다.
그런데 이곳은 눈이 많은 곳이라서 폭설이 내리면 도로 분간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도로 양쪽에는 가로등처럼 설치한 전봇대에 전등대신 적색 화살표를 도로 폭 경계 지점에 초점이 맞게 설치해 바퀴가 도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했다.
이 시설은 산간 대부분 구간에 설치해두었다. 화살표에는 야광 처리가 되어 있어서 야간 운행 시 운전자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관광객에게는 유도 불빛이 볼거리로도 훌륭했다.
나는 시내 주행 시 요령, 차선변경, 정지선 지키기, 중앙선 침범 등 일본의 운전문화를 눈여겨보았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일본인들의 운전문화가 완벽하다는 인식이 조금은 변하게 되었다.
그들도 의외로 교통법규를 너무 흔하게 어기는 모습을 보며 역시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끼어들고자 할 때, 즉각 양보하거나 택시를 타고 내릴 때 기사가 승객을 돕는 행동, 버스타기위해 줄서기 하는 문화는 우리가 절대 본받을 내용 들이었다.
일본의 도로망은 지도와 함께 매우 잘 정비 되어 있었다. 초행길이라 지도만을 보고 목적지를 찾는데도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도로 번호에 따라 목적지를 지나치지 않도록 안내 표지가 잘 되어 있었다.
< 다이세스산(大雪山) 국립공원 >
중간에 “다이세스산 국립공원”의 소운코에 들렸다. 소운코는 용암이 급격히 냉각하여 용암 덩어리가 기둥형태로 균열이 생겨 솟아 있는 협곡이다. 여기에는 5개의 폭포가 있다.
그런데 길 건너 앞산에 오르면 쌍폭대가 있다고 한다. 430m정도 올라가면 두 폭포가 잘 보인다고 해서 올라 가 보았다.
힘들었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두 줄기 폭포가 장관 이었다. 그곳에서 기념 촬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공원묘지 >
오타루시에 거의 도착해서 도로변에 공원묘지가 보였다. 이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입구 간판에 “이식카리 공원묘지의 ××영원”이라고 쓰여 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우리나라 공동묘지 같이 같은 규격의 토지 안에 크고 작은 비석들이 서 있었다.
한쪽은 대형이고 한쪽은 소규모 군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아마도 여기도 경제적 능력에 따라 결정 되는 것 같았다. 묘지 입구에는 “남의 묘지 앞에 서지 마시요”라는 팻말이 서있었는데 엄숙함이 없는 관광객 차림의 우리를 꾸짖고 있는 듯 했다.
묘의 형태는 가족 묘, 개인 묘로 구분해서 비석에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한국과 다른 것은 시신을 화장해서 가문, 가족 단위로 정해진 공동묘지에 매장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 산에서는 개인 묘지는 일체 찾아 볼 수 가 없었고 울창한 나무숲만이 보였었던 것이다.
일본인은 사망하면 화장한 후 절 또는 신사에서 불공을 드리고 묘지에 안장 한다. 이런 일들을 신사나 절에서 담당 하고 있다.
< 오타루 자연촌 캠프장 >
우선 자동차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짐은 리어카로 실어 날라야 한다는 것이고 방갈로에는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아서 어둠을 지키는 방법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과거의 번영을 누렸던 시절을 상징하는 웅장한 석조 건물과 88개의 가스등이 늘어서 있었다. 다리 양쪽에는 고급 인력거 한대씩이 비를 맞으면서도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일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유럽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고 해서 영화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가수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아시 나요”도 이곳을 배경으로 찍었고, 또 이수영의 “그리고 사랑해” 뮤직 비디오도 이곳을 배경으로 찍었다고 한다.
빗속에서도 우리는 운하 바로 옆으로 늘어져있는 건물 군에서 유리공예매장을 몇 군데 둘러보았다. 일행은 마트에서 생필품을 쇼핑한 다음 캠프장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빗속에서 짐을 리어카로 실어 숙소로 날랐다. 밤늦게 랜턴의 불빛을 이용해 라면과 밥으로 늦은 저녁 식사를 하였다. 아마도 비 내리던 이날 깊은 산속의 기억은 오랫동안 추억에 남을 것이다.
< 오도리 공원>
‘02. 8. 6. 아침이다. 불이 없이 보낸 캠프장에서의 하룻밤이 지났다. 비가오던 어제 밤과는 다르게 오늘 아침은 날이 상쾌하게 개었다. 오늘은 삿포로 시내로 진출하기로 했다. 우선 오도리 공원(Odori:大通公園 )으로 출발했다.
아침 8시경에는 시민들의 출근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버스 정거장에는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긴 우산을 들고 있었다.
아마도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나보다. 그런데 그들이 들고 있는 우산은 한국에서와 같이 2단 우산이나 3단 우산은 보이지 않았다. 양복을 입은 신사도, 정장을 한 여성도 한손에는 긴 우산이 들려 있었다.
