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뜸醫學/뉴스레터

미국 한의사들의 고민

天上 2016. 11. 24. 11:09

미국 한의사들의 고민 신보선의 우공침술

2016.11.20.

복사 http://blog.naver.com/kppass7/220866088852

                                                                  


며칠 전 7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다녀왔다. LA에 거주하는 한 한의사로부터 우공침술 개인교습을 희망해 옴에 따라 이루어진 미국 방문이었다. 미국에 있는 한의사에게 침술을 전수하기 위해 세 번째로 미국을 다녀오게 되었다. 미국의 한의사들에게 우공침술을 전수하기 위해 내가 미국을 방문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나, 미국에서 한의사나 또는 한의과 대학에 재학 중인 예비 한의사가 침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에 있는 나를 찾아오는 경우는 많이 있다.


나에게 침술을 배웠던 미국의 많은 한의사들의 공통점은 열정이 넘쳤고 동시에 많은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한의과 대학에서 배운 침술로는 환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시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미국의 한의사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한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한의과 대학에서도 제대로 된 침술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한의과 대학 졸업 후 개원했을 때 대학에서 배운 침술이 환자들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난감해들 한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한의사들은 개원하기 전이나, 또는 개원 후 숱한 시행착오 끝에 침술을 다시 배우기 위해 선배 한의사나 재야의 침술인들을 찾아나서게 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과거와는 달리 미국의 한의사이든 아니면 한국의 한의사들에게 가장 큰 경쟁력은 침술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침술로 자신의 질병을 치료받기를 희망하는 환자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통증 환자들은 한의사들의 침술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많은 환자들이 침술에 대한 공포감과 두려움으로 침치료 받는 것을 주저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한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침을 놓을 때 조금이라도 고통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는 부담을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한의과 대학에서는 안전 위주의 단순한 침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자하거나 행침법 같은 침술을 배울 수도 없고 그러한 침법은 환자들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라며 적극적인 침술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환자들을 배려하는 좋은 의사가 될 수는 있겠지만 환자들에게 필요한 의사는 될 수 없을 터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침술은 환자의 질병 상태에 따라 침자의 깊이를 달리 해야 하며, 특히 통증 치료에서는 행침요법이 이루어져야만이 효과가 있음에도 이러한 기법들을 무시한 침술로 어떻게 환자들을 만족스럽게 치료할 수 있겠는가? 이같은 문제는 한의사나 환자들 모두가 만들어 낸 것이다.


우선 환자들의 문제점은 침을 맞고싶어 하면서도 자신의 몸에 꽂히는 침이 아무런 느낌이 없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침이 피부를 찌를 때 따끔거리는 것 쯤은 감수해야 함에도 그런 느낌마저 싫다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침치료 받기를 포기해야 한다. 이런 환자들이 침보다 더 고통스러운 주사는 그다지 두려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침이라는 선입감이 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유발시켜 하찮은 자극에도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다.


사실상 침을 몸에 꽂아보면 처음에 피부를 뚫을 때 따끔거리는 불쾌감은 있지만 근육 속으로 깊이 자입되는 동안에는 별다른 고통을 느낄 수 없다. 침을 놓는 한의사들이 환자들과 똑 같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의사로서 절대 갖지말아야 할 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은 한의사들의 심각한 문제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의사들마저 침을 깊게 자입하면 아플 것이라고 생각하며 게다가 행침을 하게되면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한의사들이 환자에게 과감하게 침을 놓아야 함에도 환자들처럼 침에 대한 똑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아주 소극적으로 침을 놓게 되고, 그 결과 침치료의 효과가 없기 때문에 환자에게는 필요없는 의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침은 피부를 뚫고 근육 속의 목적하는 곳까지 적절한 정도의 깊이로 자입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침치료의 메커니즘은 신경계와 면역계에 개입하여 이들 기관으로 하여금 자연치유를 유도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통증을 치료할 경우에는 침이 어느 정도의 깊이로 자입된 상태에서 반드시 행침법에 의해 중추신경계의 통증차단장치가 작동하도록 자극이 되어야 한다.


