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人間勝利

천상병과 유고 시집 '새'

天上 2018. 1. 18. 07:51

천상병과 유고 시집 '새'

2018.01.18   

천상병(1930~1993)은 불우와 가난에 기죽지 않고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라고 노래했다.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하고 큰소리치는 시 '행복'을 읽을 때마다
나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장석주의 사물극장] [29] 천상병과 유고 시집 '새'

천상병은 일찍이 마산중학교 재학 중인 1949년
'죽순(竹筍)' 11집에 시를 발표하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다니던 중 '현대문학'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정치와 무관하던 그가 뜻밖에도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여섯 달 옥고를 치르고 나왔다.
의정부 수락산 밑에 살며 인사동에 나왔는데,
벗들에게 1000원을 얻어 막걸리 한잔 마시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았다.
1970년 영양실조로 쓰러진 뒤 무연고자로 분류돼
서울시립정신병원에서 치료받았다.
다들 몇 달째 코빼기도 내밀지 않고 소식이 끊긴 천상병이 죽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누군가 불쌍한 천상병 유고 시집이나 묶어주자고 갸륵한 뜻을 내고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새'가 나왔다.
이 문단 미담이 신문에 실리자
서울시립정신병원에서 '천상병 시인이 여기에 있다'고 바로 연락이 왔다.

문우들이 비단 보자기에 호화 양장본으로 꾸민 시집 10권을 싸 들고
서울시립정신병원으로 병문안을 갔다.
이 '유고 시집'을 일별하고 천상병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천상병의 카랑카랑한 일성은 "내 인세는 어찌 되었노?"였다.
미처 인세 생각을 못 했던 탓에 문우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했다.

죽어서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들면 어쩌냐고 걱정했던 시인.
커피 한 잔과 갑 속의 두둑한 담배,
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도 버스 요금이 남았다며 행복하다고 말하던 시인.
그는 무소유였지만 가난과 불행에 주눅 들지 않고 늘 늠름했다.
오히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고
'귀천(歸天)'에서 썼다.
시인의 긍정주의 낙관론은 많은 것을 거머쥐고도
불행감에 허덕이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7/20180117030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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