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도 떠나고, 인적 끊긴
얼어붙은 산골짜기엔
강추위와 검은 밤과
별빛만 남았다.
고요함만이 깊어지는데,
한 형제가
상의할 것이 있다고 내게 왔다.
무슨 일?
법원에서
지급 명령 통지서가 왔어요.
압류 후속 조치 통보입니다.
오래된
휴대전화 미납 요금입니다.
130여 만원입니다.
어떻게 할래요?
갚겠습니다!
갚아야지!
빚지고 떳떳하게 살 수야 없지.
스스로 자립 기금
모은 것이 있으니,
거기서 갚도록 하세요.”
나는 몇 해 전
그의 벌금을 대납해서
구치소에서 나오게 했다.
하지만
이젠 옛 생활 완전 청산하고
새사람으로 살고 있으니,
본인이 갚도록 했다.
죄는 회개하고,
빚은 갚는 게 도리지!
또 스스로 해결해야 떳떳하고
당당해질 수 있으니 본인 것으로
오늘 밤에 다 처리합시다.
이어서 내가 물었다.
더 남은 것은 없나요?
과거가 발목 잡지 못하게
다 끊어냅시다.
더 있습니다.
200여 만원 빌린 겁니다.
당신이
저축해 놓은 돈이 더 있으니,
바로 처리합시다.
예!
세상에 와서 살면서
빚지는 것과
죄짓고 사는 것이
제일 무거운 짐이니
벗어야 해요.
신세 진 것이 있으면 갚아야 하고,
갚으려 애를 써도
갚을 능력이 없으면
그를 위해서
기도라도 해줘야지.
그게 최소한의
인간 도리가 아니겠나?
진심이라면
주께서 갚아 주시겠지요.
그리하면 당당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고요히 제 길을 가겠지요!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차담을 위해 모였다.
이는 공동체의 일상이다.
먼 산은 새하얀 외투를 입고,
산 위엔
시퍼런 하늘이 정신 나게 한다.
화목 난로는 뜨겁게 살아서
열기를 내뿜는다.
한 형제 한 형제에게 물었다.
빚진 것 있어요?
많이 빚진 이도 있었다.
갚읍시다. 사업의 실패나
도박으로 진 빚도 갚아야 합니다.
신세 진 것도 있으면
갚아야지요.
왜 남들에게 의존하며 사나요?
두 발로 대지를 힘 있게 딛고
떳떳하게 살아야지요.
한 번뿐인 인생 사는데,
후회 없이 당당하고 겸손하게,
고요히 제 길을 가야지요.
목숨 주신 분께도 감사하며!
그러다 눈을 감는 날
눈을 뜨면 천국이 되겠지요!
우리 산마루 공동체
건축 공사 때마다
도와주시는 장로님 생각이 났다.
그분은 외환 위기 때
굴지의 제철 회사가
부도로 넘어가
덩달아 파산하고 말았다.
다 정리하고 나니
빚이 18억원이었다.
새벽 기도 중에
주께서 말씀하셨다.
빚을 다 갚도록 하라!
그는 그날 저녁
가족 기도회를 열었다.
부도 난 소식을
비로소 가족에게 알렸다.
주께서 빚을 갚으라 하시니,
갚아야 한다.
너희 셋은 한 학기는
돈을 벌고,
한 학기는 공부해서라도
대학을 마쳐라.
세 자녀는 그리했다.
아내는 새벽 2시, 4시
찜질방 두 곳 청소를 하며
살림을 꾸렸다.
그리고 10년 만에
모두 갚았다.
장로님은 말씀하셨다.
-그때에 내게 일이
끊어지지 않았어요.
일이 없던 때니 기적이지요-
그 사이 아이들은 대학 마치고,
좋은 믿음에 좋은 직장에서
잘 살고 있더군요.
생각도 못 했던 복을
누리고 삽니다!
이주연 목사
-한 번뿐인 인생,
당당하고 겸손하게-
조선일보 계재
202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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