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며 죽으려고 용쓰는 사람들
술자리를 자주 할 수 있는 연말연시이지만 나에게는 술 한 잔 하자며 불러낼 지인도 없고 설사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핑계를 대서든 피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소주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두세 잔을 더 마시게 되면 호흡하기가 거북해지고 체온이 떨어져 몸이 으실으실 추워지는 등의 불쾌한 증상들이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청소년 시절에는 이와 같은 현상이 나이가 어려서 그러려니 했었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술을 못 마시면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원활하지 않아서 발이 넓은 대인 관계를 맺어나가는 데에 아무래도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 술을 못 마시면 이런 점이 쬐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술을 마실 줄 모르면 심심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전혀 심심하지가 않지만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하루만 술을 안 마셔도 그렇게 심심한가 보다.
내가 대학을 늦은 나이에 졸업을 하고 신문사의 사진기자로 입사를 했다.
신문사는 상당한 지적능력과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신사적이고, 민주적이고, 세련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신문사 입사 후 어느 조직보다 더 권위주의가 팽배해 있는 비민주적이고 고리타분한 집단임을 알게 되었다. 특히 사흘이 멀다하고 무지막지하게 술을 퍼 마셔대는 직장문화는 술을 못 마시는 나를 매우 곤혹스럽게 했다. 신문사 직원들은 점심식사를 하면서도 각자 반주로 소주 한 병쯤은 숭늉 마시듯 가볍게 비운다. 그리고 퇴근 후 바로 퇴근하는 경우가 없다. 회사 근처의 단골식당을 들러 술판을 벌인다. 그 자리에서는 술을 못 마신다는 이유도 통하지 않는다. 퇴근 후 부장은 으레 부하직원들을 이끌고 술집으로 가서 술판을 벌였으며 부하직원들이 술판에 참석하는 것은 업무의 연장처럼 여겨졌다.
내가 신문사에 입사한 후 몇 개월간은 잦은 술자리를 버텨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견디지 못할 정도의 후유증이 나를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직장을 그만 두는 것만이 내가 살 수 있는 길 같기도 했으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쉽게 그럴 수도 없었다.
입사 후 초여름의 어느 날 부원들끼리 야외에서 회식을 가졌다. 회식이라는 것이 다름 아닌 술판이 아닌가?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폭탄주가 서너 차례 돌아갔다.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에게 건네오는 폭탄주를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그리고는 뻗어버렸다. 문제는 내가 뻗어버린 채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데에 있다. 인사불성인 채로 뻗어 있다가 위 안으로 들어간 알코올의 작열감으로 발광을 하는 것이다. 알코올이 나의 속을 확 뒤집는 바람에 견디지 못해 길길이 날뛸 때는 누구도 제압을 못할 정도라고 한다. 술자리는 나로 인해 난장판이 되는 것이다.
나의 손에 잡히는대로 이것저것 모두 집어던지고 잡아당기고 하다가 속에 있는 것을 깨끗이 토하고 나면 나의 광적인 발버둥은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연이어 두 번이나 있었다. 그 사건들은 부장을 비롯한 모든 부원들에게 나에게 술을 권하는 행위는 지극히 위험한 짓임을 터득시켜주었다. 그 이후로 내가 다니는 신문사의 직원들은 어느 누구도 술자리에서 나에게 술을 권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며 내가 스스로 술을 한두 잔을 마시려고 하면 오히려 그들이 겁을 내는 상황이 될 정도였다.
나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자랐다. 내가 살던 산골 마을의 사람들은 누구나가 술을 잘 마셨다. 힘께나 쓰고 덩치가 큰 사람들은 술을 더 잘 마셨다. 그러고도 끄떡없이 버티고는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아주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간경화나 뇌졸중으로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가고 말았다. 그 중에는 나의 친척도 있고 친구의 부친도 있었다.
서울로 올라와서 직장생활을 해보니 역시 직장 내의 모든 사람들도 술을 좋아했고 늘 술을 즐겨 마셨다. 기자라는 직업은 취재하기 위해 외근을 많이 하므로 바깥에서 타사의 언론사 기자들과도 자주 만나고 그들과도 자주 교류를 한다. 그래서 타 언론사의 회사 내 사정도 훤히 알게 되어 있다. 다른 언론사의 사람들도 술을 좋아하며 유독 술을 잘 마시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어느 집단에서건 공통적인 사정임을 알게 되었다. 사진기자 15년을 하는 동안 내가 몸담고 있던 신문사와 타 언론사의 직원들 중에 술이 원인이 되어 죽어 간 사람들을 여러 명 보았다. 내가 신문사 입사를 했을 때, 나의 첫 번째 데스크였던 부장은 부원들을 이끌고 이집저집을 들락거리며 술판벌이기를 좋아했었다. 그는 국장까지 역임하다가 정년퇴임을 했지만 그 후 3년만에 60을 갓 넘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술을 체질적으로 못 마시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게 되면 나이 50을 전후해서 사망하게 되는 것 같다. 나처럼 술을 못 마시는 고향의 선배 한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것이 두려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술을 마셔대다가 50세의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의 고향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일찌감치 알코올에 중독되어 폐인의 생활을 하다가 40세를 못 살고 죽어 간 사람들도 여러 명이나 있었다. 만약에 내가 체질에 맞지도 않는 술을 억지로 먹어가면서 직장생활을 했더라면 나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을 것이다. 술은 체질적으로 맞든 안 맞든 습관적으로 마시게 되면 간을 망가지게 하여 결국은 제명대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죽게되어 있다.
