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의 말이... 횡설수설 세상사는 이야기
어느 대기업의 임원으로 은퇴한 한 인사의 최종 학력은 고졸이다. 그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후 말단직에서 시작하여 그룹의 8개 계열사 사장직을 두루 지내고 명예스러운 정년퇴직을 했다. 고졸출신으로서 대기업의 계열사 사장이라는 중책을 8곳이나 돌며 역임했던 그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고교를 졸업하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당시에는 평범하고 소심한 청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졸출신들의 사원들 틈바구니에서 늘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는 남편이 몇 가지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이 남자는 매일 회사에서 돌아오자마자 툭하면 아내에게 직장생활에 대한 불만, 또는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고는 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은 고졸출신이라 회사에서 쓸모 있는 인재가 될 수 없다고 자책을 하는 것이었다. 이럴 때 이 형편없는 남자의 아내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걸까?
어쨌거나 고졸이라는 열등의식을 갖고 잔뜩 위축된 마음으로 회사를 다녀야 했던 이 형편없는 남자가 8개의 계열사 사장을 역임할 수 있었던 놀라운 원동력은 바로 그의 아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쯤에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형편없는 남자의 아내가 남편의 출세를 위해 대단한 활약이라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무기력하고 아무런 야심도 없는 이 형편없는 남자에게 그의 아내는
" 왜 그래? 당신은 내가 보기에 엄청 대단한 사람이거든! 두고 봐! 언젠가는 당신이 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하게 될 테니까!"
라는 말로 자주 격려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형편없는 남자의 아내로서 할 수 있었던 역할의 전부였고, 그는 결국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 어떤 남자는 회사를 다니다가 40대 중반에 퇴출당했다. 애들은 아직 한창 공부할 나이라 돈 쓸 데도 많은데 수입원이 끊겼으니 이 남자의 심정이 어땠을까? 무엇보다도 그의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놀 수만은 없어 오퍼상을 차려 놓고 보따리 장사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 되는 사업이 없지 않은가. 번번이 사업에 실패하자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고 실의에 빠져 난관을 헤쳐나갈 용기마저 없어 자포자기하려는 순간, 그의 아내가
"살다보면 어려울 때도 있어요. 힘 내세요. 난 당신을 믿어요! 당신은 꼭 성공해 낼 거예요!"
아내의 이 말 한마디로 용기백배해진 그는 다시 일어서서 사업을 시작했고 그는 결국 중소 무역업체의 CEO가 되어 엄청 바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오늘 아침 블로그를 점검하고 있는데 아내가 느닷없이
"하루 종일 집 안에 쳐박혀 지내는 게 좋아?"
아내의 이 말은 나를 엄청 힘들게 하는 말이다. 아니, 나의 숨통을 죄는 말이다. 지난 초겨울의 어느 날, 새벽에 뒷산으로 산책을 갔다 돌아오니 현관문 쪽 거실 바닥에 쪽지가 한 장 놓여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아내가 뭔가를 써 놓은 쪽지였다. 불길한 예감으로 그 쪽지를 집어들고 내용을 보니, "언제까지 그러고 지낼 건데? 애들에게 들어갈 돈은 자꾸 늘어나는데 어디 청소하는 데라도 알아 봐야 되는 거 아냐?" 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렸으나 그 날 하루 종일은 책도 읽을 수 없었고, 밥 한 알도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었으며, 바깥으로 나가기도 싫었다. 아내에 대한 서운함도 있었지만 나의 무능함을 내 스스로 확실히 인지를 했을 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침술에 미치고 공부하는 데 미쳐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집안 형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정도다. 집안 형편이야 어떠한 상태인지는 알기는 하지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 책이나 붙들고 앉았으니 말이다.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면 아내에게 할 말이라도 있으련만, 어떤 구체적인 목적도 없이 책만 수북히 쌓아 놓고 틈만 나면 읽고 앉았다. 이를테면 취업을 하기 위해서, 또는 창업을 하기 위해서 책을 보는 것이라면 아내가 가끔가다 나에게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돈이 생겨?"
20대 중반 때 대학이라는 곳을 들어가기 위해 두메산골의 나의 고향집에서 책과 씨름을 했다.
나는 유복자로 태어났다. 나의 어머니는 혼자 살 수 없어서 나를 데리고 어느 곳의 후처로 들어갔다. 그 곳이 내가 자란 고향집이다. 내 나이 5살 때부터 지게지고 매일 나무를 해야만 했다. 의붓 아버지가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다. 의붓 아버지는 나를 자식이라기보다는 일꾼으로 생각했다. 산골짜기의 꽤나 넓은 밭뙈기의 농삿일을 나와 어머니가 다 해내야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읽는 걸 그렇게 좋아했다. 나의 의붓 아버지는 나를 초등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었는데 어머니의 집요한 요구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책을 펼쳐놓고 읽을 수가 없었다. 나의 의붓 아버지는 내가 책 읽는 꼴을 보기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마치면 얼른 집으로 돌아가 나무를 하든지, 밭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때로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책을 읽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게 되고, 그제서야 집으로 돌아가면 의붓 아버지로부터 쫓겨나 저녁도 얻어먹지 못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내가 대학을 가기 위해 입시공부를 했을 때에도 방안에 처박혀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을 의붓 아버지는 발작적으로 싫어 했다. 지금도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들어간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그 당시에도 지방의 산골짜기에서 혼자 공부하여 대학간다고 하면 마을 사람들이 정신 빠진 놈으로 여겼을 정도였다. 서울에서 명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원을 다닌 놈도 대학가기가 쉽지 않은데, 고등학교도 못 나온 내가 대학을 가겠다고 책을 붙들고 앉았으니 의붓 아버지로서도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청년 시절, 대학을 가기 위해 입시공부를 한답시고 책을 끌어안고 있는 나의 모습을 눈 뜨고 보아 주지 못했던 의붓 아버지의 시선이나, 지금, 내가 책을 붙들고 있는 모습을 매우 마땅치 않게 바라다보는 아내의 시선은 너무나도 똑 같다. 나는 이와 같은 시선을 피해야만 했는데, 의붓 아버지의 시선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을 새며 책을 보는 방법으로 피했고, 아내의 시선은 새벽 3시부터 책을 읽음으로써 피하고 있다.
