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ity/聖經硏究

성령의 열매중 양선의 열매 / 갈 5:22

天上 2014. 6. 19. 02:51

성령의 열매중 양선의 열매 / 갈 5:22


갈라디아 5장 22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경에 양선이란 말은 이곳 한군데에만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GOODNESS 라고 기록되었으니, 세상 말로는 해설할 수가 없습니다.

양선은 사람 보기에는 옳지 않은 일 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옳은 일을 양선이라 합니다.

자비는 대인 관계이고, 양선은 대신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가 아니고서는 대신 관계를 이루지 못합니다.

민수기 25장의 비느하스의 일이 바로 양선입니다.

입다의 일도 마찬 가지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끔직한 일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기쁜 일이므로 양선이라 말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령 받은 자는 사람 보기보다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살아가기를 노력하면서 살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 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양선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만 시쁘시게 하면서 살아가십시다.

할렐루야 !


양선의 열매(갈 5:22-23, 단6:1-4)

선(良善)이란 말은 ‘어질고 착하다’, 또는 ‘도덕적으로 뛰어남’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Goodness”, ‘선량, 친절’이고, 헬라어로는 “아가도쉬네”(agathosune)인데,

‘착함, 올바름, 너그러움’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양선의 열매란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람이 선하게 살고,

너그럽게 산다는 말입니다.


善한 일을 위하여 창조된 人生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다 목적이 있어 만들어졌습니다.

전구는 빛을 발하고, 시계는 시간을 알리기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사람은 왜 만드셨을까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엡 2:10, 딛2:14)

물건이 만들어진 목적을 상실했을 때는 가치가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지 않으면 무가치한 인생일 뿐입니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목적대로 “선한 일”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선하게 사는 삶이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첫째,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요, 거짓말 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정직은 예수님의 성품이요, 거짓은 마귀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출20:16)고 하셨고, 정직한 사람의 후대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시112:2)

정직하게 산 사람은 삶의 위기에서 반드시 보호를 받습니다.

본문의 주인공 다니엘이 그렇습니다. 대적들의 모함에 결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직에 있으면서 거짓과 타협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을 뒷조사한 대적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4) 정직은 단기적으로는 행복의 비결이고, 장기적으로는 형통의 비결입니다.

정직에 있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솔직함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다윗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너그럽게 사는 것입니다.

양선”의 뜻은 ‘너그러움’입니다. 너그러움은 ‘용서’하는 삶입니다.

다니엘은 자기를 고소하여 죽이려 했던 대적들을 용서했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위대함이요, 훌륭한 성품입니다.

우리는 원수를 용서한 다니엘에게서 예수님을 연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과 비유 말씀을 통해 용서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면서 까지 원수들의 죄를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베드로가 주님께 찾아와 형제의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질문했을 때,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마18:2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100 데나리온 비진 자’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 결론으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5)고 경고하셨습니다.


아직도 마음속으로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3) 말씀했습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용서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양선의 열매를 ‘‘정직과 용서’의 삶을 살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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