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찬양 하라/성가

Mozart Ave Verum Corpus por Leonard Bernstein

天上 2017. 4. 2. 20:11



Mozart Ave Verum Corpus por Leonard Bernstein

Ave verum corpus, natum
De Maria Virgine,
Vere passum, immolatum
In cruce pro homine,
Cujus latus perforatum
Unda fluxit et sanguine,
Esto nobis praegustatum
In mortis examine.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진정한 성체가 나심을 경배하나이다.
모진 수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은
인류를 위한것,
뚫린 가슴에서
물과 피를 흘리셨네,
우리가 죽을 때에
그 수난을 기억하게 하소서. 




미완성의 대작 레퀴엠, 완벽한 소품 아베 베룸(Ave Verum Corpus)

모짜르트가 서른여섯살 짧은 생애의 마지막 해였던 1791년..

그는 일찍부터 많은 미사곡과 연도곡, 칸타타 등의 교회음악을 작곡했지만,

결혼한 직후인 1783년 'C단조 미사"를 작곡하다 중단한 뒤로는

교회음악을 작곡하지 않았는데

이 삶의 마지막 해에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듯

성체 찬미가인 '아베 베룸 Ave Verum Corpus'과 '레퀴엠 Requiem'을 작곡합니다.

 

아베 베룸은 불과 3분20초 남짓한 라틴어 합창곡입니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처음 쓰여진 이 라틴어 시는

1300년 경에 교회 기도문으로 받아들여졌고,

다양한 버전으로 퍼져 나가면서 중세에 이미 작곡이 되어 노래로 불려졌습니다.

 

1791년 늦봄부터 모짜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빈 근교의 휴양지 바덴에 가 있었고,

그곳에서 아들을 출산합니다.

이 시기에 빈에서 일하면서 몇차례 아내를 만나러 바덴에 갔던 모짜르트는

 그 도시에서 합창 지휘자로 일하던 친구인 안톤 슈톨을 위해

이 모테트 '아베 베룸'에 곡을 붙여 주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성체께서 도움을 주시기를 간구하는 마지막 행 때문에

종종 장례예절에 부르는 이 곡은

아주 짧으면서도 모든 면에서 원숙한

모짜르트의 기량이 남김없이 개화된 걸작으로 꼽힙니다.

 

바움가르트너는 모짜르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드높고 숭고한 작품이라면

바로 이 곡을 꼽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고

음악평론가인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이 곡과 레퀴엠을 비교하며

하나는 소품이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완성되었고

다른 하나는 대작이지만 미완성으로 남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불과 죽기 6개월 전에 자기의 죽음을 예비하듯

성체찬미가인 이 곡을 작곡하고 레퀴엠을 쓰다가 운명한 모짜르트....

그의 절실한 호소가 담겨 있는 듯한 곡입니다.

 

파바로티의 이탈리아 모데나시의 장례미사때

그의 후원을 받던 맹인가수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가

파바로티의 안식을 위해  장례식장에서 부른 곡이 바로 이 곡입니다.

 

명료하고 강렬한 감동으로 복잡한 마음을 정결하게 비워주는 아베 베룸...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가 음악과 더불어 가슴에 사무치는 이 곡은

수많은 모짜르트의 대작을 물리치고

'최고의 작곡가가 남긴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1990년 4월 바이에른 방송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레너드 번스타인은

한없는 평화로움과 벅찬 감동을 선사하는 아베 베룸을 보여줍니다.

 

느릿한 현악기와 오르간의 서주로 시작되어

혼성4부합창이 고요하게 경건한 기도를 드리듯 합니다.

 

가사는 라틴어로 되어 있으며,

세상의 괴로움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옆구리를 피로 물들이며 희생이 되신 성체를 찬미한 곡입니다.

 

'경배하나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의 성체여'......

곡 전체가 3분여밖에 안되는 마흔여섯마디로 된 이 곡이

어떻게 이토록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니는지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듣는 이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마치 지상에서 미리 느껴보는 천상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사람들은 첫 여덟 마디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여기에 대단한 작곡 기법이 숨어있는 것은 아니다.

 

작곡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화음만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단순한 화음으로 이런 선율을 만들었는지 설명할 방법은 없다.

그저 감탄할 뿐이다.


다음 여덟 마디는 다소 복잡해진다. 

고통을 표현하려고 음들이 조금 뒤틀리다가 ‘십자가에서’를 뜻하는 ‘in cruce’에서

소프라노만 노래하고 나머지 성부는 잠시 멈춘다.

 

십자가를 강조하는 방법이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상처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음(요한 19,34)을 노래하는 부분이다.

 

음들이 고통스럽게 움직이며 화음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묘사한다.

성가대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 부분을 부르기 힘들었으리라 짐작한다.

노래하는 우리도 예수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리라.


이어서 마무리하는 음악이 시작한다. 

마지막 부분은 지금까지와 사뭇 다르게 시작한다.

이때까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같은 리듬으로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마지막 부분에서 여성과 남성이 둘로 나뉘어

여성이 먼저 시작하면 남성이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서로 리듬이 엇갈리며 여성과 남성의 목소리가 분리되어 들린다.

여기서 ‘우리(nobis)’가 나온다. 

예수님의 희생이 바로 우리를 위한 희생이었음을 기억하는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려고 합창단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마지막 어구인 ‘죽음의 시험을(in mortis examine)’ 노래할 때

선율들이 다시 한번 고통스러워하며 마무리한다.

 

앞의 ‘십자가에서’를 노래하는 부분과 비교하면

매우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십자가와 죽음을 음악적으로 유사하게 처리하여

서로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허영한 요셉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아베 베룸 코르푸스'를 들을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어요.

 제가 노래 부를 때 말고 그냥 들을 때 말입니다.

저는 이 곡을 정말 좋아합니다.

심금을 울리는 음악입니다.

심장에 곧장 가서 박혀서 심장이 울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듭니다.

천사의 고통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이 곡은 우리의 운명,

죽을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의 숙명을 실감나게 합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게 되죠.

우리는 세상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알고 나누며 살지만,

그런 것을 음악을 통해서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짜르트는 이 점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채훈의 '내가 사랑하는 모짜르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