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서 생활 우공 신보선
오늘은 7월 20일 목요일, 한국을 떠나온지 열흘이 넘었지만 기분으로는 한 달도 더 지난 듯하다. 지금 칠레는 겨울이지만 우리나라의 겨울만큼 혹독하게 춥지는 않다. 내가 칠레에 오고나서 아침과 저녁 기온은 섭씨 6도 내지 7도, 낮기온은 10도 이상을 유지하여 겨울같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런데 어제부터는 기온이 내려가 쌀쌀하더니 오늘 아침은 장갑을 끼고 가게로 나오는데 손이 시렸다. 거리에 세워둔 차량들의 앞유리에 성에가 끼었을 정도면 영하의 기온이 아닐까 했는데 가게에 도착하여 인터넷으로 기온을 확인해보니 4도로 나왔다. 4도의 기온이 이렇게 추웠던가?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는 가게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언덕 밑의 아주 낡은 집이며 잠만 잘 수 있는 방이 여러 개가 있다. 집 주인은 이런 방을 빌려주고 세를 받고 있다. 한국의 쪽방을 본 적이 없지만 내가 잠을 자는 방이 쪽방이 아닌가 한다. 삐거덕 거리는 조잡스런 침대 하나에 잡동사니를 둘 수 있는 선반 하나 놓여 있고 체구가 작은 내 몸 하나 운신하기에도 좁은 방이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쪽방에 머무는 사람들이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나 허술하기 짝이 없어 오늘 아침처럼 추운날엔 덜덜 떨면서 샤워를 해야만 했다. 샤워 후에 쪽방으로 들어가 타올로 물기를 닦아내면서 오들오들 떨어야 한다. 난방장치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추운 날엔 쪽방은 냉기로 가득차 그야말로 냉동하우스이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가게로 나왔다. 가게에는 가스 난로가 있기 때문에 이걸로라도 몸을 녹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스 난로는 보턴 하나로 작동할 수 있으나 칠레의 가스 난로는 가스밸브를 열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야 한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뭐 하나 안 불편한 게 없다.
내가 머물고 있는 쪽방의 주인이 그들이 쓰는 주방을 함께 쓰도록 허용하여 주인의 주방에서 반찬을 대충 만들어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데 주방의 가스레인지 또한 밸브를 열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방식이라 역시 불편하다. 어제는 취업비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서류를 공증하는 사무실에 갔더니 여자 직원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수십 년 전에 없어진 타이프라이터로 문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보았었다.
칠레의 겨울은 한국의 겨울보다 확실히 덜 춥지만 체감으로 느끼는 추위는 한국보다 더 춥다. 한국을 떠나올 때 방한복을 챙길까 하다가 짐이 너무 많아 두고 왔는데 얇은 점퍼만 입고 있으려니 저온의 냉기가 옷 안으로 스며들어 보온이 되질 않아 체온이 떨어지는 것이다. 아마 내가 예상하기로는 앞으로 기온은 점점 떨어질 것이다. 이곳의 8월은 우리나라의 1월에 해당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겨울은 소한 대한이 있는 1월이 가장 춥지 않던가.
이렇게 육체적으로 추위에 떨고 있는데 마음도 몹시 춥다. 내가 김선생의 가게에서 오늘로서 3일째 홀로 서기를 하고 있으나 나에게 침을 맞으로 온 환자는 한 명 밖에 없었다. 건강보조식품은 김선생이 고용한 여직원이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어서 12시간 이상을 가게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냉기로 가득찬 쪽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아침 대충 챙겨먹고 나오고는 하는데 이런 생활이 나로서는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내가 한국에서 나올 때 충분한 돈을 쥐고 왔더라면 좀 더 좋은 숙소에서 잠을 잘 수 있었을 테지만 이렇게 열악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돈을 적게 갖고 나온 게 후회스럽다.
김선생은 빨리 자리를 잡아 수입이 어느 정도 생기면 숙소를 좋은 곳으로 옮기라고 하지만, 좋은 숙소로 옮겨갈 정도의 수입이 언제쯤 생기느냐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돈도 거의 바닥 났기 때문에 지금 거꾸로 매달려 있는 심정이라고 한 것이다. 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상태를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더구나 언어소통이 안 돼 이곳의 따뜻한 사람들과 대화를 못해 더 춥다. 이 놈의 언어는 언제쯤 해결될 것인가? 아무튼 지금은 모든 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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