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침 배우러온 사람
우공 신보선
지난 주 토요일, 2년 전에 나에게 침술을 배웠던 한 아주머니로부터 침 배울 사람을 소개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2개월 전에 미국에서 온 사람인데 어느 침술학원에서 지난 2월부터 3월 30일까지 2개월의 속성과정교육을 모두 마치고 월요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나에게 침술을 배웠던 아주머니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우연찮게 만나게 된 미국에서 온 사람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인의 안타까운 사정이란, 침술을 배우려고 한국에 나와서 두달 동안 침술교육을 받았으나 정작 침 놓는 것은 배우지도 못하고 침 놓는 자리인 경혈만을 죽기살기로 외웠다는 것이다. 침 놓는 방법을 배우기는 했으나 침을 가르치는 강사가 수강생 중의 한 사람을 모델로 정하여 몇 군데의 경혈에 침을 찌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미국인(한국교포)은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에도 교회를 나가고는 했는데 그 교회에서 나에게 침술을 배웠던 아주머니와 서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 아주머니는 미국인이 침 놓는 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나에게 침술을 배우라고 적극 권유했다며 전화를 했던 것이다.
내가 침술 가르치는 일을 십수 년째 하고 있지만 나에게 침술을 배웠던 사람이 소개해서 침술을 배우러 왔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도 일반인일 경우 80% 이상이 침술강습소의 출신들이지만, 내가 침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던 초창기 때부터 침술강습소의 출신들이 나에게 침술을 배우러 왔었다. 그들의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침술을 배운 후, 자기와 함께 배웠던 강습소의 동료들에게 권장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속으로 무척 반가워 했었다. 침술을 가르치는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침술을 배웠던 사람들의 소개로 침술을 배우러 오는 경우는 한 건도 없었고, 언젠가부터는 누구로부터 침술 배울 사람을 소개하겠다라는 소리를 듣게되면 한 쪽 귀로 흘려버리고는 한다.
국내에는 침술을 가르치는 강습소가 여러 군데 있다. 나도 역시 처음 침술을 배울 때 몇 군데의 강습소를 전전하기도 했었다. 침술을 배우기 시작한 한참 후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학원 식으로 운영되는 강습소에서는 침술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강습소에서 배운 침술에 나름대로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래서 다른 침법에는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침술을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마음 먹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의 침술 강습소를 들락거리면서 침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는 현실에 크게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침술교육에 대한 커다란 실망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침술을 잘 가르친다는 사람이 있다고 권장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침술을 배웠던 아주머니가 미국에서 온 사람에게 침술을 배우라고 권장했다는 전화를 받고는 역시 한쪽 귀로 흘려보내고 말았다. 그 이튿날인 일요일 오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미국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교회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소개를 받고 전화하는 것이라면서 침술교육에 관해서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가 여태까지 두달 동안 교육을 받았는데도 뭐가뭔지를 모르겠는데 6일 동안의 개인지도로 침술을 모두 마스터할 수 있다는 나의 말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내었다. 나는 이럴 경우 자동차의 운전을 익히는 것과 비교하여 설명해 준다. 그러면 대개는 이해들을 한다. 전화를 걸었던 미국인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되었는지 월요일 오전에 찾아오겠다고 하면서 3일 동안 배우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스케줄이 조절이 안 돼 목요일의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만 된다고 하여 하루종일 수업받는 걸로 하여 3일이면 모두 배울 수 있다고 하자 3일 동안 배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튿날 월요일 오전에 미국인이 나에게로 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닌 그의 동생과 함께 왔다. 두 사람은 나와 마주 앉게되었고 두 사람으로부터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침술 배우기를 결정하고 온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동생과 함께 온 이유는 미국인은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자기 혼자서 내가 설명하는 교육과정을 납득하기 어려워 그의 동생을 대동한 것이라고 짐작햇다. 미국인과 그의 동생이 번갈아가며 여러 가지를 질문했고 역시 3일 동안에 어떻게 침술을 다 배울 수 있는지가 두 사람의 가장 큰 의문점이었다.
