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태양이 녹아들고 있었다.
하얀 바다 속으로 뜨겁게-
바닷가에 수도사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금발의 젊은이와 백발의 늙은이가.
늙은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도 쉬게 되리라.
이렇게 편안히-
젊은이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죽을 때도
영광의 광채가 내리기를.
릴케Rainer Maria Rilke1875~1926
송영택 옮김
해넘이의 마지막 인사
릴케가 이런 시도 썼구나. 연약하고 낭만적인 감수성의 시인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릴케의 시 세계는 바다처럼 넓고 깊다. 해가 넘어가는 황혼 무렵, 바닷가에 앉은 두 수도사를 (아마도 뒤에서) 바라보며 이런 거룩하고 심오한 생각을 하다니. 4행에 나오는 ‘금발의 젊은이’가 재미있다.
우리나라 시인이라면 ‘흑발의 젊은이’라고 했을 텐데, 유럽에서는 금발이 젊음의 상징인가. 마치 풍경화 한 폭처럼 서정적이고 인상적인 1연에 이어 2연에서는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에 대한 섬세한 통찰이 빛난다.
인상파의 터치처럼 시각적이고 현장감이 넘치며 간결한 언어들. 말이 아니라 생각으로 대화하는 두 인물이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두 수도사가 생각이 아니라 말을 교환했다면 시 전체에 흐르는 고독이 반감하고 긴장감이 덜했으리라. 때가 되어 바닷속으로 녹아드는 태양처럼 편안하게 이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영미의 어떤 시]
해넘이의 마지막 인사
조선일보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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