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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으로 쓰러진 어느 노인의 이야기

天上 2014. 8. 8. 16:45
중풍으로 쓰러진 어느 노인의 이야기

 

한국침의학

2014/07/0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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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중순쯤에 강릉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침술을 배우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침술을 배우려는 목적을 묻자 자기의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인데 부친을 침으로 고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런 목적이라면 침술 배우는 것을 포기하라고 말해주었다. 중풍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침술이 적절한 치료 방법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부친의 중풍을 치료하기 위해 침술을 배운다는 것은 권장할 만한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침술로 중풍이 치료되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김길석(가명)이라고 소개한 이 사람은 며칠 후 또 다시 전화를 해 부친의 중풍이 치료되든 안 되든 침술을 꼭 배우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조만간 그의 부친이 퇴원하게 되면 자신이 부친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침술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그 나름대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나는 김길석씨에게 침술을 전수하기 위해 강릉으로 갔다. 4월의 중순인데도 강릉의 날씨는 쌀쌀했었다. 김길석씨는 나를 모텔에서 묵을 수 있게 배려해주었고 그의 침술교습은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이루어졌다. 낮 동안은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부친의 병 수발 때문에 시간을 전혀 낼 수가 없었다. 그의 부친은 78세로 3월 하순경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치료를 받고 있으나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반신불수가 된 것은 차후 문제이고 당장은 급성으로 발병한 폐렴을 치료하는 데 의료진들이 매달려 있다고 했다. 자주 발생하는 가래를 제거하는 장치 때문에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없고 물같은 음료수마저 호스를 통해서 몸 안으로 주입한다고 했다. 그의 모친은 당뇨병 환자였고 가끔씩 나타나는 치매증상으로 인해서 남편의 병 수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김길석씨 혼자 낮 동안 부친 곁에 붙어 있어야만 했다. 그가 오후 7시가 되어 내가 묵고 있는 모텔로 침술교습을 받으러 올 때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 두 여동생들이 번갈아가며 그의 부친 곁을 지켜준다고 했다.

김길석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후 강릉에서만 살았다고 한다. 40대 초반인데도 미혼이므로 그가 혼자 부친의 병 수발을 책임져야만 했다. 김길석씨는 8일 동안 스트레이트로 침술교습을 받았다. 하루 종일 부친을 간호하다 지친 모습으로 밤마다 침술을 익히는 데 전력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8일 동안 낮에는 할 일이 없었으므로 책을 읽거나 TV를 보면서 모텔에서의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었다. 그렇게 하여 김길석씨의 침술교습은 끝이 났다. 교습이 끝났을 때 김길석씨는 나에게 간곡한 부탁을 했다. 그의 부친이 퇴원하면 부친에게 침 치료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이 스스로 부친을 치료하기 위해 침을 배운 것이 아니냐고 하자 그렇더라도 내가 직접 한두 번은 침을 놓아주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침 치료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그가 부친에게 침 시술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 같다고도 했다. 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했고 일단은 그의 침술교습이 끝난 관계로 무료했던 8일 간의 강릉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김길석씨는 그의 부친이 퇴원하면 나에게 다시 연락을 하기로 했다.

