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21일)을 앞둔 18일 오후 서울 부암동 백사실계곡엔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꽃대궐이 장관이었다. 겨울을 견뎌낸 자연의 부활을 알리는 듯했다. 이 계곡 안쪽엔 노숙인들이 오이, 배추, 쑥갓을 가꾸는 '사랑의 농장'이 있다. 농장에서 만난 산마루교회 이주연(62) 목사는 부활절을 맞는 마음을 '회개'라는 단어로 정리했다.
이 목사는 노숙인 사역으로 잘 알려졌다. 2006년 서울 공덕동에 교회를 열자 서울역 노숙인들이 찾아왔다. 그들을 돕던 이 목사는 노숙인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사랑의 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인문학 강좌를 열고, 연말에는 합창 공연을 했다. 2017년 말에는 숙원이던 빨래·목욕 시설도 갖췄다. 이런 활동은 모두 노숙인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궁극적으로는 노숙인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려는 꿈을 갖고 있다. 현재는 지방에 5만평 규모로 농장을 만들어 노숙을 벗어난 이들이 마음을 치유하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공동체를 준비하고 있다.
이 목사는 자신이 예수의 부활과 사랑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 계기가 노숙인과의 만남이라고 했다. "처음에 형제들과 농사를 지을 때 저는 뼈가 부서져라 일했어요. 형제들이 밭고랑 하나 팔 때 저는 대여섯 개를 팠죠. 잘 따라오지 못하는 형제들에게 지적질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무기력증에 빠졌어요." 금식 기도를 하면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는 이 목사 자신에게 있었다. "마음속에 의분(義憤)이 가득했어요. 제가 감리교신학대 학생회장 출신이거든요. 1970~1980년대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태, 1980년 광주를 보면서 느꼈던 분노와 제 역할을 못했다는 양심의 가책 등이 엉켜 있던 차에 노숙인 형제들을 만나니 이분들께 잘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아닌 의분과 양심의 가책으로 달려들었던 거지요. 복음이 아닌 율법을 강조한 셈입니다."
깨달음 후 다시 읽은 성경은 '사랑'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왜 초대 교회는 목숨을 거는 사랑의 공동체가 됐을까요? 사람들의 상식으론 예수님은 심판자여야 합니다. 그런 예수님이 인간들의 죄를 심판하는 대신 자신이 짊어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함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소유, 권력, 쾌락이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초대 교회는 부활을 증명하는 '입증자'가 아닌 부활의 '증인'이 됐고, 사랑과 은혜의 공동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목사 역시 '의분의 에너지'로 소진된 심신을 '사랑의 에너지'로 재충전할 수 있었다.
그는 부활을 믿는다면 현재를 잘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죽음 후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소유, 권력, 쾌락을 좇게 되겠지요. 그러나 신앙인이라면 하나님 법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이해관계, 법적 관계를 넘어서야 신앙인이라 할 수 있지요. '눈에는 눈'이 세상 법이라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예수님은 돌을 들어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마음, 온유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말씀하셨지요."
이 목사는 사랑에 이르는 길은 '청산'이나 '정죄'가 아닌 '회개'라고 거듭 강조했다. "신앙인들이 삶과 신앙이 일 치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지요. 율법적인 부분은 노력해서 간극을 좁힐 수는 있지만 완벽한 일치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감동, 감화에 의해 변화가 일어나면 일치될 수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도 정말 내 마음에 부모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면 저절로 실천하게 됩니다. 율법공동체는 오래가지 못하지만 사랑공동체는 영원합니다. 그 시작은 회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