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學傳問/우공 신보선

장모님의 허리통증

天上 2021. 8. 2. 07:02

우공 신보선

2004년 가을, 15년 동안 다녔던 신문사를 그만 두었을 때 아내는 내가 침술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신문사의 기자생활에 염증을 느껴 그만 두었는데도 말이다.

 

그 이후로 아내는 내가 책을 본다거나 침을 만지작거리는 꼴을 무척 보기 싫어했다. 더구나 아내는 현대의학에 대한 맹신 때문에 침술로 질병을 고친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도 않았고 미신처럼 여기기까지 했다.

 

실직한 상태가 10년 가까이 이어지자 가정형편은 비참할 정도로 어려워져 아내는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고 명랑하고 활발했던 두 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져 버렸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아내의 눈에라도 띄게 되"책 들여다보고 있으면 돈이 생겨?"

 

작은 딸아이의 초등학교 시절에 그 애가 책을 보고 있는 나를 보더니"아빠 책 보고 있으면 돈이 나와?"

침을 가지고 나의 몸 여기저기에 찌르고 있는 나의 꼬락서니를 보던 아내는"그 놈의 침 좀 작작 만지고 돈이라도 벌어 와."

 

지금에와서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어떻게 아내에게 쫒겨나지 않고 여태까지 살고 있는지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아내나 애들의 입장에서 보면 허구한 날 책이나 들여다보고 있고 침이나 찔러대고 있는 내 꼬라지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아내나 애들의 눈에 보이는 나의 행동들, 즉 책을 읽고 침을 만지작거리는 행동들이 그녀들에게는 참으로 한심하게 여겨졌겠지만, 나로서는 생명과학의 전반에 대한 공부를 하느라 뼈를 깍는 인고의 시간이었었고. 그러면서 침술을 생명과학과 접목하여 나만의 독창적인 침술을 창안해내는 데 집요한 연구의 시간들이었다.

 

우리나라의 폐쇄적인 의료제도로 내가 개발한 독창적인 침술로 의료행위는 할 수 없지만, 이 침법을 배우기를 희망하는 한의사나 의사,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전수해주는 일로 돈이 생기기 시작했다.

 

침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던 초기에 의사나 한의사가 침술을 배우기 위해 나를 찾아왔을 때 아내나 두 딸들은 참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고개를 심하게 갸우뚱거렷다고 했다.

 

일반인들이야 그렇다치더라일개 범부에게 무엇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전문의료인들의 행동에 대해 내 아내와 두 딸들은 그야말로 희한한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든 침술을 가르치는 일로 돈이 쏠쏠하게 생기자 아내는 내가 책을 보든 침을 만지든 더 이상 참견하지 않았다. 그러나 침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여전한 듯했다.

 

며칠 전, 장모님 그러니까 아내의 친정 어머니가 장염으로 종합병원에 입원하여 10일 정도 치료를 받는 일이 있었다. 장모님의 나이는 85세이며 20여 년 전부터 허리 통증을 달고 살았으므로 침을 맞기 위해 한의원을 들락거리고 있다는 말을 아내에게 종종 들었었다.

 

지금은 내가 침술전문가라고 자부하지만, 아내는 그런 나를 침을 좀 놓을 줄 아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행여라도 자기의 어머니를 위해 침을 놓아달라는 요청을 아예 하지 않는다.

 

물론 나의 침 놓는 실력에 대한 장모님의 생각도 아내와 같기 때문에 장모님 역시 나에게 침을 맞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장모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사위로서 병문안을 갔었어야 했지만 병원측에서 코로나로 병문안 같은 걸 제한하여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장모님은 퇴원했고 아내가 장모님을 함께 찾아뵙자고 했다.

 

아내는 장모님에게 연락하여 우리가 방문할 것이라고 했더니 나에게 침 좀 맞아봤으면 하고 희망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장모님과 통화를 끝낸 후 나를 보더니 허리가 엄청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하면서 그게 침 맞는다고 될 일이냐며 어쨌든 장모님에게 갈 때 침 좀 가져가보라고 했다.

 

내 생각으로도 장모님의 나이도 있고 워낙 오랫동안 허리통증으로 고생했기 때문에 내가 개발한 TLS 침법으로도 쉽게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여튼 장모님이 침 맞기를 원하니 침을 준비하여 아내와 함께 장모님을 방문했다.

 

장모님은 몸까지 뚱뚱해서 움직이는데 더욱 힘들어 했는데 장염으로 인한 병원치료를 받고와서부터는 드러누웠다 일어나려면 며느리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고 했다.

 

장모님을 바닥에 엎드리게 한 후 허리에서부터 엉덩이 허벅지까지의 통증유발점을 확인했다. 의외로 심각한 고질병은 아니었다. 침을 꺼내 통증 부위 여러 군데를 TLS 자극한 후 장모님에게 일어나보라고 했다.

 

그러자 장모님은 곁에 있는 아내를 부르더니 자기 좀 일으켜 달라고 했다. 아내가 장모님을 일으켜 세우려고 할 때 내가 격하게 만류를 하며 장모님에게 스스로 일어나보라고 했다.

 

그러자 장모님은 혼자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나는 이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엉거주춤거리며 엎드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수월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아내의 눈도 휘둥그레졌지만 무엇보다도 장모님 자신이 무척 놀라워 했다.

 

"어머나 세상에 내가 혼자 일어날 수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이래!"이를 지켜보던 아내는

"어머머! 엄마 정말 괜찮은 거야?""아니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어! 어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니?"

두 모녀가 놀라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감정이 북받치기 시작했다.

 

침술의 놀라움을 나의 아내가 보고 있다는 현실이 나를 그렇게 했다. 침을 만지작거린다고, 그리고 책만 보고 앉았다고 얼마나 나를 구박했던 아내였던가!

 

아내는 2년 전부터 나의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글들을 읽는 듯했다. 게다가 지난 3월 침술에 관한 책을 내자 아내의 나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침법에 대해서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생각은 여전한 듯했다. 그렇지만 아마도 아내는 자기의 어머니를 침술로 일으켜 세운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나의 침법에 대한 생각도 확 바뀌리라 믿는다.

 

[출처] 장모님의 허리통증|작성자 우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