내가 김길석씨의 침술교습을 위해 강릉을 다녀 온 후 달포가 지났을 때인 지난 5월 말에 김길석씨의 부친이 퇴원했음을 그가 알려왔다. 그는 그의 부친에게 침 좀 놓아달라며 정중히 부탁해 왔다. 나는 이미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강릉을 다시 찾았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강릉 시내에서 남쪽으로 굽이진 산길을 따라 15분 정도 산을 하나 넘어가야 하는 산골 마을에 있었다. 기역자 모양의 잘 지어진 기와집에 도착하여 김길석씨의 부친이 침상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다. 김길석씨의 모친도 그 곳에서 보게되었는데 남편에게 달려드는 파리를 연신 쫒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김길석씨가 그의 부친을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기저귀를 갈아채우고 축축한 탈지면으로 얼굴과 입술을 닦아내고 침상의 한 쪽 부분이 올라가도록 돌려서 그의 부친의 상체를 바로서게 한 다음 음료를 마시게도 하고 하여튼 잠시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부친은 수시로 "길석아 길석아"하면서 이것저것을 요구했다. 그럴 때마다 김길석씨는 불평 한 마디 없이 부친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미리부터 예상은 했지만 김길석씨 부친의 반신불수 상태는 심각한 상태였다. 스스로는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다만 마비되지 않은 오른 팔과 다리만을 움직일 수 있을 뿐이었다. 마비된 왼쪽의 팔과 다리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조차 없었다. 침술의 효과에 대해서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도 침을 놓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날은 김길석씨 부친의 마비된 팔과 다리를 붙들고 이쪽저쪽으로 움직여보고 들어올렸다 내려놓았다를 반복하기도 했고 굽히고 펴는 것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환자는 고통스러워 했으나 침 놓는 일 못지 않게 마비된 팔과 다리를 꾸준히 움직여줘야만 하므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러고는 환자의 여기저기에 침을 놓아 자극했다. 김길석씨는 내가 침 놓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고 때로는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 다음 날과 세 번째 날도 마찬가지로 마비된 팔과 다리를 한참 동안 움직이는 운동을 한 후, 침 놓는 일은 김길석씨가 직접 부친에게 침 시술을 하도록 하게 했다. 생각보다 솜씨있게 침을 잘 놓았다. 3일 동안을 환자의 팔과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운동요법과 침 치료를 한 후, 김길석씨에게 나의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으며 앞으로는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 부친의 팔과 다리를 움직여주고 침을 놓아주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원래는 내가 김길석씨의 부친에게 한 달 동안 침 시술을 해주기로 했었으나 워낙 환자의 상태가 좋지않아 침 치료로 나아질 가망이 없어 보였으므로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김길석씨는 한 달 동안만이라도 침 치료해주기를 희망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당신의 침 놓는 솜씨이면 나의 손길이 굳이 필요없다고 하자 아무려면 선생님처럼이야 하겠느냐고 약속한 대로 한 달간만이라도 침 치료해주기를 원하는 그의 눈빛을 마냥 거절만 할 수 없어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중풍을 침술로 치료할 수 있는 이론적인 방법을 실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시술법을 찾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김길석씨의 부친에게 침을 놓기 위해 지난 5월말과 6월 한 달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6회를 강릉으로 갔었다. 5월 말에 갔을 때는 내가 이틀을 머물면서 3회의 침 시술을 했으나 6월 첫재 주부터는 강릉에 가는 날인 월요일과 그 이튿날 화요일에 두 차례의 침 시술을 해주고 돌아오고는 했었다. 세 번째 침 치료를 위해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환자에게서 좋아지는 어떤 징후도 전혀 없었다. 내가 갈 때마다 환자는 늘 통나무처럼 드러누워 있었다. 문제는, 내가 없을 때는 김길석씨에게 침을 놓아줄 것을 당부했으나 환자가 김길석씨에게는 침을 맞으려고 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언짢은 기분이 들어 김길석씨를 나무라기까지 했다. 당신이 나에게 침술을 배울 적에는 당신의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의지 때문이었을텐데 부친이 침 맞기를 거부한다고 손 놓고 있으면 어떻하냐고 나무랬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비된 팔과 다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움직여 줘야 함에도 팔과 다리를 움직여려하면 그의 부친이 소리를 지르며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한심한 상황이었다. 환자의 아들인 김길석씨는 마음이 여려서 그의 부친이 조금이라도 불편해 하거나 고통스러워 하면 차마 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월요일마다 김길석씨의 집으로 가서 환자의 마비된 팔과 다리를 번갈아 가며 붙잡고 움직이는 운동을 하는데 환자는 그게 무척이나 성가신 모양이엇다. 그럼에도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운동은 꾸준하게 해줘야 한다.

