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소리 들으면 성공한 거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아침 일찍 박사 곁에서 자고 일어난 애제자가 잠자리를 정돈하고 먼저 세배를 올렸다. 장기려 박사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덕담을 해 주었다. "금년엔 날 좀 따라서 살아보아." "선생님 처럼 살다가 바보 되게요." 그러자 장기려 박사는 껄껄껄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지, 바보라는 소리를 들으면 성공한 거야, 바보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나?" 세상 사람들은 불쌍한 환자들에게 늘 무료로 진료를 해주던 장기려 박사를 보며 '저 사람 바보 아냐?' 라고 생각했으리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퍼주던 그에게 '이상한 사람' 이라고 빈정거렸으리라. 하지만 장기려 박사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바보로 살기' 로 작정했던 사람이었다.
춘원 이광수 선생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을 때 담당 의사였던 장기려 박사를 가리켜 '당신은 바보 아니면 성자' 라고 한 말이 실감이 난다.
“이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주시오”…어느 ‘바보 의사’ 이야기
'바보 의사'로 불렸던 고(故) 장기려 박사의 삶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CTS기독교TV(회장 감경철 이하 CTS)가 창사 20주년을 맞아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고(故) 장기려 박사의 사랑과 봉사정신을 담은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끝나지 않은 사랑의 기적, 장기려'를 오는 11월 21일과 23일 이틀에 걸쳐 방송한다. CTS는 '끝나지 않은 사랑의…'를 통해 섬김과 나눔의 표상인 고 장기려 박사의 헌신적인 삶을 되새기고 그 가치를 재조명할 예정이다. 장기려 박사는 한국전쟁 당시 현 고신대학교복음병원의 전신인 천막병원을 세워 피난민을 무료로 진료하고, 의료시설이 없는 무의촌 진료 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돌보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다. 가난한 탓에 제대로 먹지 못해 병이 난 환자를 진료한 후 '이 환자에게 닭 두마리 값을 내주시오'라고 적힌 처방전을 쓴 일화는 그가 환자를 대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의료봉사에만 헌신했던 게 아니다. 194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간암환자를 대상으로 간부분 절제술을 시행했고, 1959년에는 간암 환자의 간 대량절제술에 성공하는 등 한국 간외과학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평가받을 정도로 의학적인 부문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대한간학회가 10월 20일을 '간의 날'로 제정한 것도 장기려 박사가 1959년 10월 20일 간암환자 대량절제술을 성공한 것을 기리기 위해서다.
라포르시안 뇌경색으로 반신마비가 올 때까지도 가난한 환자를 위해 살았고, 그런 그의 삶을 본받아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장 박사의 제자들이 소외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의술을 펼치고 있다. CTS는 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장기려 박사의 자손, 제자, 환자 등 직간접적으로 그를 만난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한다. CTS는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크리스천 연기파 배우 정선일과 최선자 등이 출연한 다큐드라마를 제작해 그의 인생을 재구성하는 등 보다 실제적이고 살아있는 내용을 담기위해 힘썼다"며 "제작진은 무엇보다 그가 떠난 1995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사랑의 기적들을 몸소 경험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화면에 담기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장 박사의 정신을 이어 국내와 해외 오지의 의료선교를 하고 있는 ‘블루크로스 의료봉사단’ 과 9년째 페루 아마존 밀림에 찾아가 의술을 넘어 인술을 베풀고 있는 고신대학교복음병원 의료진의 활동을 카메라에 담았다. CTS는 "박애정신을 실천하는 (장기려 박사의)제자들 덕분에 지금까지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의술을 펼치는 사랑의 기적이 열매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가난한 환자들 점점 외면받아…고인의 베푸는 의료정신 더욱 간절" '이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주시오.' 가난해서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 의사는 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환자의 말을 듣고 처방전에 이렇게 썼다. "이 약을 먹으면 차도가 있을 것이니 며칠 뒤에 다시 찾아주시오. 돈이 없어도 되니 꼭 오셔야 하오." 한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며 가난한 이를 위해 의술을 펼친 성산(聖山) 장기려(張起呂·1911∼1995) 박사. 그가 1951년부터 부산복음병원 원장으로 있던 1976년까지 가난하고 돈 없는 환자를 위해 헌신한 일화는 수없이 많다. 국내 의료보험의 모태가 된 의료보험조합을 처음으로 만든 이도 그였다. 장기려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장 박사에 대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평생 보듬고 돌본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손 이사장은 "그가 후대에 남긴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를 꼽는다면 의료조합 설립"이라며 "단지 가난한 사람을 감정적으로만 도운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끝에 탄생한 것이 청십자의료조합"이라고 평가했다.
