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TV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들 간에 피는 어떤 장기가 만드느냐를 놓고 설왕설래하는 모습을 보았던 적이 있다. 비장에서 만들지 않겠느냐라는 한 진행자의 불확실한 대답에 또 다른 진행자는 "심장에서 만들 걸?"라고 맞장구 치자 "비장이 맞을 거야. 누구에게서 들은 이야긴데 피를 이자라는 곳에서 만든다고 했던 것 같애." 그러자 피를 심장에서 만들 것이라고 했던 진행자가 "비장이라며? 근데 이자는 뭐야? 이자라는 것도 있어?"
비장에서 피를 만든다는 진행자는 비장과 이자는 같은 말이라고 하면서 이자라는 장기가 피를 만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장기가 피를 만들 것으로 생각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자'라는 장기에 대해 알고 있는지도.우리의 인체가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며, 인체가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원리는 어디에 있는 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도 궁금하다.
가령,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숨을 쉬면서 끊임없이 공기를 들이마셨다 내뱉는 일을 하고 있지만, 왜 그렇게 해야 되는 지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 거 아니냐, 그래서 숨을 쉬어야 하는 거지" 라고 응답할 것이다.
딴은 맞는 말이다. 숨을 쉬지 않으면 우리는 살 수 없다. 그런데 숨을 쉬지 않으면 왜 죽을 수밖에 없는 지에 관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피를 어떤 장기가 만드느냐에 관한 쟁점도 마찬가지다. 피, 즉 혈액은 우리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혈액은 인체의 여기저기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는 혈관을 따라 순환한다. 혈액은 혈구세포와 같은 고형물질과 혈장이라는 액체로 구성되었는데, 혈장은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이 소화가 된 후의 영양물질과 기타 유기물질과 무기물질들, 그리고 이온물질들이 녹아있는 혼합 형태의 액체이다. 혈액은 신선한 산소와 영양물질들을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생명 단위인 세포들에게 공급해주고, 그 세포들로부터 생겨난 이산화탄소 및 노폐물과 같은 불필요한 이물질들을 수거해 밖으로 제거해 주는 장기 쪽으로 운반해 준다. 뿐만 아니라 혈액은 체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의 생리적인 사건들이 원활하고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조절해 주는 각종 호르몬을 운반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혈액의 운반 기능 외에도 혈액은 체온을 조절한다든가, pH조절, 수분을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체내로 침투하려는 병원성 미생물을 막아주는 방어 기능과 상처로 인한 혈액의 누출을 막아주는 지혈 기능을 갖고 있기도 하다.
혈액은 혈관이라는 도관 속에서 흐를 수 있도록 붉은 빛을 띠는 액체의 상태로 되어 있다. 혈액은 혈관을 따라 흐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액체의 상태를 갖는다는 것은 생명 유지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혈액은 혈관을 따라 끊임없이 흐름으로써 산소와 영양물질을 인체의 구석구석까지 공급해 줄 수 있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제거할 수 있다. 혈액의 흐름이 멈추어 잠시라도 산소와 영양물질이 세포에게 공급이 중단되면 그 세포는 죽어버리게 된다. 특히 뇌세포는 산소와 영양물질(포도당)의 공급이 3분 이상 지체하게 되면 뇌사상태에 빠져 생명을 잃게 된다.
