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ity/神學

로만 칼라 / 클러지 칼라 의 변화 역사

天上 2017. 5. 21. 10:20

 


 

로만 칼라 / 클러지 칼라 의 변화 역사    

천주교회와 개신교회의 오해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결론: 클러지칼라(로만칼라)는 개신교에서 착용이 시작되어 천주교회가

개선하고 현재 모든 교회 성직자들이 입는 교회 성직자의 제복과 같다.

 

클러지 칼라(clergy collar 또는 clerical collar)는 여러 종류의 클러지 칼라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로만칼라라고

부르는 것이다. 클러지는 '성직자' 라는 뜻이다. "로만"의 의미는 천주교회가 개선에 참여했다는 뜻이지

만들었다가 아니다.

 

클러지칼라는 크게 3종류로 앞깃(tab)식, 목 띠(neck band)식, 로마식이다.  

 

성직자 복장은 교회가 제도화하면서 나타났으며 초기에는 유대교식의 영대(스톨) 정도에서 당시의 공직자 의상을

흡수하기 시작했고 그런 전통은 현재 천주교 사제의 수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요즘 국내 개신교와 천주교의 성직자 복식에 대한 오해를 풀었으면 한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로만칼라는 개신교의 성직자 기본 복장(클리지셔츠)에서 유래했고,

천주교에서는 1960년대부터 입기 시작한 복장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천주교에서 개선에 참여했었고, 다른 교회들이 이를 수용했다. 다른 예복은 그리 중요한 관심

사항이 안되니 주로 입는 성직자의 기본복장 로만칼라/클리지칼라 셔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앞깃(tab)칼라 클러지 셔츠

복장이 초기 클러지셔츠의 종류이다. 이 옷의 목에 두르는 흰색 목 띠(neck band)와 앞의 네모 앞깃(tab)클러지셔츠는 현재에도 입는 복식이다. 원래는 유럽지역의 공직자 옷이었으나 흰색의 네모 앞깃은

개신교 목사들의 옷으로 굳어졌다. 개신교 목사가 공직자의 옷을 입은 까닭은 초기 개신교는 영주 밑의 국가교회 형태로 발전되어 준공무원으로 대우받아서다. 천주교 사제는 항상 수단 같은 사제복을  입었지만 가끔 위의 셔츠를 입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사제가  학교 교사와 같을 일을 할 경우 공직자 신분이었으므로 위의 네모 앞깃을

다른 무늬로 착용했다.  존 웨슬리는 본래 개신교인 영국 성공회 성직자로 활동해 감리교운동을

이끌었기에 당시 영국 성공회 성직자들이 이런 복장을 이전부터 했다는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지역에서 개신교 목사 복장으로 널리 입었으며, 현재도 독일 루터교회에서는 예배시에 성직자 복장으로 착용하기도 한다. 현재 독일 법원 공무원은   목 띠는 거의 없고 네모 앞깃의 모양과 색상을 조금 다르게 해서

입기도 한다.


목띠(neck band)칼라 클러지 셔츠

18세기 감리교 운동으로 촉발되어 꽃을 피운 19세기 영국 옥스포드운동에서 성공회 및 여러 교회 성직자들이 널리 착용하면서 성직자 상징으로 된 흰색 목띠는 국가교회의 개신교인 루터교, 성공회와 달리 국가 예속 없이 자유신앙을 따르는 유럽과 미주의 자유 교회 성직자들의 간소한 성직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7세기~18세기 유럽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온 이민자들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자유스러운 개신교회를 설립하기 시작했으며, 국가의 관리에서 벗어난 개신교회의 성직자들도 성직을 수행하기 위해 성직자의 복장을 자연스레 갖추었다.공직자와 국가관리의 상징이기도 했던 네모 앞깃(tab)을 떼고 목 띠(neck band)만을

두른 성직자 복장(초기 목띠 클러지셔츠)의 모습이 나타났다. 위의 사진은 후대의 것이지만 넥타이를 두를 수 없는 흰색 목 띠로 초기 형태를 유지해 앞으로 잠그게 되어 있다.