미국 알바마 의대의 교수였던 에드워드는 그가 개발한 CI 요법으로 뇌졸중 환자들을 치료했다. CI 요법이란 'Constraind Induced Movement Therapy' 라는 말로서 중풍 환자의 마비된 팔과 다리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일종의 물리치료법을 말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교수는 중풍 환자의 마비된 손으로 공을 쥐게 한다든지 콩알을 주어 그릇에 담게 하는 동작을 하루 6시간씩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 마비된 쪽의 운동신경회로가 새롭게 구성되어 마비된 팔과 다리를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뇌의 가소성'이라고 한다.

뇌졸중으로 인하여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조정하는 뇌세포들이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에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마비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뇌 안에는 아직 회로를 형성하지 않은 여분의 뇌세포들(spare cells) 상당 수가 존재하며 이들 세포들은 다른 신경세포들과의 새로운 회로를 연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도를 한다. 이들 신경세포들이 새롭게 회로를 구성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면 스스로 죽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 세포들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신경세포들과 회로를 구성하기 위해 끊임없는 시도를 하면서 다른 세포들로부터 오는 감각적인 자극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뇌졸중으로 팔과 다리가 마비가 된 것은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운동세포들이 죽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팔과 다리를 연결하는 신경세포들 간의 회로가 단절된 것이다. 그런데 팔과 다리를 끊임없이 움직여주면 팔과 다리로부터의 감각적인 자극의 신호가 뇌 안으로 전해지고, 뇌 안에서는 새로운 회로를 연결하려고 필사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뇌세포들에 의해 감지가 된다. 팔과 다리로부터의 감각신경과 뇌 안에서의 새로운 세포들 간의 회로가 연결되면 새로운 세포들이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조정하는 운동신경세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뇌과학에서 말하는 '뇌의 가소성'이라고 하며 정확하게 말하면 '시냅스의 가소성'이라고 한다.

환자인 김길석씨의 부친은 이런 중요한 요법을 알리가 없을 터이고 김길석씨만이라도 이 요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주, 그것도 아주 자주 환자의 팔과 다리를 움직여줘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못해 너무나도 답답했다. 월요일에 김길석씨의 집으로 가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역시 환자의 팔과 다리를 한참 동안 움직여주는 운동을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나의 속옷은 땀으로 젖게된다. 그리고 침 치료를 한다. 침으로 마비된 팔과 다리에 자극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치료법이다. 침으로 팔이나 다리의 적정한 곳에 자입하여 촉전감(전기에 감전된 듯한 느낌)을 유발시켜 이 촉전감이 뇌로 강한 감각자극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런 감각적인 자극이 아니면 침을 백날 찔러야 소용이 없다. 촉전감을 유발시키는 부위를 찾는 것도 어렵지만 정확한 부위에 침으로 찔러서 촉전감이 사지의 말단까지 이르도록 자극해야 한다. 그래야만 뇌에서 새로운 회로를 연결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세포들에게 감각자극신호가 전해져 비로소 회로가 연결되고 그렇게 되면 팔과 다리의 근육을 움직일 수 있도록 조정을 하는 것이다.

