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ity/聖經硏究

삼위일체 교리 쉬운 이해

天上 2014. 6. 26. 13:14

삼위일체 교리 쉬운 이해

1.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중요성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는 단지 교회 내에서 성도들을 가르칠 때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때에도 자주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신자들에게는 아주 믿기지 않는 일이며, 사실 교회 내의 많은 성도들도 이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삼위일체 교리는 유대인들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무슬림들과도 관계가 있다. 특히 무함맏은 꾸란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거부했는데, 그는 꾸란에서 삼위일체를 잘못 이해하고 완전히 왜곡시켜 무슬림들에게 가르쳤고,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무수한 무슬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도록 하는 빌미가 되었다.

꾸란에서는 삼위일체를 "성부(하나님 아버지)와 마리아(예수의 어머니)와 예수 그리스도"로 표현하며, 기독교인들이 이 셋을 하나님이라고 말한다고 비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무함맏 당시 메카의 아랍 우상 숭배(해와 달과 별들에 대한 우상 숭배)와 연결되어 있다(꾸란-수라 5:9 "하나님이 메시아와 동일시되어질 수 없다. 하나님이 곧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 하는 그들에게는 저주가 있으리라 가로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벌을 막지 못하니 그 분의 뜻이라면 마리아의 아들 예수와 그의 어머니와 세상의 모든 것이 멸망하리라” 내 블로그에 있는 이슬람 연구 참고).

이처럼 삼위일체는 신약 시대 전체 세계 역사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삼위일체 교리는 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이며, 많은 오해를 일으키기도 하고, 심지어는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가르침 때문에 이단이 발생하기도 한다.

 

2. 삼위일체란 무슨 뜻인가?

3 위(位)란 세 인격을 의미한다. 1 체(?)란 한 몸을 의미한다.

즉 한 분 하나님 안에 세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신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교회에서 가르칠 때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 '그냥 믿으면 나중에 알게 된다'는 식으로 무조건적으로 믿으라고 가르치는 것은 오히려 성도에게 부담만 안겨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마치 삼위일체를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 믿고 있는 것을 믿지 못하는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지만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고 포기하고 믿는 것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이것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부분 자연계에 있는 현상을 비유로 삼아 설명하는 것이다. 세 잎 클로버나 햇빛이나 물의 순환을 가지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고,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역할을 번갈아 가며 하는 것으로 설명을 하는 경우까지도 있다(양태론-이단). 또 하나의 방법은 수학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1+1+1=3일 수 밖에 없다고 이해하지만,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삼일일체란 덧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곱셈을 말하는 것으로 1*1*1=1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삼위일체 교리를 논리적으로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란 어려운 문제인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성경은 삼위일체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성경은 삼위일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사람들을 성경을 읽을 때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성령에 대해서도 별 큰 어려움 없이 삼위일체를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다. 물론 내가 말하는 자연스러운 이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토론을 일단 배제한 것이다. 그렇다면 삼위일체를 교리적으로 이해시키려는 방법보다는 성경에서처럼 문제의 발단이 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하여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요한복음의 전체 내용은 바로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래의 글이 길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읽기를 바라며, 특별히 삼위일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부분을 자세히 읽기 바란다.

 

3. 삼위일체를 성경적으로 이해하는 방법

성경의 방법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 자연계에서 비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방법을 택한다.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은 간단한 몇 마디로 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한 소개는 반대로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가 가장 문제의 오해의 소지가 적다. 그 본인은 이것이 하나님을 오해 없이 가장 적절하고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본인이 쉽다고 한 표현은 전도와 선교의 어려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1)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이해

먼저 성경은 먼저 하나님을 한 분으로 소개한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한 번도 예외가 없다. 하나님을 한 분으로 이해하는 것은 인간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시키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과제는 아니라고 본다. 설령 불신자의 배경이 다신교 사상을 가지고 있는 지역일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숭배하는 신이라고 해야 고작 우상으로 표현되는 피조물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섬기고 예배하는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사실 하나님에 관한 성경의 계시를 정리하는 것은 여기에서 다루려는 주된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다루지 않았다.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주제는 여기에서 다루려는 삼위일체의 주제와 많이 다른 것이다.