 

흰색 목 띠를 입기 시작한 성직자들은 특히 이민 온 독일계 개신교 성직자들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독일내에서도 국가관리를 거부한 자유 교회 활동을 하던 성직자들이었다. 자유교회 성직자의 복장이  네모 앞깃을 뗀거나

덮은 형태의 클러지칼라였다고 한다. 미국 초기 이민사 중 독일계 이민자가 영국과 다른 유럽계 이민자보다 많아 미국내에서 독일어를 더 많이 쓰던 시절이 있었다. 따라서 다수였던 독일계 교회는 자연스레 주변 교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당시 셔츠는 깃과 소매가 분리되는 형태여서 같은 셔츠에 넥타이를 매는 깃이나 흰 띠 형태의 깃을 탈부착하여 입었다. (칼라)만 달랐지 같은 옷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 목 띠 착용은 성직자와  일반성도의 구분이 없거나 적은 개신교 믿음에 거스름이 없었다. 설교자의 예배를 위한 준비였을 뿐이었다.

 

18세기에는 미국내 활동을 하던 기존 개신교였던 루터교와 성공회나 천주교 성직자들도 자유 교회의 개신교 성직자의  흰 목 띠 셔츠를 거부감 없이 평상복이나 수단 등에 안에 입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점차 흰색 목 띠는 성직자의 복장으로 굳어지기 시작하고, 단추는 목뒤로 가서 더욱 깔끔한 느낌의 형태로 변화한다. 유럽에서 이 흰색 목 띠 형태의 깃은 18세기 감리교 운동에서 시작되어 복음주의, 교회 개혁 운동이 꽃을 피운 19세기 영국 옥스포드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교회의 개혁 전성기를 맞으며 영국 성공회 성직자들이예전의 네모 앞깃을 떼고 흰 목 띠 형태의 클러지셔츠를 널리 착용하게 되면서, 이후 유럽과 미주에서도 개신교회든 천주교든 이 흰색 목 띠의 클리지셔츠는 성직자 복장의 의미로 널리 받아들이게 된다. 20세기에 들어서는 흰색 목 띠만을 셔츠에 입는 클리지셔츠 복장은 영국 성공회와 루터교, 감리교 등 유럽 전역, 미주지역, 아프리카, 아시아의 개신교 대부분의 성직자 복장으로 굳어지게 된다.

 

흰색 목 띠의 클러지셔츠(성직자 셔츠)와 유사한 유럽의 복장을 볼 수 있다. 흰색 천으로 목을 감는 옷은 고급 장교, 귀족들이 입는 예복식 군복 안에 입었었다. 본래는 투구와 갑옷이 닿는 목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가 장식적이고신분을 나타내는 복장의 일부로 변화했다. 당시 유럽 귀족출신 천주교 사제나 고위 사제도 상위신분이었으므로 위와 같은 형태의 목을 감는 옷을 입기도 했다. 따라서 개신교에서 시작된 간편한 흰 목 띠의  성직자 복장을 거부감 없이 착용하게 된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이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남성 정장이나 외투를입을 경우에는 수단을 입은 천주교와 개신교 성직자 구분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위 사진의 겉옷은 수단이 아니라 20세기 초까지 흔히 입던 예전 형태의 남성 정장 상의다. 저 상의의 양쪽 깃을 접어 V형으로 만들면 현재의 남성 양복 정장 상의가 된다. 목 띠의 단추는 등쪽으로 넘어가서 이전보다 훨씬 깔끔하다. 위의 사진에서 놀랍게도 현재의 로만칼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영국 개신교 성직자의 옷에서 말이다.


 천주교에서는 흰색 목 띠를 하고 전통적인 옷깃이 솟은 조끼를 입어 천주교 성직자로 구분하였고, 이 형태는

현재도 천주교 성직자들이 착용하는 복장이다.