내가 네 번째로 김길석씨의 집으로 갔을 때는 놀랍게도 그의 부친이 침상에 걸터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드디어 나는 환자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 어디 그 뿐인가! 환자의 다리를 스스로 움직이게 하자 가까스로 다리를 안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환자에게 침을 자극하고 김길석씨와 내가 옆에서 부축을 하여 걷는 운동을 시도하게 했다. 그러나 뜻대로는 되질 않았다. 그나마 환자가 침상에서 일어나 앉아있게 되었다는 것은 재활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지난 주, 그러니까 6월 23일에 김길석씨의 집을 찾았을 때는 환자가 팔까지 움직이는 현상을 보였다. 전혀 미동도 않던 팔과 다리를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환자를 침상에 걸터 앉게 한 후 팔을 움직여보라고 하면 축 늘어뜨린 팔을 허벅지 위로 끌어 당기고는 했다. 그리고 다리를 움직여보라고 하면 굽혀졌던 다리를 주욱 뻗는 동작을 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환자의 팔과 다리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굵은 근육들의 꿈틀거림이 확연히 드러나 보였다. 그 모양을 김길석씨에게 확인케 한 후 앞으로는 보호자가 환자의 팔과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대신 환자 스스로가 수시로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운동을 혹독하다싶을 정도로 자주 움직이게 해야 함을 당부시켰고, 환자 본인에게도 가만히 누워만 있지말고 침상에 걸터 앉아 의식적으로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운동을 자주 해야 일어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환자가 마비되었던 팔과 다리를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뇌세포가 팔과 다리를 움직이도록 조정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더구나 팔과 다리의 근육들이 꿈틀거리는 현상은 뇌세포의 운동신호가 전해지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환자의 뇌 안에서 죽은 새포들을 대신하는 다른 세포들이 팔과 다리로 연결되는 새로운 회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환자가 마음과 뜻대로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것은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회로가 구성되지 못했던지, 아니면 회로는 충분히 구성이 되었는데 한동안 쓰지 않던 근육들의 굳음 현상이 덜 풀려서인지는 알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근육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먹는 음식으로부터 만들어지는데 환자가 오랜 시간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던 관계로 먹는 게 여간 부실한 게 아니었다. 나는 김길석씨에게 부친의 음식섭취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줄 것을 당부했다. 당신의 아버지가 일어서고 못 일어서고는 당신의 역할도 중요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자의 일어서려는 의지가 절대적으로 앞서야 함을 강조했다.

며칠 전 6월의 마지막 날, 김길석씨와 약속했던 마지막의 침 치료를 위해 그의 집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 속에서는 그의 부친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를 상상하며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의 부친은 다시 침상에 드러누워 있었다. 김길석씨는 내가 지난 주에 다녀가자마자 어떤 음료수를 마신 후 사레가 들리더니 그때부터 음식을 통 못먹어 기력이 완전히 쇠약해져 움직이는 운동도 침 치료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참으로 기운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침상에 드러누워 있는 환자를 넋을 놓고 바라다보고 있다가 환자의 곁으로 다가가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환자는 아프다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팔도 움직이고 다리도 움직이고 하는 운동을 몇 차례 한 후 침으로 몇 군데를 자극했다. 침으로 자극할 때 환자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왜 또 침을 놓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환자에게 침으로 자극할 때 못견뎌하고는 했는데 침으로 자극할 때 나타나는 촉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환자에게 어린애에게 하듯이 나무랬다. "이런 걸 못 참으면 아버님은 영원히 누워 있어야만 합니다. 침 맞는 게 성가시고 운동하는 게 귀찮다면 그냥 편안하게 누워 계시다가 이 세상을 떠나시면 됩니다. 그냥 이대로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시겠습니까?"

김길석씨의 부친은 "아뇨"라고 대답은 했지만 이미 그의 마음 속에는 일어서려는 의지가 꺾여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충분히 일어설 수 있는데 그 의지를 저버리고 있었다.

김길석씨에게 지난 일주일 동안 부친을 한 번도 침상에 걸터 앉아있게 하지 않았냐고 하자 한 번도 그러질 못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부친을 침상에 걸터 앉게 하라고 했다. 김길석씨는 부친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운 후 침상의 가장자리에 걸터 앉게 했다. 그의 부친에게 팔을 움직여보라고 했다. 만사가 귀찮은 듯이 나의 말을 무시했다. 다시 한 번 주문했다. 마지못해 축 늘어진 팔을 끌어올려 허벅지에 올려 놓았다. 나는 허벅지에 올려진 팔을 다시 늘어뜨리게 한 후 또 끌어올리라고 했다. 환자가 고분고분 팔을 움직여 끌어올렸다. 그렇게 반복한 후 다리를 움직이도록 했다. 그러나 다리는 움지여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나의 말을 무시하는 줄 알았는데 그의 다리를 살펴보니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난 주에는 허벅지의 근육들만이 꿈틀 거리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장단지의 근육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분명히 지난 주에는 장단지의 근육들은 꿈틀거리지 않았었다. 허벅지와 장단지의 근육들이 몇 번인가를 꿈틀대더니 환자가 숨을 몰아쉬며 숨이 가쁘다고 했다. 환자는 다리를 움직이기 위해 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근육들의 꿈틀거림은 확연히 관찰되었다. 이것은 뇌세포가 근육들에게 운동신호를 보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환자가 하루에 적어도 이 운동을 수십 번을 해야 함에도 의지박약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곁에서 움직여보라고 해야만 마지 못해 움직여서는 일어설 수 없다. 정말이지 안타깝기가 그지 없다.

