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뜸만 한 게 없다 침뜸 이야기 / 구당 침뜸 이야기
1985년 12월 31일, 침술원 일이 끝날 무렵이었다. 오십대 남자가 병원 환자복을 입은 채 들어섰다. 환자복에는 강남S병원이라는 글
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는 자신을 J라고 하면서 지금 병원에서 도망쳐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 병원 원장이 제 친구입니다. 그래서 친구 말대로 허리 디스크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못 고쳤어요. 게다가 이젠 더 이상 수술을 할 수도 없다고 하니……. 하도 암담해서 물어물어 무작정 찾아왔습니다.”
“네, 잘 오셨어요.”
나는 꾸부정하게 서 있는 그를 진료대에 앉혔다. 그는 걸터앉으면서 잔뜩 찡그렸다.
“정말 침을 맞으면 디스크가 낫습니까?”
느닷없는 질문에 나는 헛웃음을 했다. 침에 대한 소문은 모두 이렇게 의심투성이다. 침 치료로 디스크가 낫는다는 것은 세계침구
학술대회에서도 인정한 사실인데 왜 아직도 뜬소문처럼 떠도는것일까?
나는 그에게 분명하게 말해 줄 필요를 느꼈다.
“네, 낫습니다. 제가 신이 아닌 이상 정확하게 언제 낫는다고 대답할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낫습니다.”
디스크로 나를 찾는 환자들은 열이면 여덟이나 아홉은 이렇다.
허리 통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양방에서 권하는 치료는 다 받아 보고 수술까지 받은 뒤에 찾아온다. J씨는 그중에서도 심한 경
우로 수술을 3번이나 받아서 더 이상 수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침을 맞으러 왔다. 누구나 끔찍해하는 수술, 그 공포와 고통.
침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서야 침을 찾았다.
삔 데에 침이 좋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디스크에도 침이 좋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은 침
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디스크라는 병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디스크라는 병은 무엇인가? 병원에서 의사들이 말하는 어려운 병명에 주눅들 것 하나도 없다.
쉽게 말해, 디스크는 삔 것을 말한다.
허리디스크는 허리를 삐었고 목디스크는 목을 삔 것이다. 뼈와 뼈가 갑자기 어긋나 삘 수도 있고 천천히 비틀어져서 삘 수도 있지
만 여하튼 인체의 큰 뼈인 허리뼈와 목뼈를 삔 것이 디스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스크가 일반 염좌와 달라 보이는 것은 뼈와 뼈
사이에 있는 추간판이 돌출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디스크로 인한 통증은 뼈와 뼈가 한쪽은 붙어 있고 다른 한쪽은 벌어져 있으면서 그 사이에 있는 추간판이 빠져 나오거나 눌리면서 생긴다. 그러니 처음에 허리나 목을 삐었을 때, 침으로 치료하여 다시 삐지 않도록 뿌리를 치료한다면 큰 병이 될 이유가 없다.
내가 고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대답을 하자 J씨는 걸걸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여기 침술원에는 입원실이 없지요?”
그는 다시 확인하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내 손을 잡아끌며 “잠깐 가시죠” 하면서 문을 열고 나섰다.
내가 뒤를 따라가며 “어디를 가려고 그러느냐”고 물어도 “그는 잠깐이면 돼요” 하고 웃으며 앞서 걸었다. 그는 건물 입구를 나서더
니 건너편 건물에 있는 여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부터 저기를 입원실로 하겠습니다. 설마 병 고치는 의사 선생님이 여관을 입원실로 정했다고 해서 환자를 나 몰라라 하지
는 않으시겠죠?”
그렇게 해서 그는 그 해의 마지막 날인 그날 저녁부터 여관방에 머무르면서 치료를 받았다. 3번이나 수술해 뼈를 떼어내 보기도하
고 넓혀 보기도 했지만 다시 재발해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는 지경이었던 J씨는 침 치료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허리디스크의 시작은 대개 요통이며 그 가운데에서도 신(腎)이 허해서 오는 요통이다. 허리를 삐끗할 때, 왜 삐끗하게 될까? 외부
에서 너무 강한 충격이 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허리뼈가 실하지 못한 탓이다. 뼈는 신(腎)에 속하니 신(腎)이
허해지면 뼈가 튼실하지 못해 탈이 나고 만다.
삔 것이 오래 되거나 반복되어 병(디스크)이 되면, 허리나 목의 뼈 사이 중 한쪽은 벌어지고 한쪽은 붙어 있는 상태가 된다. 붙어
있는 쪽은 건강하지만 벌어져 있는 쪽은 마비되고 힘이 없다. 이는 마치 입과 눈이 한쪽으로 비뚤어지는 안면신경마비와 같다. 마비
되어 힘이 없는 쪽은 늘어지고 건강한 쪽은 상대적으로 당겨 올라가면서 전체적으로는 비틀어지는 형국이 된다.
