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學傳問/우공 신보선

칠례의 김선생

天上 2018. 8. 30. 08:24

                                                                                                                                                                 

칠례의 김선생

칠레로 온지 2개월도 채 안 되어 결국 귀국하기로 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칠레로 오는 것이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기왕에 왔으니 일이 잘못돼서 되돌아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결국 돌아가기 위해 보따리를 싸는 일만 남은 것 같다. 꾸리꼬에 있는 김선생과 상의한 결과 그도 내가 돌아가는 편이 좋겠다는 쪽으로 결론내렸다. 김선생은 침 맞을 환자들이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이상하다고 하면서 칠레도 최근에 경제사정이 갑자기 안 좋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덧붙여서 그는 나에 대해서 정확하게 모른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이 지금의 결과를 초래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내비췄다.


김선생은 8년 전에 사업을 하기 위해 칠레로 왔지만 하던 일이 실패하여 무일푼이 되었을 때 패잔병처럼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싫어서 어떻게라도 이곳에서 살아남으리라는 오기를 품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에 있을 때 그의 모친이 오랫동안 앓고 있는 지병을 치료해주기 위해 침술을 배웠던 적이 있었는데, 칠레에서 건축일을 하면서 데리고 있던 현지 근로자들의 몸이 불편할 때 침술로 해결해주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침술의 좋은 효과를 체험하고는 했었는데 그가 사업에 완전히 망하고 나서 무엇으로 여기서 살아남을까를 생각하다가 침술원을 해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8년 전, 김선생은 침상 하나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비가 오는 날엔 빗물이 스며드는 허름한 가게를 빌려서 그곳에서 침술원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엔 자기가 데리고 있었던 노동자들이 종종 침을 맞으러 왔었고 그들이 소개를 해주는 사람들에 의해 환자들이 종종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곳의 작은 도시에서 침술원을 하겠다고 시작했을 당시에는 현지 주민들이 침술로 질병을 치료한다는 생각들을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은 침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몇 사람들이 김선생에게 침을 맞으면 불편했던 몸이 좋아지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해 찾아오는 환자들로 인해서 배는 굶주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김선생은 8년 전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민박집에서 숙소를 정하고 거기서 6년 동안 기거를 했다고 한다. 다행한 것은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의 불편한 몸의 여기저기를 침으로 치료해 주었더니 수 년 동안 하루 세끼의 식사를 무료로 제공받았다고 한다. 그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는 3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내가 만날 수는 없었다.


김선생이 처음 침술원을 시작했을 때 자기에게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침을 놓아줄 때마다 좋은 결과들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에게 특별한 침법이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사용하는 침술은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블로그를 통해서 엉터리 침법이니, 형편없는 침술이라고 경시하는 그런 침술로 김선생은 이곳의 환자들에게 침 치료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침법이 효과가 없을 것임에도 김선생에게는 유독 효과들이 발휘되었던 이유를 그 나름대로 설명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그는 환자들에게 침을 놓으면서 모든 정신을 침 놓는 곳으로만 집중을 하고 반드시 낫게 하리라는 정성을 쏟았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자기의 몸 안에 있던 기가 환자에게로 전이가 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는 것이다. 김선생은 기공수련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침이라는 바늘을 매개로 하여 기를 전달한다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애매한 설명을 했다. 김선생은 이것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인 것처럼 여기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김선생의 지극정성을 침을 맞고 있는 환자가 느꼈을 것이고, 이런 느낌은 환자로 하여금 치료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플라시보(placebo)의 강력한 효과이다. 


의학에서의 플라시보 효과는 대단히 중요하다.

의사들은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든지 환자에게 플라시보의 효과를 유발시킬 수 있다면

그가 가진 또 다른 능력이 될 수도 있다.

환자들의 의사들에 대한 신뢰감은 여러 가지의 양상으로 가질 수 있다.

의사의 외모, 의사의 언행, 의사의 진료태도, 의사의 실력 등을 통해서 신뢰감을 가질 수 있는데

환자들의 의사들에 대한 신뢰감이 형성이 안 되면

어떤 질병이 되었든 치료되기가 어렵다. 

환자들의 의사들에 대한 신뢰감이 곧 플라시보 효과를 유발시킬 수 있으나 

환자들은 자신들에게서 생기는 플라시보의 효과를 전혀 눈치챌 수 없다.

환자들 자신들이 전혀 눈치 챌 수 없는 플라시보 효과가 그들에게 일어남으로써

그들의 몸 상태는 우선 면역력이 높아지고 신경시스템들에 의한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블로그의 칼럼을 통해서 누누히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우리 몸의 질병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대한 질병까지

모두를 면역세포들이 고치며,

신경계에 의한 호르몬 및 신경전달물질이 원활하게 작동해야

정상적인 몸 상태가 유지되고 특히 면역계가 제대로 작동을 한다.


8년 전의 김선생이 처해졌던 상황에서 그의 환자들에 대한 침 치료 행위는 아주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치료효과의 좋고 나쁨에 따라 그가 살아남느냐 그렇지 못하는냐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환자들을 대상으로 침을 하나하나 꽂을 때마다 기필코 환자를 고쳐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환자에게 전이가 되었을 것이다. 환자들은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들의 낌새가 어떤지를 단박에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의 마음가짐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침쟁이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실력은 개떡같다 하더라도 환자를 고치겠다는 자세가 지극정성이면 하늘이 돕지만, 자기가 아무리 침술의 대가라 하더라도 자만심으로 침을 놓으면 하늘이 돕지 않는다. 