루터교, 성공회 포함한 개신교 성직자들은 솟은 깃이 없는 조끼나  셔츠를 입어서 개신교 성직자로 구분하였다. 성공회나 루터교의 경우 전통적인 예복이나 외투를 입을 경우 일반신자들이 천주교 성직자와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로만 칼라 클러지 셔츠

1960년대 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년)가 소집되면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1960년대 이후의 천주교의 변화는 신학 뿐만 아니라 세부활동까지 변화의 영향을 끼쳤다. 불가타 라틴어 성경에서 자국어성경으로 바꾸며,  라틴어 미사를 자국어 미사로 변경하고 전례 일부도 수정하면서, 천주교 성직자의 복식도  변화가 온다. 기존 성직자 옷과 사제복에서 기존 양복과도 어울릴 수 있는 사제복을 제안하며 나타난 것이 흰 목띠의 클러지 칼라를 개선한 로만칼라이다. 로마의 천주교회가 분리형의 흰 띠 옷깃과 셔츠를 일체형으로 고정하고 흰 목띠를 하고 조끼나 외투, 솟은 깃의 수단을 입었을 때 성직자의 모습과 유사한 로만칼라를 편리한 성직자 옷으로 제안한다.

 

당시에서는 정작 천주교 성직자들은 이 상의 셔츠 형태의 옷에 대해서 개신교의 성직자 옷 같다고 주저하고 반대한 반면, 개신교 성직자들은 흰 목띠의 클러지셔츠를 입고 외투를 입었을 때와 다름이 없는 로만칼라에 대해서 개선된 간편한 옷으로받아들였다. 유럽의 개신교회들은 이 로만 칼라를 기본 성직자 옷으로 천주교 성직자와 함께 착용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주지역과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 개신교들은 중에는 로만칼라를 늘 하는 개신교단들이 여럿이다. 의외로 천주교는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 오랜 진통을 통해 로만 칼라를 받아들이고

일부 성직자들은 아직도 예전의 사제복만을 고집하기도 한다.

 

현재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와 모든 교회의 성직자들은 유럽 공직자와 귀족들의 옷에서 유래하여 개신교 성직자들이 입기 시작하고 천주교가 개선한 성직자 옷인 클리지 셔츠를 교단마다의 예복과 함께 착용하고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다.

천주교든 개신교든 교회가 공유하는 전통과 관습을 자신들만의 것이라고편협하게 고집하지 않았으면 한다. 로만칼라의 클리지셔츠를 입는다고 개신교 성직자가 천주교 교황에서 충성을 맹세하는 것도 아니고, 천주교 성직자가 흰 목띠를 했다고 교황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성직자로서 옷을 입을 뿐이다. 서로 다른 의미로 입지만 클러지셔츠는 근대 교회가 함께 일군 교회 성직자들에 대한 근대적 전통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원래 로만칼라라는 것은 클러지셔츠의 한 종류로,

성직자만의 복장이 아닌 당시 두루 착용하던 과거 유럽의 복장 유행 정도로 보셔야 합니다.

클러지셔츠에도 몇가지 종류가 있는데, 크게 앞깃식, 목띠식, 로마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개신교의 클러지셔츠는 목띠식으로,

이것은 가톨릭의 전유물이 아닌, 과거 유럽의 공직자들이 입는 옷깃의 형태입니다.