여러 면에서 검소함이 엿보였다. 어떤 사람은 걷고 있고,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는 남녀학생도 보였다. 그러나 그날은 비가 오지 않은 맑은 하루였다.
? 자료 전시실 (구 법원 건물)
오 도리 공원에 도착 한 것은 9시 30분경 이었다. 먼저 구 법원 건물을 이용한 자료 보관실에 들렀다. 삿포로뿐만 아니라 홋카이도에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어느 화가가 네덜란드와 일본과의 관계를 만화 (그림)로 그려 전시한 것을 보았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외국 문물을 받아들일 때 신중하게 분석한 후 유리하면 철저히 받아들이기로 유명하다. 한국의 문물을 그렇게 받아들인바있고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일 때도 그랬다.
서양 문물로는 네덜란드의 문물을 받아 들이는데 200여 년 동안 그 문화를 신봉 했었다. 그 중에서 의학 계통은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기억된다. 그림속의 풍차를 상징하는 네덜란드 문화는 그런 의미에서 그려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 오도리 공원의 테마별 축제
삿포로 중심가에 위치한 오도리 공원(大通公園)의 광장 길이는 자료 보관실에서부터 저쪽 편 시계탑까지 총12블록으로 약 1.5Km에 달한다.
길 양쪽으로는 가로수가 심어져 있는데 라일락과 무궁화가 교차되어 있었다. 자료 보관실 쪽으로는 무궁화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일본에 와서 우리나라 꽃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이같이 널따란 광장은 기본적으로는 블록별로 푸른 잔디로 단장되어 있었다. 마침 광장에서는 세계 맥주축제 중이어서 군데군데 행사준비를 할 곳 외에 나머지 부분은 꽃동산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오도리 공원 에서는 계절별, 월별, 테마별로 축제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2월초에는 대규모 눈 축제를 연다. 5월에는 라일락축제를 하고, 6월에는 댄스페스티벌, 7~8월에는 세계비어축제를 연다.
그래서인지 광장에는 “지금은 삿포로 하계 축제 중( 7/22~8/20)”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같이 오도리 공원은 시민과 관광객을 즐기게 하는 축제공원이라 할 수 있었다.
이같이 공원은 우거진 숲, 화려한 꽃들이 만발한 도심 속의 오아시스 같기도 한데, 여기저기에 유럽풍의 분수와 화단,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 같은 꽃의 종류만큼이나 이곳을 찾는 사람도 많았다.
사람들의 풍경도 가지각색 이었다. 차 마시며 전화 하는 사람, 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는 사람, 담배 피우는 여성(여성의 흡연율이 아주 높은 것으로 보고됨), 여자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있는 남자, 하모니카를 불며 구걸하는 걸인, 겨울옷입고 열심히 무엇인가를 먹고 있는 걸인, 벤치에 누워 잠자는 사람, 노숙자 행색을 했는데 반지, 목걸이, 시계를 차고앉아 있는 등의 군상이 다양성의 일본을 보는 것 같았다.
자료실 옆에 있는 높은 건물에는 “조은”(조선은행)이라는 한글간판이 붙어 있어 반가웠는데 알고 보니 조총련계 건물이라고 했다.
? 구 도청
다음으로 방문한곳은 구 도청 건물이었다. 도청은 홋카이도 개척의 역사가 담겨있는 붉은 벽돌의 건물이다. 지금도 이 건물에서 집무를 보고 있다고 하는데, 1층과 2층은 관광객에 개방하고 있었다.
정문에 들어서자 하늘색 전통복장을 한 기마병 3명(남자 2명, 여자 1명으로 구성)이 날씬한 말위에 앉아 관광객을 향해 모델이 되었다.
옆방에는 초대에서부터 역대 지사 및 장관 등의 사진, 그림사진, 집기 등을 보전하는 등 역사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30년 전통의 라면 맛
점심은 일본식 라면을 먹어 보기로 했다. 줄 많이 서있는 집이 맛이 좋은 집이라는데 이날은 줄서 있는 집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곳저곳을 헤매다 간판을 보고 겨우 찾았다.
30년 전통의 라면집 “大公”이었다. 대공의 사장님은 흰머리에 안경을 쓴 인심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는 종업원들도 있지만 라면을 자신이 직접 마무리 하여 손님 앞에 내보냈다. 역시 일본식 장인다운 모습이었다.
이 기간이 창립 30주년 기념 기간이라고 해서 우리에게 500엔 하는 라면을 450엔으로 할인해 준다고 했다. 우리는 시오라멘(된장라면)을 주문했다. 편육 1점을 곁들여서 나온 라면은 맛이 특이했으며 뒷맛이 짠 편이었다.