일부 몰지각한 사혈요법자들이 모세혈관 같은 곳에 덩어리 상태의 어혈이 존재한다고 믿고 그 어혈로 인해 혈액순환이 방해를 받아 여러 가지의 질병들이 생겨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어혈을 제거해 주면 고치지 못할 질병이 없다라고 하면서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어혈을 제거한답시고 멀쩡한 혈액을 뽑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혈액은 액체의 상태이기는 하지만 혈액 속에는 산소와 이산화탄소, 질소와 같은 기체들과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이 소화가 되어 유기물의 상태로, 그리고 음식물 속에 포함되었던 각종 무기물질들이 녹아 있다. 혈액의 색깔을 붉게 하는 적혈구라는 세포와 병원성 미생물을 방어해 주는 백혈구, 그 밖에 지혈작용을 하는 혈소판과 같은 세포들이 고체의 상태로 포함돼 있다. 또한 혈액이 혈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여러 가지의 응고성 단백질들이 혈액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혈액은 단순한 액체의 상태가 아닌 여러 가지의 생체물질들을 함유하고 있는 액체인 것이다. 혈액을 이루는 성분 중 액체는 55%를 차지하며, 이 액체 속에 여러 가지의 영양물질과 호르몬, 이온물질, 노폐물 그리고 산소, 이산화탄소와 같은 기체가 용질로 녹아 있는 혈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혈액을 이루는 나머지의 성분 45%는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으로 구성이 되었으며, 백혈구와 혈소판은 1% 정도만이 존재하므로 거의 적혈구가 혈액의 나머지 부분인 고형물질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혈액의 기능이나 성분 등에 대해서 대충 설명을 했는데 그렇다면 혈액은 어디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글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혈액, 즉 흔히 말하는 피는 어떤 특정한 물질 하나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혈액은 액체와 그 액체 속에 녹아 있는 여러 가지의 유기물과 무기물, 그리고 적혈구나 백혈구와 같은 혈구세포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 혼합물질인 것이다. 의사들이 혈액을 채취하여 건강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혈액 속에 포함된 수많은 물질들의 구성성분에 의해서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의 혼합물로 이루어진 혈액은 어느 한 장기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피를 만들어내는 장기는 비장도 아니며, 이자도 아니며, 심장도 아니라는 말이다.
동양의학에서는 피를 만들어내는 장기는 비장이라 했으며, 간은 피를 저장하는 곳이라 했다. 인체의 해부학이나 생리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수천 년 전에 성립했던 이른바 장상학설(臟象學說)을 전통의학에서는 아직까지도 인체의 생리적인 상태나 병리적인 상태를 판단하는 근거로 적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의학의 오장육부에 관한 장상학설을 그대로 믿고 있지만 이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다. 오장육부라는 용어는 전통의학에서 발생한 용어이며, 전통의학에서 말하는 오장육부와 현대과학의 해부생리학에서 말하는 실제의 내장기관과는 다른 개념임에도 전통의학에서 설명하는 오장육부의 기능을 사실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환자들을 돌봐야 하는 한의사들마저도 오장육부와 관련된 구시대적인 이론들에 의존하고 있음은 분명히 넌센스인 것이다. 전통의학에서 설명하는 오장육부의 생리적인 기능을 참고는 할 수 있으나 생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서두에서 말했던 피를 만드는 장기가 비장이니 이자니 심장이겠거니 하는 불확실한 추측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전통의학에서 말하는 오장육부란 음양오행의 개념으로 인체의 안을 사유한 결과 생겨난 다분히 추상적인 장기를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의학의 오장육부에 관한 설명이 현대 해부생리학의 실제적인 여러 내장기관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인체는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인체를 구성하는 수분을 체액이라고 하는데 체액은 크게 세포내액과 세포외액의 두 가지로 분류된다. 세포외액은 다시 혈관 안의 액체인 혈장과 혈관 밖의 액체인 간질액으로 분류한다. 인체 안의 물은 생명단위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세포에게 세포 안과 밖의 물질을 교환하는 수송기능과 다른 화학적 매개체, 또는 화학반응을 원활하게 일어나게 하는 등의 중요한 기능을 함으로써 인체의 생명을 유지한다. 이처럼 생명을 유지하거나 인체가 움직일 수 있게 하는데 일어나는 생체 안의 모든 사건들은 물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되어 있다.
여태까지 설명했던 혈액이 55%의 액체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우리가 섭취한 영양물질을 녹일 수 있는 것이 물이며, 적혈구나 백혈구와 같은 고형물질들을 운반하기 위헤서는 물과 같이 도관 안을 흐를 수 있는 유동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혈액의 절반 이상이 액체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인체 안에서의 물의 중요성은 혈액에서처럼 다른 조직이나 기관에서도 물을 매개로 한 여러 가지의 중요한 생리적인 일이 수행된다는 점에 있다.
어떻든 혈액을 구성하는 55%의 물은 어느 특정의 장기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수시로 섭취하는 물이라든가 음식물 속에 포함된 물들이 체내로 유입되면 그 중 일부는 혈관 안으로 들어가 혈장이라는 액체의 성분이 되는 것이다.