과거 유럽 귀족들의 그림을 보면 여러 종류의 클러지셔츠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로만칼라는 클러지셔츠의 한 형태일 뿐이며,

이러한 아무나 입을 수 있는 평상복을 성직에 도입된 역사로만 보자면

1827년 경 개신교(루터교)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이미 말했듯이 초기 클러지셔츠는 대중적인 평상복이므로

가톨릭에서는 전혀 입지 않았다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때의 클러지셔츠는 말 그대로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었으므로

가톨릭의 것이냐, 개신교의 것이냐는 논쟁의 꺼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클러지셔츠, 혹은 이것에서 유래한 로만칼라를 가지고

교황에 대한 순결의 다짐이라는 등의 의미 부여는, 가톨릭 내부적으로는 그들의 자유이지만,

외부에까지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오버" 라고 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클러지셔츠는 본래 가톨릭의 것이냐 개신교의 것이냐라는 논쟁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여러 복장 중에 어느 복장을 자주 입을 것이냐의 선택의 결과일 뿐이지

성직을 목적으로 개발한 복장이거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한 와중에 신교에서 클러지셔츠를 더 많이 애용함으로 인해 개신교의 것 이라는 관념이 굳어진 것이지요.

1960년대 가톨릭 내부에서 조차 클러지셔츠는 개신교의 것이므로 입지 말자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과레스끼의 소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이라는 소설을 보면

사제 "돈 까밀로" 가 보좌신부의 클러지셔츠 착용을 보고 사제 같지 않다며 핀잔을 주고

자신은 절대 입지 않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절대 독점되어서는 안되는 복장을 가지고

"우리의 것이다..." 라고 못 받으려 시도한 일부 개신교 측 시도를 두어 잘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반대로 "우리의 것을 따라했다..." 라는 주장에 대하여도 사실을 곡해하는 것 같아 글을 남깁니다.

복장은 복장일 뿐입니다.

굳이 충성과 성결의 서약을 하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께 하십시오.

 

로만칼라의 이해


근래들어 우리나라에서 천주교나 개신교 성직자들의 복식으로 인한 오해가 많다.

결론을 말하면 현재의 로만칼라/클러지칼라는 천주교 고유의 것도 아니고 개신교 고유의 것도

아닌 모든 교회와 교단이 공유하는 복식이다. 천주교인 중에는 천주교만의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정작 천주교는 1960년대가 되어서야 클러지 칼라(로만칼라)의

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클러지 칼라의 셔츠는 모든 교회의 것이라고 해야 한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구분이 너무나 분명한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오해인 것 같다.

성직자의 기복복장인 로만칼라라고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옷깃은 본래 이름은

클러지 칼라(clergy collar 또는 clerical collar)라고 한다. 옷깃을 포함한 상의를 클러지 셔츠

(clergy shirts 또는 clerical shirts)라고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사목자/목회자 셔츠 정도가 된다.

 

클러지셔츠는 유럽이나 미주지역에서는 현재 개신교나 천주교, 정교회의 성직자들이 입는다.

물론 아시아 지역과 오세아니아 지역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교인들이 오해하는 천주교 고유의 복장이 절대로 아니다. 로만칼라라고

부르는 클러지 셔츠는 모든 교회의 것이다.  물론 천주교만의 전통적인 수단이나 예복들이 

있고 개신교만의 전통적인 예복도 있다. 하지만 클러지 셔츠는 300여년전 개신교에서 입기 시작해

천주교는 1960년대에서야 입기 시작한 사실은 분명하다.


놀랍게도 천주교에서는 1960년대 클러지 셔츠 반대 운동도 있었다. 중세풍의 기존 사제복에서

클러지 셔츠로 사제 기본복장을 변경할 때 꽤 많은 반대와 진통이 있었다. 개신교의

복장을 따라한다는 엄청난 거부감을 들어내기도 했다. 물론 유럽과 미주 지역에서의 얘기다.

유럽의 많은 사제들이 기존 중세풍의 사제복을 입고 주교들에게 찾아가 클러지 셔츠 착용

반대 입장을 들어내기도 했다. 과레스끼의 유명한 소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중에 주인공인

사제 "돈까밀로"가 새로온 보좌신부의 클러지 셔츠 착용을 보고 사제같지 않다는 핀잔을 주고,

자기는 절대 입지 않겠다고 외치는 장면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때 천주교는 개신교와 같이 미사

집전 언어도 라틴어에서 자국언어로 변경했는데, 이 역시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클러지셔츠만을 본다면 개신교에서 먼저 착용하기 시작했다. 독일과 영국 개신교에서 그 원형을

성직자들이 이미 300여년전 천주교보다 먼저 착용했고 지금까지도 착용한다. 착용이 쉽지 않던 이

클러지셔츠를 1960년대 개선작업을 해 쉽게 착용하도록 도운 천주교의 공헌도 크다.