이럴 경우에는 힘이 없어진 쪽을 살려내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 다. 입이 돌아간 것을 치료하는 이치와 똑같이 뼈 사이가 벌어진 쪽, 그 힘이 없어진 쪽을 되살리면 된다. 뼈가 제자리를 찾게 하기 위해서는 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 뼈는 신(腎)과 신(腎)에서 저장된 정(精)과 관계가 깊다. 신(腎)이 저장하고 있는 정(精)은 골수(骨髓)를 생산하고 골수(骨髓)는 뼈의 조직을 보양(保養)한다. 따라서 신정(腎精)이 충족되어 골수(骨髓)가 충만해야 뼈가 충분한 영양을 받아 회복된다.
신(腎)을 도와 정(精)을 보태고 배꼽 아래 하초(下焦)를 따뜻하게 해서 허리와 등골뼈를 강하게 하는 자리로는 신유(腎兪)혈이 으뜸
이다. 신(腎)의 기가 흘러들어 머무는 신유(腎兪)에 침을 놓고 뜸을 뜨는 것은 시들시들해지는 식물의 뿌리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또한 허리를 삐는 것은 허리뿐 아니라 몸 전체가 허하기 때문이니 몸 전체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 무극보양뜸을 떠야 한다.
팔 양쪽의 곡지(曲池)혈과 다리 양쪽의 삼리(三里)혈에, 배 가운데 중완(中脘)혈을 더해 몸 전체 기혈(氣血)의 균형을 바로잡는다. 배꼽 아래 기해(氣海)혈과 관원(關元)혈로 원기(原氣)를 더해 신정(腎精)을 촉진하면 전체와 뿌리의 치료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머리 정수리의 백회(百會)혈로 기혈(氣血)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등의 폐유(肺兪)혈과 고황혈로 맑은 기(氣)를 잘 흡수하여 순행시키도록
해 준다.
몸 전체를 다스리고 난 뒤에는 환부, 즉 아픈 부위를 다스리면된다. 허리디스크는 대개 제4 요추와 제5 요추 사이, 좌골신경이 갈라지는 곳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대개 그 부위를 누르면 매우 아파한다. 아픈 자리 양쪽을 다 눌러 보면 바깥쪽, 아래쪽이 모두 아프다고 한다. 가장 아픈 자리인 양관(陽關)혈과 그 위아래 요추 사이(제3 요추와 제4 요추 사이, 제5 요추와 제1 선골 사이)에 혈자리를 하나씩 잡으면 총 3개의 자리가 나오는데 이 3개의 자리에 모두 침을 놓고 뜸을 뜬다. 발목 뒤쪽의 곤륜(崑崙)혈과 오금 가운데의 위중(委中)혈에 침을 놓으면 막혔던 경락(經絡)의 흐름이 소통되면서 혈(血)의 흐름이 활발해지고 통증도 서서히 가라 앉는다.
그리고 허리 아래 양쪽에 눈자위처럼 움푹한 요안(腰眼) 부위를 만져 보면 아픈 쪽에 손가락만 하게 커진 상태로 왔다 갔다 하는
힘줄이 만져진다. 그 힘줄이 가장 크게 만져지는 곳 한가운데가 대개 포황(胞)혈이나 외포황(外胞)혈 자리인데 포황(胞)이나 외포황(外胞)에서 조금 많이 벗어났을 때에는 아시혈(阿是穴)로 보고 그 자리에 뜸을 뜬다. 다시 엉덩이 꼬리뼈에서 옆으로 차근차
근 눌러 가다 보면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아픈 자리가 있다. 이 자리를 아시혈(阿是穴)로 삼아 침을 놓는데 살이 두툼한 엉덩이이
니 장침(長鍼)을 깊숙히 놓아서 자극이 다리 아래까지 찌릿하게 가도록 찔러야 한다.
그리고 양릉천(陽陵泉)혈에 침과 뜸을 한다. 양릉천(陽陵泉)은 뼈와 뼈 사이를 잇는 힘줄과 힘살에 기혈(氣血)을 북돋우며 근(筋)의
정기(正氣)가 모이는 자리이다. 허리 근육의 힘을 받쳐 주는 배의 복직근(腹直筋) 위, 배꼽 옆의 천추(天樞)혈과 그 아래의 대거(大巨)
혈에 침을 놓는다. 천추(天樞)와 대거(大巨)는 디스크를 일으킨 요추(등쪽)와는 대칭이 되는 자리로, 디스크 환자의 경우 이 부위를
만져 보면 근육이 뻣뻣하게 경직되어 있는데 침을 놓고 나면 말랑말랑해진다. 종아리까지 뻗치듯 아파할 때는 대퇴부 뒤쪽 가운데에 있는 은문(殷問)혈과 종아리에 있는 승근(承筋)혈에도 침을 놓는다.
침 치료를 시작한 지 5일 뒤, J씨는 입원실로 정했던 여관에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병원도 퇴원했다. 그는 허리의 통증이 다사라지자 이제 다 나은 것 같다며 아주 기뻐했다. 그러나 오래되고 깊었던 병인지라 그렇게 간단하게 나을 리가 없었다.