선조들이 침술로 여러 가지의 질병을 치료하고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오늘날 대부분의 한의사들이 하는 것처럼 소극적이고 단순한 침술은 하지 않았다. 선조들은 목적하는 곳까지 침을 찔러 넣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할 경우에는 행침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선조들은 그들 최고의 침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시술을 했었던 당시 최고의 의사들이었던 것이다. 선조들은 침치료의 메커니즘이 신경계와 면역계를 자극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은 꿈에서도 몰랐겠지만, 많은 경험에 의해 터득되어진 방식들이 최선의 침법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침치료를 받았던 환자들은 침치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통증과 불쾌감을 얼마든지 감내해 냈을 것이다.


오늘날 한의사들은 호침을 사용한다. 호침으로 사람 몸에 찔렀을 때 그다지 통증을 느끼지 못함에도 환자들이 아프다고 하는 것은 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침을 어떤 식으로 찌르든 환자는 통증을 느끼게 되어 있다. 이것은 신경학적인 메커니즘으로서 침의 두려움에 대해서 뇌가 통증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침을 찌를 때 환자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통증을 못 느끼고 침을 무서워 하면 어떻게든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신경학적인 메커니즘을 한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납득이 가게끔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하며, 이렇게 신경과학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는 조건들이 환자들에게 필요한 의사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호침에 의한 자침은 별로 아프지 않음에도 민감한 많은 환자들이 침자극이나 행침에 의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환자들도 침을 편하게 맞을 수 있는 침법, 그것이 우공침술이다. 우공침술이라면 침으로 피부를 뚫을 때조차도 따끔거림을 환자가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침할 수 있다. 내가 한의사들에게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가르쳐주고 있으나, 보다 더 중요한 비법을 익히는 데 정신이 팔려 곧잘 놓치고는 한다.


침으로 피부를 뚫을 때 내가 가르쳐 준 방식을 한사코 잊지 말라고 당부함에도 실습할 때는 까맞게 잊고 평소의 자기 방식대로 한다. 실습을 할 때 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나도 수강생들의 아무렇게나 놓는 침 방식에 따갑고 아파서 너무 싫을 때가 있다. 환자가 따가워 하지 않고 편안하게 침을 맞을 수 있는 방식을 분명히 가르쳐 줬는데도 그런 부분을 잘 못하는 것은 최고의 의사가 되기 위해 더 중요한 비법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행침법의 문제이다.


환자들의 통증을 침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침법이 가해져야 하는데 전통방식대로 하게 되면 고통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 있는 행침법을 개선시켜서 환자가 편안하게 시술받을 수 있게끔 고안해 낸 것이 TLS 침법이다. 즉, TLS 침법은 침으로 자극할 때의 고통스러움을 최소화시켜 환자가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환자를 배려한 침법이며, 아울러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환자에게 필요한 침법인 것이다. TLS 침법은 침을 기계적으로 자극하는 방식인데 환자가 편안하게 시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솜씨를 발휘해야 한다. 이게 서툴면 환자가 고통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TLS 침법은 행침하는 요령을 정확하고 세심하게 익혀서 숙련이 될 때까지 많은 연습을 해야 한다. 앞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TLS 침법의 핵심적인 기법은 침으로 환자의 피부를 찌를 때 따갑지 않게 자침하는 방법과 행침을 할 때 환자가 고통스러움을 느끼지 않게 자극하는 기술이고 그럼으로써 치료효과는 극대화 시킬 수 있다.  