천주교 사제는 클러지셔츠, 개신교 목사는 일반정장이라는 공식이 있지만 이것도 잘못된 오해이다.

개신교는 여러 교단이 있는데 이 가운데 세계적으로(우리나라가 아니라) 규모가 큰 개신교단인

루터파 교회, 성공회교회, 감리교회는 클러지 셔츠를 입는다. 루터파, 성공회는 성직자들이 다양한

예복과 함께 클러지 셔츠를 항시 착용하며, 감리교회는 목사들이 클러지 셔츠를 입도록 권장한다.

그외 교단 중에서도 많은 개신교단에서 클러지셔츠를 성직자들이 입으며,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의

장로교회 중에서는 클러지 셔츠를 입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장로교와 감리교가 개신교단중에 대표적인 교단인데 입장이 다르다. 장로교는

만인사제설에 따라 목사와 신도들의 구분을 주지 않아 클러지 셔츠를 입지 않고 예배시에만 성가대와

목사가 예복을 입는다. 감리교에서는 목사가 클러지 셔츠를 입을 수 있으며(선택 사항이다.),

예배시에도 예복을 착용한다.

감리교의 감독(천주교의 주교)은 천주교 사제들이 입기 전부터 클러지셔츠를 착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규모 교단이지만 국내 성공회나 루터파 교회 성직자들은 당연히 클러지 셔츠와 다양한 예복을 입는다.

이외에도 여러 교단에서 성직자들이 클러지셔츠를 입는다. 

장로교와 침례교, 일부 개신교단이 신학적 이유로 성직자 복장인 클러지 셔츠를 입지 않을 뿐이다.


천주교회나 개신교회나 기본적인 교회의 전통 위에 서 있다. 입장은 다르지만 소중한 전통을 공유한다.

무조건 네 것이다 내 것이다라고 주장하기 이전에 솔직하게 소중한 전통 같은 모든 교회 것은 밝혀야 한다.

성경이나 신앙고백, 성사와 교회내 상징들이 그렇고 성직자 기본복장인 클러지 셔츠도 그렇하다.

 

물론 천주교와 개신교의 클러지 셔츠에 대한 개념은 다르다. 개신교에서는 성직자의 제복(유니폼),

즉 군인의 군복이나 사업가의 양복정장과 같은 제복의 개념이 강하며, 천주교에서는 독신과 

연계한 약속의 개념이 강하다.  


현대의 클러지 셔츠는

개신교회에서 입기 시작해 천주교회가 개선에 참여하고 정교회와 모든 교회에서 성직자가 입는

복장이다. 일부 교단만의 것이 아닌  모든 교회의 것이다. 어쩌면 클러지셔츠는 우리도 모르게

에큐메니컬 운동, 교회일치 운동의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클러지 셔츠에 대해서 천주교인이건 개신교인이건  비록 의미는 다를지라도 모든 교회에서

공유하는 성직자의 근대적 전통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성직자의 일상복(클러지 칼라, 일명 로망/로만 칼라)과 예전복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소위 로망 칼라로 불리는 현재 성직자의 평상복은 유럽에서 개신교 목회자들과 법조인들의 드레스 코드였다. 그 당시 이들은 말을 타기 위한 편의상 검은 옷에 흰색의 목테두리(sweatband, cravat)를 했다. 이것이 18세기 영국의 존 웨슬리에 의해 성직자 예복으로 차용되었다. 그는 말을 타고 원거리를 다니며 전역을 다니며 설교했는데 이 복장을 선호했다.