침술을 가르치는 강습소에서는 흔히 침을 찌르는 자리로 알려진 경혈을 익히게 한다. 인체에 침을 찌를 수 있는 경혈은 361개이며 그 외에 경외기혈, 신혈 등의 경혈들을 모두 합치면 1000 여 개가 넘는다. 어떻든 14경락이라는 경락에 배속되어 있는 경혈인 361개는 무조건 외우도록 강요당하는 것이다. 즉 361개의 경혈은 각각 인체의 어느 부위에 있고 거기에 침을 찔러서 어떤 질환을 고칠 수 있는지와 경혈이 갖고 있는 속성 등을 모두 암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경혈에 침을 찌르는 방법만을 배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경혈에 침을 찌르기만 하면 그 질환이 치료되는 것으로 세뇌교육을 시킨다고 보면 된다.
하나의 예를 들면, 위장경락의 족삼리라는 경혈은 슬개골의 세치 아래 경골조면 한치 바깥에 위치해 있으며, 여기에 침을 찔러 위장병을 치료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361개의 경혈에 관한 위치, 적응증, 혈성, 배혈관계 모두를 익혀야 한다. 이런 것을 제대로 공부 안 하면 인체에 침을 꽂아볼 생각은 엄두조차 못하는 것으로 믿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침을 놓기 위해서는 한의학적으로 변증시치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모든 것이 단 며칠 간의 공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인으로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6일만 배우면 침술이 마스터된다는 나의 말을 좀처럼 믿을 수 없을 뿐더러 심하게 생각하면 나를 사기꾼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경혈을 외우고 해당 경혈의 위치, 적응증, 혈성 따위를 외우는 것은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것이라고 설명해주면 의혹의 증폭은 더 커지고 자칫하면 나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게 될 우려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에 맞딱뜨리면 거의 포기를 한다. 나는 내가 하는 침술 개인지도에 대한 교육방식과 내가 생각하는 침술에 관한 사실들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지, 어떻게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침술을 배울 수 있도록 설득하거나 유도할 자신은 없다. 다만, 침으로 어떤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만 배우면 될 일이지, 경혈에 관한 잡다한 이론들을 죽어라고 공부해서 무슨 소용이냐는 말만 해준다.
미국인과 그의 동생은 침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어떻게 3일만에 배울 수 있느냐며 거듭하여 반문했다. 침으로 어떤 경혈에 침을 찔러 넣어 환자가 고통스러워 하지 않게끔 자극을 하는 것이 기술이며 이런 기술은 몇 시간이면 배울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술이 적용되어야 질환을 치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침으로 자극하는 기술이 처음엔 좀 서툴기는 하겠지만 매뉴얼대로 연습을 반복하다보면 숙련이 되는 것이 모든 기술의 습득 과정임을 되풀이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침술을 배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해 난감해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국인의 동생이 자기가 허리가 아픈데 침을 맞아서 그 효과가 어떠한지 확인해 보고싶다고 했다. 이렇게 나오면 내가 약간은 난처해진다. 허리통증 환자에게 나의 침법인 TLS 자극을 하면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통증이 없어져 편안해지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두세 번의 침 시술 후에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나로서는 미국인이 침술 배우는 데 대해서 거의 포기한 상태이니까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신경을 쓰지 않고 그의 동생에게 엎드리게 하여 침 시술을 했다. 그리고는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 통증이 없어졌다. 미국인의 동생은 한 번의 시술로 허리의 통증이 없어지자 시종일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아 왔던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놀라워 했다.
결국, 이렇게 해서 미국인의 침술개인지도는 시작되었다. 개인지도 이틀째인 화요일에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나의 허리며 어깨에 침을 찔러 TLS 침법으로 시술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놀라워했다.
수요일까지 침술을 배웠던 미국인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조만간 은퇴한 후 남미로 선교활동을 하러 간다고 한다. 남미의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침술이라는 것을 알고 큰 맘 먹고 한국으로 침술을 배우러 왔다는 것이다.
그는 비가 내리는 어제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공항입니다. 이제 막 탑승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3일 짧은 기간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많이 배웠고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언젠가 미국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 글은 해당 미국인 분의 양해를 구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출처] 미국에서 침 배우러 온 사람|작성자 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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