만약에 나의 의붓 아버지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의 기질을 칭찬하여 "너는 장차 뭔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라는 말 한 마디만 해줬어도 내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는지 모른다. 지금 나의 아내가 "난 당신 믿어. 언젠가는 당신이 반드시 위대한 일을 해낼 거야!" 라는 말 한 마디만 해줘도 엄청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아내의 쪽지를 읽고 하루종일 아내에게 답변해야 할 말을 생각해 냈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잠 자고 있는 머리 맡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쪽지를 놓고 새벽 산책길에 나섰다.
"지금의 상황이 조금 힘들어도 참아 주라. 반드시 좋은 날이 우리 앞에 찾아올 거야. 그런 날을 위해서 열심히 책도 읽고 침술연구도 하고 있는 나의 열정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에게 곧 좋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확신해 보자. 우리 힘내자. 화이팅!"
산책 길에서 돌아오자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갔고 아내도 출근을 했다. 거실 바닥에 쪽지가 놓여 있었다.
"허무맹랑한 소리 그만하고 경비원자리라도 알아 봐!"
나는 잡초같은 인간이다. 누군가가 짓밟으면 짓밟을수록 점점 생명력이 강해지는 그런 잡초.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짓밟히며 잡초처럼 살았다. 나의 의붓 아버지가 아무리 험악한 말로 나를 깔아뭉개도 힘은 들었으나 상심하지는 않았다. 나의 의붓 아버지는 내가 대학 간다며 책을 읽고 있는 나의 앞에서
"네깐놈이 그 따위로 공부해서 대학을 간다구? 네놈이 대학 들어가면 내 다섯 손가락으로 장을 지질테다 이놈아"
누군가에게 무시하는 말을 하고 막말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크게 마음의 상처를 받아 많은 경우에 평생 불운한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의붓 아버지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의기소침해지고 참담해지기는 커녕 "두고 봐라! 나는 꼭 해낸다!" 라는 강한 오기로 피가 솟구쳤고 두 눈은 불같은 기운으로 이글거렸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격려어린 말로 다독거려줬을 때 힘을 얻게 된다면, 나같은 사람은 나를 짓밟아버리는 말을 들었을 때 초인적인 힘을 분출해내는 오기가 발동된다. 그러나 때로는 나도 누군가로부터 격려의 말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말을 나의 아내, 나의 딸들로부터 듣게 된다면 오기보다 더 강력한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의 주변에는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지금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다.
나의 아내가 현명한 여자여서 나를 생명과학이나 인체생리학을 연구할 수 있는 대학원에라도 진학 할 수 있도록 협조를 해줬더라면 앞으로의 나의 인생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대학원만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혼자서도 어떤 공부든 해낼 수 있다. 나는 혼자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도 원했던 신문사의 사진기자도 해보았다. 내가 기필코 대학 진학을 해야만 했던 궁극적인 목표는 어릴 때부터의 꿈인 신문기자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지금 나는 아내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가며 또다시 책을 붙들고 고달프지만 평온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어떤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 책을 들여다 보는 것은 아니다. 책과 씨름하며 지식을 터득하는 그 자체가 나의 존재감을 느끼게 하지만, 침술연구의 과정에 동반되는 어쩔 수 없는 작업과 같은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한다면, 내가 연구하고 있는 침술의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또는 침술의 과학화를 위한 것이 책과 씨름하는 목표다.
분명한 것은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것이다. 꿈이 없다면 책 읽을 에너지는 절대 생기지 않는다. 나의 꿈이란 침술의 유효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이며, 내가 연구하고 발달시킨 한국의 전통침술을 전 세계로 퍼뜨리는 일이다. 즉, 내가 보유한 한국의 전통침술을 세계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침술이라는 단순한 시술적인 차원을 넘어서 의학의 한 분야로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침술이 아닌 침의학이라는 한 장르로 분류되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설사,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스스로 평가해서 한국의 전통침술을 보급하는 데 상당히 기여를 했다고 여겨졌을 때 나 혼자라도 크게 웃으며 만족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나 자신에게 한 마디의 말로 격려를 해준다.
"신보선 두고 봐! 너는 위대한 일을 해내고 말 것이다. 반드시!" (2011, 04, 22)
※이 글은 6년 전에 올렸던 것으로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힘든 상황이었다. 현재는 6년 전과는 다르게 좀 바쁘게 지내고 있다. 2012년부터 침술을 배우려는 수강생 분들이 나를 찾기 시작했으며, 2014년부터는 침술을 배우려는 한의사나 의사들, 그리고 기타 의료진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의 말미에 이 글을 작성했던 날짜를 명시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들이 위의 글을 읽고 현재 내가 처해 있는 딱한 상황으로 착각하여 문자나 전화를 통해서 동정어린 격려의 글과 말씀들을 해주신다. 어쨌든 위의 글 내용은 6년 전의 상황이었음을 거듭해서 밝혀두며 이 글을 보고 전화나 문자를 보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지금은 나의 아내가 그동안 내가 죽으라고 공부만 해왔던 까닭을 알아차렸을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내로부터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말까지 최근에 듣게 되었다. (2018
[출처] 한 마디의 말이...|작성자 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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