미국 한의사들이 고민하는 것은 그들이 한의과 대학에서 배운 침술로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새로운 침술을 배워야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그들이 어느 곳에서든 배울 수 있는 침법들은 한의과 대학에서 가르치는 침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며, 침을 심자하거나 행침을 하게 되면 효과가 좋다는 것은 막연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섣불리 이런 침법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은 환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침법이라는 점 때문이다. 물론, 침을 심자하거나 행침을 하게 되면 환자들이 고통스러워 할 수 있다.


중국의 침술인들이나 한국의 재야에서 활동하는 일부 침쟁이들은 그들의 환자들에게 침을 심자하여 제삽이나 염전과 같은 행침을 하게 되는데 한마디로 환자들의 고통은 배려하지도 않고 무지막지하게 자극을 가한다. 이런 무지막지한 자극이 효과는 좋을 수 있으나 요즘의 환자들 다수에게 적용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침자극에 의한 고통을 감내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의사들은 학교에서 배운대로 환자에게 침을 놓으면 환자들이 그다지 고통스러워 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효과가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다고 효과가 좋은 침법은 환자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준다는 문제가 있다. 미국의 한의사들은 환자들을 상대로 아프지 않게 침을 놓는 좋은 의사가 되느냐, 아니면 환자에게 고통을 줘서라도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의사가 되느냐를 놓고 깊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딜레머를 해결한 것이 우공침술이다. 심자를 하되 환자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침을 깊이 자입할 수 있는 방법과 행침을 하되 환자가 편안하게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자극법을 개인교습으로 배우는 것이 우공침술이다. 침술의 심자법과 행침법은 단순한 침법에 비해서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미국 한의사들의 또 다른 고민은 침술의 치료기전을 한의학적으로 이해하는 게 매우 애매하고 모호하다는 점이다. 한의학에서는 침치료의 기전을 음과 양, 기, 혈, 정, 신, 오행 등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침을 놓아서 음과 양의 균형을 맞춰 준다든가, 기혈의 순행을 원활하게 한다든지, 정기 신기를 바로 잡는다든지, 또는 오행의 움직임을 조화롭게 조절하는 것 등을 들어서 침치료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한의사들이 이 모든 것을 막연하고 추상적으로만 이해하려니까 애매하고 모호해지는 것이다.


음과 양, 기, 혈, 정, 신, 오행은 모두 우리 인체를 이루는 구체적인 물질임을 한의학에서 정의하고 있음에도 추상적인 개념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혼돈스러운 것이다. 가령, 음과 양은 신경계의 흥분과 억제의 기능, 또는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에 결부시킬 수 있는 말이다. 기(氣)는 인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 단위인 세포 안에서 생명현상을 만들어내는 모든 분자들로 이해할 수 있다. 한의학적인 이론들을 자연과학적, 즉 생명과학적 내지는 인체생리학적으로 풀어서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한의학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과학과 인체생리학적인 지식이 충분히 갖추어졌을 때 가능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한의학은 생명과학과 인체생리학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적절한 부분도 많지만 말이다.


이런 것을 감안하여 나에게 침술을 전수받는 한의사들에게 단순히 침술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적인 사고방식을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과학과 인체생리학을 철저하게 공부해야 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생명과학과 인체생리학은 의사나 한의사들에게 성경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의사나 한의사들에게 생명과학과 인체생리학은 그들을 발전시키는 기본이다. 기본이 허술한 상태에서 좋은 의사, 최고의 의사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환자가 필요로 하는 의사는 절대 될 수 없다. 


TV를 통해 우연하게 한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무심결에 보던 중 두 의사들의 주고 받는 대화 중에서 아주 인상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신출내기 의사가 연륜이 쌓여 보이는 고참 의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좋은 의사입니까? 아니면 최고의 의사입니까?" 

"나? 나는 말이지 음...좋은 의사, 최고의 의사가 되기보다는 환자가 꼭 필요로 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말이지."

의사라면, 그리고 한의사라면 반드시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좋은 의사, 최고의 의사란 어떤 의사이며, 환자가 필요로 하는 의사는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