로망 칼라는 클러지 칼라(clerical collar)라고 부르는데, 이후 유럽에서 이런 형태의 로망 칼라가 개신교 성직자의 일상복이 되었다. 18세기 이전까지 로마 가톨릭에서는 아직 이런 복장이 신부들의 평상복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현대의 근본주의 개신교인들 사이에서, 로망 칼라가 가톨릭 성직자 예복의 전형이고 그것을 개신교에서 가져왔다고 말하는데 대단히 유감스런 말이다.

영국성공회 조사센터(Glasgow Herald, 1894.12.6일자: The Times, 2002.3.14 : 1909년 글래스고우에서 발행된 Who's Who에 실린 도날드 맥리드에 대한 글)에 의하면, 현재 형태의 로망 칼라는 글래스고우에서 목회하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도널드 맥리드(Donald Mcleod) 목사가 처음 고안해서 착용했다.

1840년 경, 영국 성직자들은 세속과 자신을 구별한다는 의미에서 그 외적 상징으로 이 드레스 코드를 채택했다. 그 당시 사용된 검은 옷에 흰색 스카프/타이를 하는 추세는 수십년간 지속되었고, 1880년대에 와서 성직자 예복으로서의 클러지 칼라(clerical collar)로서 애용되었고 19세기가 끝나갈 때 쯤 성직자들의 주 의복으로 보편화되었다. 흰색 목 라운드는 이후 검은색 깃에 목젖부분을 트고 흰색으로 간이 라운드를 두는 오늘날의 형태로 개량되었다.

소위 개혁주의 전통에서도 이 의복을 패용했는데, 장로교회에서 개량된 이 클러지 칼라는 성공회, 감리교, 정교회, 침례교, 루터교는 물론 로마 가톨릭 등 다른 교파에서도 채택되었다.

1967년 당시에 로마 가톨릭 성직자들은 평상복으로서 발목까지 내려오는 캐삭(cassock)을 입었었는데(일반적으로 캐삭이 예전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옷은 예전복이 아니라 로망칼라를 입기 전, 가톨릭 성직자들의 평상복이었다. 예전에서는 알브를 입고 그 위에 캐슈블, 스톨을 패용하는 것이 전형이다), 이러한 간소화된 복장을 수용했다. 사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는 가톨릭 성직자들에게서 이것이 크게 유행하지 못했었다.

이 의복은 성공회, 장로교, 루터교 전통과 같은 교파 성직자들의 전형이 되었고 후에 감리교, 오순절파 그리고 비교파교회들에서도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에서는 부제로 서품되기 전의 고학년 신학생들이 학교나 교구에서 이 복장을 입는 것이 허용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클러지 칼라가 영국과 여타의 영연방국가(카나다 등)에서 19세기 중반까지 ‘개 목걸이’(dog collars)로 불려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연합교단 소속의 케네스 콜린스(Kenneth W. Collins) 목사는 ‘예전복과 목회자 의복’(‘Vestments and Clericals’, Hemera Technologies, Inc에 올려진 글)이란 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도날드 맥리드 박사가 목을 두르는 셔츠 스타일을 고안했고, 장로교 성직자들이 얼마 후부터 흰색 밴드를 패용했다. 맥리드는 자신이 고안한 셔츠 스타일에 목둘레에 탭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현재 형태로 조화시켰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한참 후까지 이것을 성직자들의 일상복으로서 채택하지 않았다.”(이 글은 다음을 기초로 번역요약 및 작성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Clerical_collar)

참고로 클러지 셔츠는 예전복이 아니라 평상시의 의복이고, 목 전체를 흰색밴드로 감싸는 형태(neckband shirts)와 목젖부분이 트인 셔츠에 흰색의 탭을 추가하는 형태(tab-collar)가 있는데, 현재는 후자가 주로 애용되고 있다.

