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人間勝利

김두한(金斗漢), 사망 미스테리의 진실

天上 2017. 10. 10. 14:17


김두한(金斗漢), 사망 미스테리의 진실

1972년 11월 19일,

거구의 한 중년 남자가 서대문 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

그리고 유신헙법이 공표되어 어수선하던 21일, 결국 마지막 숨을 거뒀다.

그는 바로 주먹의 황제 김두한(金斗漢)이었다.


불세출의 협객이었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두한은 환갑을 한참 앞둔 쉰 넷 나이에 돌연 사망했다.

그리고 갑작스런 그의 사망소식은 많은 의혹을 남겼는데, 과연 김두한의 죽음에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었을까?


김좌진(金佐鎭)장군의 아들, 광교(廣橋)밑의 거지, 일제에 대항한 조선 제일의 주먹에서 국회의원까지

올랏던 인물 김두한(金斗漢)...

그의 일생은 그야말로 격렬한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두한의 죽음은 너무나 허무했다.

한창 건강하던 쉰 넷에 돌연 사망하고 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어떤 음모가 있다고 말하는데 음모, 과연 사실일까?

타고난 싸움꾼으로 알려진 김두한(金斗漢),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


1918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때부터 일본 경찰로부터 쫓겨다니는 신세였다.

그 이유는 그가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金佐鎭)장군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통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채 청계천 다리 밑에서 거지들과 함께 생활을 하던

김두한은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떠돌이 생활을 하며 무수히 얻어맞은 덕택에 때리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종로를 장악했던 최고의 주먹을 무찌르고 조선 제일의 주먹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싸움 기술뿐만 아니라 의협심과 동정심을 동시에 갖추어 협객으로도 불리웠는데,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불의에 맞서는 그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자신의 예전 생활을 기억하며 불쌍한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때는 항일 주먹으로, 해방 후에는 반공투사로 활약한 그는 언제나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김두한은 1954년 국회에까지 진출하는데,

바로 자신의 터전이던 종로에서 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일자무식이었지만 대중을 대표하는 그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

특히 그의 연설은 대중들을 사로잡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함께 의원활동을 했던 이만섭(李萬燮) 또한 그의 연설을 듣고 감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가로 변신한 이후에도 그의 의협심 강한 행동들은 변하지 않았다.

독재정치에 강하게 반대했던 그는 가는 곳마다 뉴스거리를 만들었고 겁없는 그의 행동에 대중들은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보이지 않는 적들도 생겨났다.


호탕함과 강한 의협심은 김두한을 국회에까지 진출하게 했지만 그것이 결국 그를 위험하게 만들었다.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부패한 국회를 향한 오물투척 사건이다.


3대에 이어 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1966년,

그의 정치생활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난다.

국산품 애용을 종교처럼 떠받들던 시절,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이 일본에서 사카린 원료를

밀수한 사실이 들어난 것이다.


온 나라가 이 사건에 분노했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추궁을 위한 국회가 열렸다.

그때 발언대에 올라온 김두한은 장관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당시 상황에 대한 국회 속기록을 보면, "이병철이 밀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범죄를

저지를만한 환경을 조성해 줬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파괴하고 재벌과 유착하는 부정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현정권을 응징하고자 한다.

국민의 재산을 도둑질하고 이를 합리화 시키는 당신들은 총리나 내각이 아니고 범죄 피고인에 불과하다.

그러니 너희들이 밀수한 사카린 맛을 봐라!"


김두한은 들고왔던 상자를 풀어 담아왔던 사카린을 장관들에게 쏟아 부었다.

그런데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겼다.

그의 행동에 국회는 발칵 뒤집혔고 분노한 장관들은 내각 총사퇴를 결의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큰 파장을 일으킨 국회 오물투척 사건은 김두한 정치 생애에 하이라이트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몰락의 신호탄이 되기도 한다.

박정희 정권과 여당, 심지어 야당까지도 등을 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국회에서 제명당한 김두한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심한 고초를 당했다.


일본 경찰에게 고문을 당해도 멀쩡했던 그였지만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그런 고통에서 살아 나왔지만 그래도 김두한은 무너지지 않았다.

또다시 67년 3월 출마한 그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승리가 확실했다.

그러나 개표 도중 체포되고 만다.

죄목은 반공법이었다.