체질적으로 술을 잘 마시느냐 못 마시느냐는 알코올을 해독할 수 있는 효소를 만들어내는 간의 능력에 달려 있다.
우리가 술을 마시면 주로 간에서 대사를 하게 된다. 간에서 합성된 알코올탈수소효소가 알코올을 아세트알데히드로 전환한다. 아세트알데히드는 독성이 있는 물질로서 이것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간은 아세트알데히드탈수소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를 아세트산으로 전환시킨다. 아세트산은 TCA회로라는 물질대사 경로를 통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를 하여 체외로 배출하게 된다.
체질적으로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독성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아세트산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효소가 선천적으로 모자라거나 아예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대체로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의 경우 이 효소가 부족하여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술이 약한 이유가 된다.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이 간에 축적되어 있다가 혈액으로 흘러들어 독성을 나타내면 얼굴을 빨갛게 달아오르게 하며, 구토증과 두통, 부종, 탈수의 증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세트알데히드는 간에서 지방산이나 중성지방을 분해하는 기능을 방해하여 체질적으로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술을 자주 마시게 되면 간에 지방질이 축적되는 지방간이라는 질환을 생기게 한다. 지방간은 아무런 증상이 없다. 지방간이 점차적으로 두꺼워지게되면 간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해 간의 기능이 떨어지며 급기야는 간경변으로 사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체질적으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아세트알데히드를 아세트산으로 전환시켜주는 효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웬만큼 술을 마셔서는 표시가 나질 않는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간은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남을 믿고 술을 마구마구 마셔대는 것이다.
우리의 몸 안에서 생명유지를 위해 만들어지는 호르몬, 효소 등의 모든 물질들은 일생동안 일정양만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 선천적으로 아무리 술을 잘 먹는 체질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잦은 과음은 알코올을 분해시키는 효소를 조기에 고갈되게 하며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간이 굳어가는 간경변에 의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선천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술을 잘 마실 수 있는 체질이라 해도 술을 습관적으로 마시게 되면 그 사람의 간에서의 알코올 분해능력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세트알데히드가 간에서 분해되지 않아 혈액으로 흘러들어 여기저기서 독성을 일으키게 되면 간과 신장은 물론 몸이 전체적으로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아세트알데히드의 독성은 우선 간에게 가장 큰 타격을 가해 알코올성 간염이나 지방간을 유발시키며 간염이나 지방간을 방치하면 간암이나 간경변이 되는 것이다.
습관적인 과음은 또한 심혈관계를 망가지게 하여 심장질환과 뇌졸중같은 무서운 질병을 앓게 하거나 당뇨병이나 췌장암에 이환될 수도 있다. 술이 그 자체로서 해롭기도 하지만, 술과 함께 필요 이상으로 먹어대는 기름지고 열량이 높은 안주가 여러 가지의 대사장애를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술과 함께 먹는 안주는 몸을 망가지게 하는 최악의 식품이며, 이런 식품을 매일같이 체내로 쑤셔넣으면 몸이 견뎌내질 못하는 것이다. 술을 마시다가 그냥 죽는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겠지만 습관적인 과음의 끝은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의 고질적인 질병에 걸려 무시무시한 병마에 시달리게 하다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술을 먹고 객기를 부리다가 죽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선천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에게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거나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부득부득 마시다가 간에 축적된 아세트알데히드가 급성의 독성을 일으켜 사망하게 하는 것이다. 술을 한 잔만 마셨는데도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나처럼 아예 술을 입에 갖다대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한 잔의 술도 독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이나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들에게 술을 강제로 마시게 하지 말아야 한다. 흔히 술 잘 마시는 사람들은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도 배려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술을 강제로 마시게 하여 죽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들이나 여성들에게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려고 작정하는 짓이다. 많은 사람들이 술선배랍시고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들에게 "술은 자주 마시다보면 잘 마실 수 있게 된다"라는 허튼소리로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위험한 사람들이다. 이런 허튼소리에 현혹되어 술 잘 마시는 체질로 개선시켜 보려고 용쓰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다 죽는다.
[출처] 술 마시며 죽으려고 용쓰는 사람들|작성자 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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