나는 평상시 클러지 칼라를 입지 않지만, 목사안수를 받으며 나를 위한 선물로서, 미국의 한 기독교용품 판매처를 통해 알브(Alb)를 구입했다. 당시에 마침 할인하여 판매하는 알브가 있어서 10여만원을 주고 구입했다(우송료도 그만큼 들었으니 줄 돈 다 주고 마련한 셈이다. 요즘은 알브를 입고 허리에 묶는 Cincture를 구입하려 호시탐탐하고 있다. 그런데 예전색을 따라 다 구입하려니 너무 비싸서 선뜻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흰색이나 먼저 구입해야겠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성만찬예전에서 언제나 흰색 알브를 입는다.

알브는 ‘tunica alba’에서 온 말이다. tunica는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의 소매가 좁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속옷이고, alba는 흰색을 의미한다. 알브는 발목까지 덮는 흰색의 긴 의복으로서 전통적으로 예배에서 집례자는 물론 예배의 다양한 봉사자들이 입었다.

카타코움 프레스코에도 알브를 입은 것이 나타나고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의 기록(cf. Hieron., "Ad Fabiolam" Ep. 64, P.L., XXII, 607)에도 알브 착용이 언급되었다. 제4차 카르타고 공의회(c. 398)에서도 성직자의 알브 착용을 말하고 있다(ut diaconus tempore oblationis tantum vel lectionis albâ utatur; 집사는 성서봉독시에 알브를 입는다: 여기서 집사는 성직자를 의미). 818년에 쓰여진 라바누스(Rabanus Maurus)의 책인 ‘성직자 임직에 대하여’(De Clericorum Institutione)에서도 알브는 성직자 예전복으로 언급되었다. 즉 성직 임직대상자는 성직자로서의 자기 부인과 순전함을 상징하며 흰색의 예복을 입는다고 말했다.

그러면 왜 나는 알브를 입는가? 알브의 흰색은 예수님의 수의 색이었다. 그가 부활하셨을 때 흰 옷이 개켜져 있었다. 고대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나면 흰색 옷을 입혔다. 흰색은 부활의 색이며 알브는 주님의 부활의 옷이다. 주일은 작은 부활절이다. 나는 이 날에 주님의 부활을 상기하며 주님의 부활을 대망한다. 성만찬예전이 없이 말씀의 예전만 집행될 때는 흰색의 설교자 가운을 입는다. 다만, 사순절과 대림절 기간 중 성만찬예전이 없는 주일에는 검은색 설교자 가운에 스톨을 착용하기도 한다.

나는 예배 전 알브 혹은 설교가운을 입으며 이렇게 기도한다. “주여 나를 정결케 하소서, 어린양의 피로서 나의 죄를 씻어주시고, 이 예복으로 나를 감추시고 주님의 모습만 드러내소서. 그리하여 오늘 예배하는 모두가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오늘의 예배가 거룩하고 산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박찬희 목사 / 기둥교회
박찬희 목사의 페이스 북에 실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옮겨 싣습니다.



로망칼라를 둘러 싼 논쟁

1998년 12월 12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로망칼라를 개신교목사의 공식복장으로 특허청에 등록을 신청했다.  1999년 5월 31일, 특허청에서는 개신교의 특허등록을 허락하는데, 1999년 7월 23일, 한국가톨릭본부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특허청에 이의를 신청한다. 로망칼라는  전세계  가톨릭 성직자의  복장이라는 것이 이의제기 이유였다.  결국 2000년 4월 14일,  특허청은 특허등록을 취소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이에 불복하여 법원에 상소를 했지만 2001년 12월 14일, 법원의 최종판결로 상소는 기각되었다. (편집자 주)

성직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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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칼라(clerical collar)기독교 성직자의 복장에서 목을 두르는 옷깃(칼라)의 한 종류이다. 로만 칼라 또는 클러지 칼라, 목회자 칼라라고도 부르는 옷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원형은 흰 목띠 형태로 깃이 없는 셔츠에 부착하는 개신교회 성직자 복장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수단 등의 전통적인 복장의 칼라를 로만칼라라 불렀으나 근래에 와서 성직칼라를 했을 때를 로만칼라라고도 한다.