환자는 그냥 편하게만 누워 지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더구나 사레가 들린 후로는 거의 음식물을 제대로 섭취한 게 없어 근육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도 몇 끼를 굶으면 움직이기가 힘이 드는데 중풍으로 쓰러진 환자인들 오죽하겠는가. 김길석씨도 3개월 이상 부친의 병 수발로 많이 지쳐 있음이 역력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더 이상 나무랄 수도 없었다. 김길석씨가 효자 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날도 그의 부친은 몇 초 단위로 아들을 찾았다. 환자는 그의 아들을 TV 리모컨으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김길석씨는 이제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그가 천사가 아닌 한 그도 언젠가는 부친을 돌보는 데 한계를 느낄 것이다. 환자가 일어서려는 의지가 없는 한 그렇다는 것이다.

지난 한달 동안 중풍으로 쓰러진 김길석씨의 부친을 치료하기 위해 모두 6회를 그의 집을 찾았으나 결국 나는 그의 부친을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중요한 것을 배웠다. 침술로 중풍으로 쓰러진 환자를 일으켜 세우는 데 확신을 갖지 못했으나 침술로 중풍환자를 일으킬 수 있는 매뉴얼을 터득했으며 따라서 증풍환자를 침술로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다만 성공적인 치료가 되기 위해서는 침 시술자가 침을 제대로 자극해야 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환자의 일어서려는 의지도 강해야 한다. 이것이 서로 매치가 안 되면 성공할 수 없다.

나의 블로그에서 이미 소개한 바가 있는 사례를 하나들어보자. 50대의 한 남자가 중풍으로 쓰러져 꼼짝없이 자리에 드러눕게 되자 그의 부인이 병 수발을 들다 집을 나가 버렸다. 뒤이어 아들이 병 수발을 했는데 그의 아들마저도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자기의 병을 돌보지 않고 집을 나가버린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니 배신감과 괘씸함에서 생겨나는 분노로 어떻게든 자신의 의지로 일어서리라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매일 일어서려고 발버둥치던 끝에 드디어 스스로 혼자서 방안을 왔다갔다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바깥출입을 시도를 했고 나중에는 산을 오르내리는 일까지 해내고야 말았다. 그는 반드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로 피눈물 나는 노력을 통해 거의 정상에 가까운 움직임을 되찾았던 것이다.

뇌졸중울 앓고 있는 환자들은 마비된 팔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마비되지 않은 쪽의 팔과 다리만을 움직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던 알바마 의대의 교수인 에드워드가 그의 중풍 환자들을 치료할 때 마비되지 않은 쪽의 팔과 다리는 못 움직이도록 끈으로 묶어놓고 마비된 팔과 다리만을 움직이도록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 재활에 성공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중풍은 환자의 의지로 얼마든지 일어설 수 있는 질병임을 알았으면 한다.

강릉의 김길석씨 부친의 중풍을 침으로 치료하는 과정에서 어깨의 통증과 허리의 통증에 이어 중풍을 침술로 치료할 수 있는 확실한 메커니즘을 하나 더 터득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중풍 환자라도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그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치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고치려는 의지가 강해야만 된다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치료행위는 함부로 할 수 없다. 나의 바람은 합법적으로 침 시술을 할 수 있는 많은 의료인들을 통해서 나의 침술이 널리 보급되어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재활의 혜택이 미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침술연구는 또 다른 난치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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