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 때문에 3년을 환자를 피해 다닌 사연
오래 전에 심한 매독(梅毒)으로 다 죽게 된 환자를 고쳐 주고 나서 몹시 골치가 아팠던 적이 있다. 3기 매독을 고산천수장생탕(高山天壽長生湯)과 봉래(蓬萊)약쑥탕, 생기액(生肌液) 등을 써서 거의 1년 가까이 걸려서 고쳐 주었는데 그 동안 약재 값이 제법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 환자가 병이 다 나았는데도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재료 값이라도 달라고 했더니 이 놈이 마구 욕지거리를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 새끼야! 네가 의사야? 너 의사 아니잖아! 돌팔이한테 내가 약값을 왜 줘? 네가 만만해 보이니까 내가 병을 고쳐 달라고 한 것이지 돈 주겠다고 한 적이 없어!”
“병을 고쳤으니 나한테 재료값은 줘야 하지 않겠소?”
“야! 이 새끼! 법으로 하자. 너 무면허 의료 행위 했잖아!”
“그 동안 내가 쓴 원가만 주시오. 당신 돈만 돈이고 내 돈은 돈이 아니오?”
“네 돈이야 틀림없이 사기 쳐서 얻은 거겠지 뭐. 너한텐 한 푼도 줄 수 없어.”
그 날 뒤로 나는 졸지에 놈한테 코가 꿰이고 말았다. 이 놈 주위에는 이 놈과 꼭 같은 바람둥이들이 여럿 있는데 그 놈들한테 모두 약을 만들어 주어야 했다. 놈은 이 놈한테도 약을 해 주어라고 하고 저 놈한테도 약을 해 주어라고 하는데 다 공짜로 약을 줘야 했다. 이렇게 해서 놈의 주변에 있는 온갖 환자들의 병을 모두 고쳐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놈이 우연히 환자를 하나 데리고 왔는데 그 환자 덕분에 놈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놈이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에 다른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오직 그 환자의 전화번호만 물어서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 그리고 놈과 환자가 돌아간 뒤에 나는 청계 4가에 가서 녹음기를 하나 샀다. 그리고 그 환자한테 전화를 해서 여러 가지를 물어 보면서 통화내용을 모두 녹음했다. 그 환자가 말했다.
“제 병을 병원에서 못 고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병을 고쳐 주겠다고 해서 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좀 전에 약을 만드는데 재료값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서 돈을 더 많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주었습니까?”
“네 돈을 제법 많이 주었습니다.”
됐다. 드디어 놈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놈이 환자를 고쳐 준다고 해서 돈을 받았으므로 제 손으로 의료행위를 한 것이다. 놈의 약점을 내가 잡은 것이다. 나는 바로 놈을 찾아갔다.
“야! 이 놈아! 네가 나를 고발한다고 했지? 고발하려면 해 봐라. 그리고 그 동안 네가 가져간 약값을 모두 내 놓아라.”
“너 이 자식 돌팔이 새끼가 미쳤나? 감히 나한테 돈을 달라고?”
“여기 나 말고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사람이 또 있거든.”
“너 말고 누가 있는데?”
“너 이놈! 나는 약을 모두 공짜로 주었는데 너는 그 환자한테서 돈을 받았지. 돈은 네가 받았고 나는 한 푼도 안 받았거든. 그리고 나는 진찰도 한 적이 없지? 나는 아무 것도 안 했어. 환자를 네가 진찰하고 네가 데려왔어. 돈도 네가 받았고. 그러니까 의료행위는 틀림없이 네가 한 것이거든. 자 이제 내 돈을 내 놓아라!”
“그래? 그 환자 새끼가 그러더냐?”
“그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지. 길에서 만나서 이야기한 것을 내가 다 녹음을 했다. 네가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고 돈을 받았다며 너를 고발하겠다고 그러더라.”
일이 이렇게 되자 놈은 내 발 밑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러나 놈 때문에 모든 환자들한테 정나미가 떨어져서 그 뒤로 3년 동안 아무 전화도 받지 않고 환자를 만나지 않고 피해 다녔다.
최진규 약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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