평양에서 의사생활을 하던 장 박사는 1951년 부산으로 피난 내려가 영도에서 복음병원을 설립한다. 당시 환자들은 대부분 피난민이거나 행려병자들이었다.
가난한 형편 탓에 입원비나 치료비를 내지 못하자 대부분 무료로 환자를 진료했다. 그러나 병원 규모가 커지면서 무료 진료가 불가능하게 되자 그는 1968년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설립한다. 의료조합 설립은 국내 처음이었다.
설립 당시 표어는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났을 때 도움 받자'였다. 북유럽의 의료보험제도를 본뜬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은 한국 의료보험제도의 모태가 됐다.
손 이사장은 "복지 개념의 한국 의료보험이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부러움을 사게 된 것은 장 박사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1932년 서울대 의대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의사를 시작했을 때 그의 신조는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의사 가운을 입은 날부터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이웃들의 벗을 자처하며 이들을 식구처럼 돌보고 사랑으로 의술을 펼쳤다.
수술비가 없는 환자에게 자기 월급으로 병원비를 대신 내주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병원비를 낼 수 없는 딱한 사정을 듣고는 환자를 원무과 직원이 모르게 야밤에 탈출시키기도 했다는 일화도 많다.
장 박사는 우리 의학계에 매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의사였지만 그의 일상적인 삶은 너무나 서민적이고 초라했다. 한평생을 집 한 칸 없이 고신대복음병원 옥탑방에 기거했다.
1995년 12월, 84세로 생을 마감할 때 그에게는 집 한 채도, 죽은 후에 묻힐 땅 한 평도 없었다. 장 박사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면서도 의사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1943년 국내 처음으로 간암 환자의 암 덩어리를 떼어내는 수술에 성공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 의학계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던 수술을 최초로 성공한 것이다.
1959년에는 국내 최초로 간의 70% 가량을 들어내는 간 대량 절제수술에 성공하는 등 학문적으로도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 중 한 사람이었다.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이웃들을 향한 그의 희생정신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면서 1979년에는 라몬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사후인 1996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고, 2006년에는 임상의사로는 허준에 이어 두 번째로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그의 희생·봉사 정신은 후대로 이어지고 있다. 장기려기념사업회는 2013년 부산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 주변에 장 박사를 기념하는 '더 나눔' 기념관을 세웠다.
장 박사의 나눔 활동, 업적, 일화들이 센터 곳곳에 전시돼 있다. 고신대복음병원과 부산 서구청은 2015년 3월 병원 앞 감천로 구간 822m를 '장기려로(路)'로 지정해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임학 고신대복음병원장은 "장 박사는 우리 사회, 후세 의료인들에게 남긴 유산이 너무나도 크신 분"이라며 "생전에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두고 '바보 의사'라고 불렀는데 가난한 환자들에게 조건 없이 나눔 의료를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병원장은 "요즘의 의료는 너무 경쟁화돼 보험 적용이 안되는 비급여 진료를 권장하는 의료진도 많아 가난한 환자들은 병원에서 점점 외면받고 있다"며 "병원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 급급한 요즘, 고인의 베푸는 의료 정신이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