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뜸醫學/뉴스레터

병 고쳐 주고 야반 도주...

天上 2021. 11. 3. 21:15

 

가끔 여행을 하다 보면 침과 뜸이 얼마나 좋은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일을 만나게 된다.

 

침과 뜸으로 승부하는 침구사는 침 한 통과 뜸 한 줌만 가지면 세계 어디라도 걱정 없이 갈 수 있다. 그래서 침구사는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강원도 쪽으로 훌쩍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환자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다 때때로 다른 세상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었다.

 

날이 저물 무렵, 횡성군을 지나 어느 마을 입구에 이르게 되었다. 하룻밤 묵을 곳을 알아볼 겸해서 마을 입구에 있는 가게 앞에 앉아 잠깐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사람이 어디가 아프군.

 

배운 도둑질이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했던가. 기어이 나는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말았다.

 

“이빨이 아파 밥도 못 먹을 지경이래요.”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또 술자의 인정인지라 나는 치료를 자처하고 나섰다.

“아주머니, 제가 침으로 치통을 싹 없애드릴 수 있는데요. 침 한 번 맞아 보실래요?”

 

그 아주머니는 침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움츠리며 내게서 멀리 피하려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주인 아저씨는 내게 침 놓는 의원이시냐고 물으며 반겼다.

 

그는 “저 여편네 이빨 아프다는 소리 좀 안 들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나에게 “제발 그 앓는 소리 좀 딱 그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잠시 생각하던 아주머니도 “침이 정말 아픈 게 아니라면 한 번 맞아 보겠다”며 나섰다.

 

“지긋지긋한 치통이 없어진다면야 무슨 짓을 못하랴 싶지만…… 그래도 침이 무서운 걸 어쩐대요?”

 

“아주머니, 침이 아플까봐 무섭다는 거예요? 침이 아프다는 말, 그거 옛날 얘깁니다. 요즘은 아프지 않게 놓는 게 침술의 기본이에요.”

 

치통과 같이 통증을 없애는 일은 침 치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윗니가 아플 때는 윗니 쪽으로 지나는 경맥經脈 족양명위경陽明胃經의 대표 경혈經穴인 무릎 아래 삼리三理혈과 통증을 멎게 하는 작용을 하는 발목 앞쪽의 해계解谿혈을 쓴다. 

 

여기에 통증이 있는 뺨의 권료혈, 코 밑의 화료禾 혈, 귓불 바로 뒤에 있는 예풍風혈을 더한다. 

 

아랫니가 아플 때는 아랫니 쪽으로 지나는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에서 진통 작용이 큰 손등의 합곡(合谷)혈과 팔꿈치의 곡지曲池혈을 쓴다. 그리고 통증이 있는 턱의 협거頰車혈과 귀 앞의 하관下關혈, 귓불 바로 뒤의 예풍風혈을 더한다.

 

침을 놓자 잔뜩 찡그렸던 아주머니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너무나 오랫동안 고생하던 치통이 딱 그치자 아주머니는 좀 이상한지 눈을 멀뚱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유, 정말 신기하네?”

 

아주머니는 옆에서 쭉 지켜보고 있던 아저씨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정말 이빨 아픈 것이 없어졌냐고 거듭 물었다. 아저씨는 몇 번인가 확인하더니 갑자기 환자가 되었는지 허리가 아프다며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쩔쩔매면서 자기한테도 침을 놓아 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리고 자기 집에서 묵고 가라면서 나를 붙잡았다. 

 

나는 마침 묵고 갈 곳을 찾고 있던 중이었으므로 아저씨에게도 침을 놓아 주고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침을 맞고 나서 허리 아픈 것이 신통하게 나았다며 좋아하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를 끌고 나가며 사람을 살려 달라고 사정을 했다.

 

사정인즉, 안동네 최씨댁이 다 죽게 되었는데, 침 한 번에 아픈 걸 싹 없앨 정도로 신통력을 가진 의원이라면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라면 꼭 최씨댁을 살려 달라는 것이었다.

 

최씨의 집은 그 동네에서 가장 번듯한 집이었다. 앞서 집 안으로 들어간 아저씨가 잠시 후 집주인인 최씨와 함께 나왔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가게 주인 아저씨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짜고짜 최씨는 나를 사랑채로 잡아끌었다. 최씨는 자기 부인이 병을 앓아온 내력을 이야기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악성빈혈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 뒤 좋다는 약, 유명하다는 도사와 무당에 이르기까지 병을 고치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했다.