유래와 의미[편집]

성직칼라는 개신교 성직자가 기존 복장을 흰색 목띠 형식로 만든 것에서 유래한다. 이는 18세기 경부터 명예와 지위를 상징하는 넥타이와 같은 장식을 거부하고 셔츠에 흰 깃(칼라)만을 부착해 입기 시작했던 개신교회 성직자, 목사들의 예배 및 평상 복장을 바탕으로 개신교인 스코틀랜드 국교회(장로교) 글래스고우 지역 교회의 성직자, 도널드 맥러드 목사가 셔츠에 착용이 쉽게 흰 목띠 형태의 옷깃(칼라)로 발전시켜 처음으로 고안해낸 것이다[1] [2] [3] 19세기 후반 이후 발전된 성직칼라를 개신교 전반에서 착용하여 다른 기독교 교파인 로마 가톨릭교회 등에서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직칼라를 전통복장에 착용하기 위해서 개선을 해서, 수단의 안감 앞뒤에 단추 등을 추가하였다. 착용 초기에는 무명이나 아마포로 만들었으나 요즘은 개선된 셔츠에 작은 흰색 플라스틱 띠를 부착 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성직칼라 복장의 의미가 개신교회에서는 세상의 명예와 지위를 거부한 성직자의 청빈과 평등의 의미를 지닌 성직자 복장이고,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전통 성직자 복장을 바탕으로 수용하고, 착용하여서 성직의 구별과 독신 성직 의미를 강조하는 복장이 되었다.


 

 

성직칼라를 고안한 개신교 스코틀랜드국교회 성직자, 맥러드 목사 (1900년대 남성정장 착용)


교파별 착용[편집]

성직칼라 착용을 시작한 개신교회에서는 성별 구분 없이 성직자들이 착용할 수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신구교 구분을 위해 옷의 색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미주, 오세아니아의 기독교 지역에서는 구분없이 검정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셔츠나 복장에 착용한다. 성직칼라를 착용하는 복장은 대체로 성직, 즉 목사직을 안수받은 후에 착용하며, 개신교 교단의 직제에 따라 감독, 목사, 수련목사/준목사들이 다른 색깔의 셔츠에 착용하기도 한다.[4] 교단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성직칼라 복장을 착용하지 않은 교단도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감리교에서는 착용하는 편이며, 장로교에서는 기피하는 편이고, 침례교에서는 거부하는 입장을 보인다. 루터교성공회는 항시 착용한다.





성직칼라 전형인 흰 칼라 복장을 한 감리교회 선교사 스크랜턴(1880년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모든 품급의 성직자, 요컨대 주교, 사제, 부제(일반적으로 잠정적 부제가 착용하지만, 이따금 종신부제도 착용함)가 성직칼라를 착용한다. 로마 교구 같은 경우, 종종 사제직에 입후보한 신학교 학생들도 착용하는 것을 허락해 왔다. 그리고 전례를 집전하는 동안에는 대학생과 대학원생 수준의 신학생들도 수단과 함께 성직칼라를 착용하는 것이 허용된다. 대한민국의 경우 로마 가톨릭에서 성직칼라의 명칭이 사제 복장, 수단의 칼라인 로만칼라와 혼용이 되어서 성직칼라와 로만칼라를 동일한 것으로 여기나, 수단을 착용할 때 바깥 부분인 수단의 옷깃과 안쪽 부분인 목에 두르는 성직칼라를 구분하여 부르고 착용한다. 수단과 같은 전통 복장이 아닌 현재의 셔츠형태 성직칼라 착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폐회한 1965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전통적인 성직자 복장이 있으며, 평상복을 따로 입기도 한다. 처음에는 성직칼라를 서방 교회의 복장으로 인식하여 기피하다가 근래에 들어서면서부터 편의성과 복식 개선 등의 이유로 착용하기도 한다.


자료/ⓒ창골산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