 

2)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

항상 삼위일체에 관한 모든 문제의 초점은 결국에는 예수님에 관한 이해와 소개하는 방법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삼위일체를 어려워하는 문제도 바로 이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 교회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교지에서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느냐 아니냐에 관한 문제도 바로 예수님을 얼마나 잘 증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핵심이며, 전도 내용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 주제를 본인이 다루는데 있어서 성부와 성령에 대한 내용보다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점에 집중하고 있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성경은 예수님을 무조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성경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지는 것은 첫째는 그의 메시야(즉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메시야는 히브리어, 크리스토스는 헬라어) 직분과 관련되어 있다. 둘째는 성육신(인간의 몸으로 오심)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은 예수의 본래의 상태를 전제로 한 표현이다.

예수의 본래의 상태(본래의 존재)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요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이 말한 태초에 있었던 "말씀"은 창 1:6 "하나님이 말씀하시되"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태초에 있었던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께 속해 있으면서도 구별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과 분리된 존재가 아닌 하나님과 하나, 즉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은 그의 본래의 존재를 말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또 다시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한 인격적 존재로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개한 것은 양태론과 삼신론(이슬람의 꾸란에서 오해하는 육체적 삼위일체설을 포함)의 위험으로부터 우리의 연약한 지적 능력을 보호하는 역할을 충분하게 감당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개를 한다고 해도 그 말씀을 인격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인격적인 존재로 세상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감히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인격)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개할 수 있다(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예수의 영원하고도 정확한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계 19:13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리워지더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의 근본이신 분"(계 3:14)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한 구절들이 여럿 있는데,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골 1:15)이시다. 하나님이 온 우주만물을 자신의 "말씀"으로 창조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다"(창 1:3). 하나님이 말씀으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 말씀의 속성을 또한 믿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과 무한한 창조의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잠언 8:22-31은 하나님의 지혜(잠 8:1)이 곧 창조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께 영원토록 속해 있으며 항상 함께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지혜가 인격적인 존재이며 창조주라고 불려지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성경 구절에 해당한다. 잠 8:22-31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이 표현은 단지 창조주로서만 아니라 메시야로서도 세움을 받았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음)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무에서 유 창조에 관한 가장 분명한 구절)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을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양육받는 아이가 되어'로도 해석할 수 있음)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만일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믿는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혜에 의해서

 

창조된 것을 믿어야 한다(시 104:24).

잠언 8장의 마지막 내용은 예수님의 자기 인식에서 아주 잘 나타나고 있다.

요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잠언에서 "창조자"는 '양육받는 아이"로도 해석될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혜의 관계'를,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의 관계'로 표현한 것과 아주 잘 어울린다.

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워져야 했는가?

 

(성육신과 메시야 칭호)

요한복음 1장과 잠언 8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이시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시며,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시다. 잠언 8장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세움을 입었다고 말한다. 이 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 구절은 시 89:25-29이다. 시 89:25-29 "내가 또 그 손을 바다 위에 세우며 오른손을 강들 위에 세우리니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저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고 저로 더불어 한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또 그 후손을 영구케 하여 그 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이 구절은 다윗에게 한 메시야 언약과 관계가 있다. 시 89:2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을 부었도다" 이 모든 구절들은 단지 다윗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다윗의 후손", 메시야에 관계된 언약이다. 시 89편은 여전히 보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장자로 세움을 받은 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하나님은 누구와 언약을 세운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점에 대해 시 2편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시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시 2편이 가리키는 메시야가 다윗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시 110:1과 이것을 통해 유대인들의 메시야 사상에 대한 오해를 종식시킨 예수님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마 22:44; 막 12:36; 눅 20:42; 행 2:34-35).