? 교통수단인 자전거와 지하철
따라서 상가 옆에는 대형 자전거 주차장이 있기 마련인데 이것은 시민들의 교통수단이 지하철에 의존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직장에도 주차장이 있으나 지정자 이외에는 주차비가 부가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기 승용차는 집에 두고 여행목적 등에나 사용하며 출퇴근은 자전거와 지하철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 山莊自然塾 캠프장>
? 오토바이 폭주족
오후가 되어서 일본에서 마지막 숙소가 될 “山莊自然塾 캠프장”에 도착했다. 캠프장 에는 맑은 계곡에 송어 양식장이 있었다. 그곳에는 많은 송어들이 멋지게 유영을 하고 있었다. 주인 여자는 양어장에서 낚시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송어를 잡으면 회 요리를 해주는데 100그램당 100엔 이라고 했다. 이건 그야말로 거저먹기 아닌가, 시내에 다녀와서 낚시하기로 했다.
캠프장에 짐을 내린 일행은 일본식 저녁 식사를 경험하기위해 다시 시내로 나아갔다. 18시쯤 되었을 것이다. 장발을 한 오토바이 폭주족으로 보이는 젊은이 3명이 차선 반대쪽을 차지하고 굉음을 내며 서행 하고 있었다.
뒤따르는 트럭운전자는 더 이상 달릴 수도 없어 쩔쩔매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이들은 트럭 운전자로부터 운행 방해를 받고 보복 차원에서 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 스시 초밥
접시 위에는 초밥이 2개씩 놓여 있었다. 초밥은 무슨 생선을 사용 했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가격은 접시 색깔에 따라 100엔, 200엔으로 구분 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면 종업원이 와서 접시를 색깔별로 구분하는데 이를 합산하면 식사비가 된다.
우리 옆에서 혼자 와서 식사를 즐기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가 식사를 마치고 일어설 때 접시를 세어보니 대충 15개였다. 그렇다면 식비는 어림잡아 2,250엔 정도라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는 생맥주 한잔씩을 곁들여 1인당 평균 1,000엔 꼴의 식사비를 지불하고 나왔다. 한화로 10,000원에 해당한다. 맛은 한국에서 먹던 초밥과 비슷했다. 그러다보니 캠프장에 늦게 돌아왔다. 너무 늦어 우리는 송어 낚시를 못하게 되어서 아쉬웠다.
< 이모저모 >
캠프장에서 홋카이도 체류 마지막 6일째 밤을 보냈다. 8월 7일에는 귀국해야한다. 이제 아쉬움이 남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에 모든 것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동안 나의 눈으로 보였던 것들을 기록해 본다.
? 도로변에는 각도를 조절 할 수 있는 바람막이 철재 차단막이 곳곳에 설치되어 농작물에 미칠 바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 전 일본의 식량보급기지답게 도로변에 있는 밭의 규모가 엄청나게 컸으며 밀, 배추, 감자, 메밀, 당근, 무, 옥수수 등의 작물이 심어져 있었다.
? 부자의 나라인데도 시민들의 옷맵시 등을 보면 검소함이 배어있는 듯하고 건물치장, 상가 간판 등이 형식에 치우침이 없어 보였다.
? 학생들은 교복을 입었고 자전거를 이용해 등, 하교 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 홋카이도는 삿포로를 중심으로 동으로 갈수록 밭이 많고, 서쪽으로 갈수록 논이 많았다.
? 경찰서(파출소)나 병원(내과, 치과 등)의 사무실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건물이고 경찰서 앞에는 한국의 티코 크기의 순찰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 건물 공사를 할 때는 반드시 외부를 차광막으로 가려서 안전을 우선하며 통행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 가로수를 전지 할 때는 정원사 자격자가 계획적으로 전지하며 바로 뒤에는 전지한 가지를 싣는 화물차가 따르고 있었다.
? 공중 화장실에는 대기선이 있어서 질서를 잘 지키도록 유도 하고 있었다.
< 일정을 마치고 >
도로변에 “삿포로 돔 경기장”이 보였다. 이 경기장은 ‘02년 월드컵을 치룬 경기장인데 ’01년 6월에 오픈 했단다. 이 경기장은 4만 명을 수용 할 수 있고 세계 최초로 야구와 축구를 할 수 있는 겸용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부를 구경 할 수있나하고 주변을 돌아보니 진입로가 막혀 있어서 주변만 맴돌다가 돌아왔다.
10시 15분경에 신 치도세(New Chitose)공항에 도착해서 렌터카를 반납함으로 6박 7일간의 여행 일정을 마무리했다. 비행기는 1시간 늦어진다고 했다. 우리는 15시 30분에야 신 치도세 공항을 이륙했다. 호진이 아빠 덕으로 모두 비즈니스 석을 배정받아 편하게 올수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에 18시경에 도착했다. 공항의 하늘은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우리가 홋카이도에 체류해있는 동안 서울, 강원 지방을 위시해서 전국에 많은 장마 비가 내려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공항에서 직접 광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도착하니 ‘02. 8. 8일 02시였다. 신기하게도 광주에는 비가 멎어 있었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의 바람이 장마를 몰아내서 더 이상 물난리가 없도록 기대해본다. -’08. 9월 사진 재정리-<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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