또한 혈장 속에 녹아 있는 영양물질은 소장에서 흡수하여 간과 심장을 경유하여 혈관 안으로 유입되어 순환을 하면서 세포에게 전달된다.
혈장 속의 단백질은 간이 만들어 혈관 속으로 방출하여 삼투압작용으로 물이 혈관 밖으로 새어나는 것을 방지하여 혈장량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시켜 준다.
혈액을 구성하는 중요한 적혈구는 허벅지에 있는 뼈나
척추뼈 속에 있는 골수라는 곳에서 1초에 2백만 개 이상, 하루 2천억 개를 만들어낸다.
백혈구 역시 골수에서 만들어진다.
적혈구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운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허파를 통해 들어온 신선한 산소를 적혈구가 실어서 혈관을 따라 돌면서 세포에게 전달해 주고 세포호흡이라는 과정을 통해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실어서 허파로 보내주면 이산화탄소는 허파로부터 밖으로 배출되게 된다.
TV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장에서 피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던 한 진행자는 비장과 이자를 같은 장기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전통의학에서는 오장육부 중 음의 장기에 해당하는 비장이라는 것이 있다. 전통의학자들은 이 비장이 현대의학의 췌장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췌장이 다름 아닌 이자이다. 그래서 비장이나 이자는 이름만 다르지 같은 장기로 보았을 것이다.
현대 해부생리학의 이자(췌장)의 기능은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슐린과 글루카곤)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관으로, 그리고 섭취한 음식물을 소화시킬 수 있는 소화액을 분비하는 외분비기관으로써의 두 가지의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편, 우리의 인체는 실제로 이자가 아닌 비장이라는 장기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일명 '지라'라고도 하며 면역세포인 림프구가 모여 있는 가장 큰 말초 림프절이라는 기관이다. 비장의 기능은 혈액이 병원체로부터 감염되는 것을 방지하며 또 다른 기능은 수명이 다한 적혈구를 파괴한다.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적혈구는 하루에 2천억 개 이상이 골수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적혈구는 약 120일동안 열심히 산소와 인산화탄소를 실어 나르는 일을 수행하다가 비장이라는 곳에서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니까 비장은 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골수가 하루동안 만들어낸 양만큼의 적혈구를 파괴하는 장기이다.
적혈구는 대부분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로 이루어졌는데, 수명이 다된 적혈구는 비장에서 폐기물 처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된다. 즉, 비장은 헤모글로빈을 헴과 아미노산으로 분류를 하여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만드는 데 재활용된다. 헴은 다시 철과 빌리루빈으로 분리가 되어 철은 골수에서 적혈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재활용되거나 간에 저장이 된다. 빌리루빈은 간으로 이동하여 쓸개즙의 재료로 재활용 된다.
비장은 가장 큰 림프절로서 혈액 속의 병원체를 제거하는 방어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앞서 말했던 것처럼 수명이 다된 적혈구를 처리하는 기관인 것이다.
피가 부족하여 현기증을 유발시키는 증상이 있는데 이런 현상을 빈혈이라고 한다. 빈혈은 혈액 속에 존재하는 적혈구의 수치가 낮아져 산소의 운반 능력이 부진한 상태를 말한다. 피를 만들어내는 장기를 굳이 밝힌다고 한다면 골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혈액은 붉은 색을 띠고 있으며 붉은 색을 띠게 하는 성분이 적혈구이기 때문에 혈액은 적혈구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체를 여러 가지의 병원체로부터 방어해주는 백혈구와 상처가 났을 때 피를 멈추게 해주는 혈소판 또한 골수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골수가 피를 만드는 곳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혈액은 적혈구, 백혈구 그리고 혈소판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액체를 비롯한 여러 가지의 물질로 이루어진 혼합물이 여러 장기로부터 혈관으로 유입되어 피, 즉 혈액을 구성하기 때문에 혈액 전체가 골수에서만 만들어진다고는 할 수 없다.(2009, 11, 18)
[출처] 피를 만드는 장기는?|작성자 우공 신보선 침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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