오래된 병에는 침보다 뜸이다. 그는 1년이 넘게 뜸 치료를 받았다. 처음 두 달 동안은 침술원에 나와 침뜸 치료를 받았고 그 이후부터 거의 허리에 불편을 느끼지 않게 될 때까지는 집에서 가족들의 도움으로 날마다 뜸을 떴다. 그리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만 침
술원에 나와 침을 맞으며 비틀어진 허리를 바로잡았다.
1년 뒤 정상적인 사람과 다름없이 활동할 수 있게 되자 J씨는 주변에서 허리나 목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하거나 병원에서 디스크라는 진단을 받은 사람들에게 침과 뜸을 열성으로 권했고 꽤 많은 디스크 환자가 J씨의 극성스런 권유로 나를 찾았고, 완치되었다.
J씨의 권유에 따라 나를 찾아온 사람 중에는 K변호사도 있었다. K변호사 역시 수술을 받을 만큼 받은 상태였다. 미국에서 수술해
쇠로 된 인공 뼈를 끼워 넣었다며 X선 사진까지 가져와 보여 주었다. K변호사도 역시 침뜸 치료로 디스크에서 벗어났다. 나중에 다
낫고 나서 K변호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몇 번이나 수술하고 그것도 최첨단 의술을 자부하는 미국에서 인공 뼈까지 넣었으니 괜찮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또 허리가 아파오니까 이제는 죽는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때는 정말 절망적이었습니다.”
이후 J씨나 K변호사나 모두 주변에서 허리 아프다는 사람이 있으면 수술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어떻게든 나에게 보낸다. 그들이 경험하고 믿는 대로 디스크는 침과 뜸으로 틀림없이 낫는다. 그러나 어떤 병이든 병은 아무리 잘 고쳐도 흔적이 남는 법이다. 쇠가 부러졌을 때 용접을 해 감쪽같이 붙여 놓았다 해도 흔적이 남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디스크는 예방할 수 있다. 최우선이자 손쉬운 예방법은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허리뼈나 목뼈가 비틀어지지 않고 쉽게 삐끗하지도 않는다. 다음은 신(腎)이 허하지 않게 해야 한다. 뼈는 신(腎)에서 저장된 정(精)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몸 전체가 균형을 이루고 늘 건강하도록 무극보양뜸을 한다. 곡지(曲池), 족삼리(足三里), 중완(中脘), 기해(氣海), 관
원(關元), 백회(百會), 폐유(肺兪), 고황( )의 여덟 혈 열두 자리에 뜸을 해 몸의 저항력을 기른다. 뜸은 병을 치료하는 수단이지만
병에 걸리지 않았을 때에는 대단한 보혈강장법이다.
나를 찾았던 많고 많은 디스크 환자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이로 장준하 선생이 있다. 정치인이면서 언론인인 장준하 선생은 민족
주의자면서 선비 정신의 올곧음을 보여준 이라 할 만하다. 장준하 선생을 따르는 이의 소개로 왕진을 갔을 때 장 선생은 거동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으면 꼼짝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장준하 선생은 말 그대로 방 안에 누워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디스크가 너무나 심해 일어나 앉는 것은 물론이고 말도 크게 못하고 기침도 못하고 웃지도 못했다.
장준하 선생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초라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자택이 제기동 홍파초등학교 앞에 있었는데 지붕 위로 바로 고압
전류선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가난한 장 선생 아니면 살려고 드는 사람이 없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나마도 사글세였다.
나한테 침뜸 치료를 받고 장준하 선생은 비교적 빠르게 좋아졌다. 통증도 많이 없어졌고 지팡이에 의지해서이긴 하지만 방에서 마루를 천천히 왔다 갔다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집 밖에 나가 활동할 수 있을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상태가 다소 나아진 뒤에는 장 선생을 자주 치료하지 못했다. 다섯 번인가 여섯 번 치료하고 한 보름 지났을까, 신문을 보다 장준하 선생이 산에서 실족사 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납득할 수 없음을 넘어 기가 막혔다. 혼자 산행을 갔다 발을 헛디딘 것이 사망의 원인이라는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디스크가 심해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집 밖에 나갈 수도 없으며 낮은 계단도 제대로 오르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수로 울퉁불퉁한 산비탈을 혼자 오른단 말인가! 산에 갈 수가 없는 양반인데 왜 산에 가서 실족을 했을까.
장준하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장 선생을 치료한 이는 아마 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장 선생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나를 찾아온 사람은 없다. 장 선생이 혼자서 산행을 할 수 없는 상태임을 의술자로서 거짓 없이 증언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 지금까지 장 선생의 사망과 관련해 나를 찾은 이는 없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심한 디스크 환자였던 장준하 선생은 혼자서 산행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 다. 나는 지금도 장 선생이 혼자 산에 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출처] 디스크, 뜸만 한 게 없다|작성자 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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