김선생은 침술과 겸하여 건강보조식품과 같은 물품들을 침술원 안에 구비하여 놓고 판매했다. 내가 김선생을 알게 되면서 그는 영업적 마인드가 특출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말을 설득력 있게 잘하는 능력을 가졌고 게다가 상냥하고 목소리까지 좋아서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표정을 가진 나와는 비교가 안 되는 인물이다. 김선생은 형편없이 작은 공간에서 침술원을 시작하여 날로 형편이 좋아지자 용기를 내어 지금 내가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장소로 가게를 옮겼으며, 다행스럽게도 건강식품을 찾는 고객들과 침 치료를 받을 환자들이 꾸준하게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선생이 침술원을 하면서 건강식품의 판매를 함께 시도했던 것은 좋은 전략이었던 같다. 몸이 불편해서 침을 맞으러 온 환자들에게 건강식품을 먹으면 더 좋아질 수 있다며 물품구매를 유도할 수 있고, 반면에 불편한 몸의 개선을 위해 건강식품을 사러 온 구매객들에게는 침을 맞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선생은 이곳에서 6년 동안 영업을 하면서 더 큰 도시로 진출하겠다는 결심대로 2년 전 꾸리꼬라는 도시에 또 하나의 가게를 신설하여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으며 이곳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곳은 정리하기가 너무 아까운 곳이라 점원을 고용하여 건강식품만을 판매하고 있다. 


김선생이 나에게 이곳의 가게에서 침술원을 할 것을 제의했을 때 많은 고민을 했으나 한국에서 갑자기 침술을 배우려는 수강생들의 발길이 끊겨 어려운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고 이곳 칠레로 왔는데 두 달이 다가오는데도 침을 맞으려는 환자들이 전혀 오질 않고 있는 것이다. 김선생은 이 현상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나도 자기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동업을 제의해 나에게 가게를 맡겼는데 나에 대해서 판단을 잘못했다는 것을 실토했다. 즉 나는 가게를 운영할 만한 영업쪽의 능력이 안 됨을 시사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질을 갖고 있는데 김선생의 기질은 사람들을 설득해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가졌고 어떠한 어려운 환경도 극복할 수 있는 뛰어난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며 성장하면서 그러한 적응력을 가지게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가난한 농촌의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김선생은 이곳의 좋지 않은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고려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칠레에서의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는 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했던 말이었다. 사실 나는 처음엔 그랬다. 그러나 한 달을 버티고보니 적응력이 생겼다. 문제는 침술원으로 침 맞으러 오는 환자들이 전혀 오지 않는데 대한 스트레스와 좁은 공간에서 추위에 떨며 대화할 수 있는 상대도 없이 갑갑하게 하루하루 버텨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러나 김선생은 지금부터라도 침을 맞으러 오는 환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여기에서 침 치료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한 것 같다. 김선생의 말로는 나의 기질은 공부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고, 가르치는 일을 하기에 적절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 글을 쓰며 가르치는 것을 못하게 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책을 읽게 하고, 글을 쓰게 한다면 그럴 능력이 전혀 없으므로 죽었다 깨어나도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자기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자신의 상품을 구매하도록 설득하고 침 맞을 것을 권유하는 일, 즉 마케팅의 능력 면에서는 자신만만하며 그런 일이 즐겁기까지 하다고 했다.


결국 김선생은 처음에 가졌던 나에 대한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나에게 털어 놓은 것이다. 나의 침 실력이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만으로 나를 이곳으로 오게 했는데 침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기질이 문제였음을 그가 간파한 것이다. 사실인즉 그가 나를 잘 본 것이다. 내가 만약 이곳에서 침술원이 잘 된다고 하더라도 책을 읽을 수 없고 가르치는 일을 못하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 즉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을 못해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라도 힘들어 할 것이다. 능력도 안 되면서 막연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해 안달한다면 부질없는 짓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충분하게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을 못한다는 것은 불행이고 스트레스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공부를 하여 나의 머릿속에는 방대한 지식들이 쌓여 있다. 이와 같은 지식들을 책으로 옮기고 싶으나 재정적 형편으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이런 나의 오랜 염원을 김선생이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기로 했다. 김선생은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자기가 모두 지원하겠다며,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동안 미루어 왔던 책 쓰는 일을 시작하라고 했다.

 

며칠 후에 나는 귀국한다. 내가 칠레로 와서 김선생과 함께하는 동안 김선생은 나의 다른 모습을 보았음이 분명하다. 그렇듯이 나 역시도 김선생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이곳에서 침술원을 하면서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 두 명에게 매월 일정액의 보조금을 지원했으며, 꾸리꼬로 옮겨가면서 그 곳에서도 생계가 곤란한 학생 두 명에게 매월 장학금을 대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는 연식이 25년 된 자동차가 있고 가게의 다락방에서 불편한 기거를 하고 있다. 고급차를 살 수 있는 능력도 되며, 집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었지만 10년 후에 몸이 불편한 많은 환자들을 위해 뜻있는 일을 하려는 목적 때문에 돈을 억척스럽게 모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수전노가 아님을 강조했다. 김선생은 정말로 가치있는 일에만 돈을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출처] 칠레의 김선생|작성자 우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