 

“병만 고쳐 주신다면 땅을 몇 천 평이라도 드리겠습니다.”

 

집주인 최씨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심정으로 그렇게 말을 했다.

 

사람들이 나보고 용하다지만 죽을 사람을 살릴 수야 없는 노릇. 그러나 죽을병이 아니라면 침과 뜸으로 금방 효과가 날 것이니 나는 최 씨를 앞세우고 환자가 있는 안방으로 갔다.

 

최씨 부인은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로 심하게 야위어 있었다. 

 

나는 먼저 내가 손을 댈 만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살펴보았다. 위胃의 기운을 살필 수 있는 발등의 충양(衝陽)혈의 맥을 짚어 맥이 잡히지 않으면 불길한 것인데, 최씨 부인은 아주 약하기는 해도 충양(衝陽)에 맥이 잡혔다. 그렇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었다.

 

악성빈혈에는 뜸이 최고다. 뜸은 혈액을 만들어내는 작용을 크게 향상시켜 주므로 뜸을 매일 뜨면 빠르면 한 달 안에 혈액 성분이 많이 되돌아온다.

 

나는 먼저 몸 전체 기혈氣血의 균형을 잡기 위해 팔의 곡지曲池혈과 다리의 족삼리三里혈, 배에서 위胃의 기氣가 모여드는 중완中脘혈을 잡았다.

 

그리고 가슴에 있으면서 심장의 기氣가 모여드는 거궐巨闕혈, 등에 폐의 기가 흘러드는 폐유肺兪혈, 간장의 기가 흘러드는 간유肝兪혈, 등허리에 신장腎臟의 기가 흘러드는 신유腎兪혈로 오장五臟의 기능을 활발하게 했다. 

 

여자의 병은 모두 자궁이 그 뿌리이니 자궁을 튼튼하게 하는 안쪽 복숭아뼈 위의 삼음교三陰交혈과 배꼽 아래 중극中極혈, 그 위에 수도水道혈을 더했다. 그리고 설사를 하고 장에 출혈이 있으므로 허리에 대장의 기가 흘러드는 대장유大腸兪에 침을 놓고 뜸을 떴다.

 

다음 날 환자는 그동안 계속되던 설사가 딱 그치고 몸에 열도 내렸다. 사흘 뒤에는 식욕을 되찾아 미음 대신 밥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고 점차 기력도 되찾아갔다.

 

그동안 죽음을 기다리듯 누워만 있던 환자가 어느 정도 거동을 하자 최씨 집은 잔칫집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소문이 동네에 화제가 되면서 여기저기에서 환자들이 모여들어 최씨 집 사랑채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하룻밤 묵고 지나려던 동네에서 최씨 부인을 돌보느라 사흘을 보내고 몰려오는 동네 사람들을 봐 주느라 이틀을 더 지내고 나서 나는 야반도주하듯이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마을을 빠져나오고말았다. 

 

어찌나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지 먼 동네까지 소문이 퍼져 환자가 끝이 없어 보이는 데다가, 달라고 하지도 않은 땅을 주겠다고 했던 최씨가 점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마지막 날 밤에는 내가 잠이 들지 않은 줄도 모르고 옆방에서 한숨을 쉬며 “죽일 놈, 죽일 놈” 하며 원망을 했다.

 

나중에 들어 알게 된 이야기지만 최씨는 땅을 주겠다던 마음이 변한 자신을 죽일 놈이라며 자책하였다고 한다. 흔히 급한 환자를 둔 가족들은 다급한 나머지 술자나 의사가 바라지도 않는 약속을 하고 상황이 바뀌면 그 약속을 없었던 일로 해 주기를 바란다.

 

만약 그들이 주겠다고 약속한 대로 내가 다 받았다면 아마 나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런 터무니없는 대가를 받은 적이 없다. 누구 하나 주려고 한 사람도 없었지만 혹시 누군가 주려 해도 타당한 대가가 아니므로 당연히 받지 않았을 것이다

 

[출처] 병 고쳐 주고 야반도주한 사정|작성자 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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