시 89:27에서 말한 "장자"란 나머지 모든 자녀들을 전제하며 대표하는 말이다. 다수의 아들이 없이 독자만을 놓고 장자라고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메시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을 자녀로 삼기 위해서 그를 장자로 세우시고,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히 1:5-6 맏아들, 즉 장자에 관한 내용, 히 2:10-17 메시야가 많은 형제를 영광에 들어가게 하며,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인간이 되심으로써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음).

히브리서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메시야의 세 직분(왕, 제사장, 선지자) 중에서 구원자로서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직분은 단연 대제사장 직분이다(히브리서 5장-10장).

 

빌 2:6-11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한 분)이시며, 하나님과 동등이시다. 하지만 그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특별히 장자로 불려졌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메시야가 되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메시야가 되셔야 했던 이유는 단순히 유대인의 메시야 사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롭고 강력한 통치자로서의 왕"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 53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과 형벌을 받고 죽으심으로써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장 중에서)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수 많은 오해와 비난과 모욕과 고난과 무한히 낮아짐과 죽음을 거절하지 않고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이다.

 

빌 2:6-11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기까지의 설명에서 삼위일체를 불신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지가 모두 드러났다. 삼위일체의 문제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도, 무슬림들에게도, 기타 모든 불신자들에게도 동일한 문제이다. 예수를 메시야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한다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이해하는 것은 거의 다 해결된 문제인 셈이다.

만일 메시야로 오시는 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무수히 더 많은 오해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메시야와의 관계를 참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유대인이 메시야에 대해 오해하는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개가 배제된 메시야는 단순히 왕이나 제사장과 같은 존재로 오해되기 쉽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이란 표현도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이 배제되면 올바른 이해가 불가능하다. 인간의 지적 능력의 한계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란 표현은 단순히 우리 인간들의 말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전달한 메시지와도 구별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표현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졌다는 표현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었다는 것으로 오해될 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메시야와 하나님과의 직접적이고 인격적이며 친밀하고 동등한 관계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인격과 창조의 능력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인격과 생명력과 능력을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이 되었다는 표현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고, 그 분이 우리와 함께 된 분이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메시야이심을 정확하게 믿게 되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신 예수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성육신, 즉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이 예수님의 신성에 어떤 제한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셨어도 동일하게 하나님과 하나이시다.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 10:38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요 14:10, 11, 20; 17:21, 23 참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이시다. 계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요일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사 9:6-7 참고

3)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서의 성령에 대한 이해

성령에 관한 설명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이 영적인 존재이며 또한 사람에게도 영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과 인간의 영에 대한 역할은 고전 2:11-12만큼 잘 설명된 부분은 없다. 고전 2:11-12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또 성령에 대한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이다(롬 8:9; 빌 1:19; 벧전 1:10-12; 요 1:32-34; 갈 4:6; 고후 3:17-18; 행 16:6-7 등). 다시 말하면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 되게 한다(요 3:34). 하나님은 인간과 같은 육체가 아니라 특별한 영적 존재이시다(요 4:24; 사 40:15-17).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의 성령과 인간의 영의 차이점이 있다면, 하나님의 성령은 장소와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충만하심에서 보내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세상의 제한된 물체를 보는 것처럼 보며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존재 뿐만 아니라 그가 주는 놀라운 변화와 생명력을 경험한다(요 3:5-8).

결론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각각의 이해와 설명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우리는 항상 삼위의 관계 속에서 한 분 하나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에서 사람들에게 혼동을 주는 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속성에 관계된 것이다. 하나님을 단순히 한 분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삼위일체의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 또 성령에 대한 이해도 삼위일체를 이해하는데 그렇게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삼위일체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래의 질문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님과 하나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위에서 충분히 제공되었으리라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창조의 근본이며, 하나님과 하나이며, 하나님과 동등이며,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그는 메시야, 즉 구원받을 자의 장자로 세움을

받아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으며,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되셨지만, 죄는 없으시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제사장이 되어 자신의 몸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 주셨다. 그는 영원토록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하면 구원을 얻는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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