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촌 골목
등 굽은 급한 언덕길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한파는
코 끝이 애는 듯하다.
여러 형제들을 만나고
끝 집에 문을 두드리고 여니
줄 맨 강아지가 뛰쳐나왔다.
지린내와 함께!
화장실도 멀리 있는 형편에
이 추운 날 어찌하겠나!
얼마를 기다리니 할머니가 나오셨다.
앞을 보지 못한다.
키는 내 가슴팍 정도에 자그마하고
바람에 날릴 듯 가냘프기만 하다.
방한 목도리와 가져온 찬을 드리며
기도하자 하니 감사하다며
내 손을 잡고 머리를 숙인다.
기도를 시작하니 갑자기 목이 메고
눈물이 복받쳐 일시 입을 뗄 수 없었다.
간신히 기도를 마치고 나니
앞 못 보시는 할머니가
내 외투에서 주머니를 찾는다.
꼬깃꼬깃 접힌 만원권 지폐를
손에 쥐고서!
“목사님, 이렇게 추운데 오셔서
이렇게 추운데 오셔서….
감사합니다.”
전해오는 그 진실함에
사양조차 할 수 없었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쪽방촌을 떠나오며
봉사자에게서 5만원을 빌렸다.
다시 찾아가 사양하는
손에 쥐어 드렸다.
이런 성탄 선물교환은
평생 40여 년 목회에 처음이었다.
2023.12.23
쪽방촌 성탄절 심방
이주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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