해방 이후 반공투사로 맹활약 했던 그가 반공법으로 체포되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손을 대는 사업마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방해를 받았다.

이렇게 김두한은 진정한 야인으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협박과 테러는 끊이지 않았다.

바로 군사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를 공공연히 비난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그러한 행동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이제 조선 제일의 협객 김두한은 서서히 몰락해 갔다.

하지만 그래도 권력의 눈치를 보지않는 그의 배짱은 여전했는데 갑자기 김두한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는 김두한을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박정인씨를 만났다.

여고 영어교사를 했던 그녀는 58년부터 김두한과 함께 정릉의 집에서 살았는데 다시 찾아간 그집은 불타버려

그 흔적만 남아 있었다.

마치 김두한의 말년을 보여주듯 그 집은 위태롭게 서 있었다.


1972년은 긴장감이 감돌던 시절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독재정치를 합법화 하기 위해 국회를 해산시켰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신헌법 통과 이틀전 김두한은 아침부터 약속이 있다고 집을 나섰다.


불안한 마음에 함께 나가려했던 부인에게 김두한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안심을 시켰고

저녁에 영화를 보자는 약속까지 했다.

김두한의 전화를 기다리던 그녀는 저녁 늦게 이상한 전화 한통을 받았다.

바로 한 호텔방에서 김두한이 쓰러졌다는 내용이었다.


급히 호텔로 뛰어갔지만 그녀는 김두한을 만날 수 없었고, 그방 자리를 뜬듯 테이블 위에

넉 잔의 컵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컵을 보는 순간 박정인씨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호텔직원의 말을 듣고 고려병원으로 간 그녀는 응급실에서 낯선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김두한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말도 없이 곧 사라졌다.


당시 김두한은 매우 심각한 상태로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진료카드를 보면 고혈압에 의한 뇌출혈이 병명으로 나와 있다.

혈압이 260까지 올라가 있었고 의식불명의 상태였다.

그리고 자택으로 옮겨지자마자 김두한은 사망하고 말았다.


김두한의 알려진 사망 원인은 뇌출혈이다.

고혈압이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릴적부터 싸움으로 다져진 김두한은 누구보다 강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 평상시 혈압이 높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것도 낯선 장소에서 쓰러졌던 것일까?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알려진 김두한의 죽음 뒤에는 이상한 점들이 많았다.

아침까지도 멀쩡했던 김두한은 왜 그날 갑자기 쓰러진 것일까?

그리고 누구를 만났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망 이틀전 누군가가 집으로 찾아왔다.

오물투척 사건 이후 6년간 김두한의 집에는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자주 들렀고,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결국 그날도 마찬가지로 언성이 높아졌고 김두한은 자신을 좀 내버려 두라며 매우 화를 냈다.


그런데 며칠 후 동인 인물들이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약속한 날은 11월 19일, 바로 김두한이 쓰러진 날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김두한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일까?


김두한의 공식적인 사망원인은 뇌출혈이다.

강골 체력으로 유명했던 김두한은 당시에는 6년간의 테러의 위협과 협박으로 많이 약해져 있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를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결국 사람들은 테러에 의해 김두한이 죽었고 이를 숨기기 위해 뇌출혈로 조작했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당시 의사를 수소문해 찾았다.

취재팀은 당시 응급실 레지던트였던 의사를 만났다.

혹시 그는 김두한에게서 테러의 흔적을 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손관수 의사는 멀쩡하던 사람이 혼수상태가 되려면 그만한 충격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약속 장소였던 호텔방 안에서 그러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김두한을 병원에 데리고 온 그들은 누구였을까?


김두한의 죽음에 중앙정보부가 개입되어 있다고 한 것은 김두한의 아들 김경남씨도 느꼈다고 한다.

바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0일이 되었을 때 자신에게 온 연락 때문이었다.


이상의 정황으로 볼 때 김두한의 죽음은 자연스러온 것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6년 간의 협박과 위협으로 인해 그는 서서히 죽어갔고 결국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김두한이 쓰러진 당시 상황을 알고 싶어한다.


김두한의 공식적인 사망 원인은 뇌출혈이다.

누군가에 의한 사망 조작은 찾아볼 수가 없다.

무수히 나돌던 소문처럼 테러에 의한 죽음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김두한에 대한 계속되는 협박과 정신적인 불안감 조성은 고도의

심리전을 통한 간접살인 의혹은 지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