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실명한 눈이 다시 보여요 1

天上 2024. 1. 19. 06:04

나는 공동체에서

지난 화요일16일새벽기도회 때에 

김OO 형제의 등을 두드리며 

제발 영육이 살아나게 해달라 

믿음의 문, 기도의 문을 열어달라 

애원 애통해 하며 소리쳐 기도했다.  

 

그는 2년 전 공동체에 머물다가 

거리로 나갔다가 뇌종양으로 

행려병자가 되었다.

그리고 재입소한 것이다.  

 

당시 병원서울의료원에서

전화가 왔다. 

무연고로 보호자가 없으니 

내게 연락한 것이었다. 

 

병원을 찾아가 면담을 했다. 

“뇌종양으로 생명이 위독합니다. 

진통제만으로 견딘 것이 기적입니다. 

수술해야 합니다.”

 

“선생님, 수술하면 살 수 있습니까?”

“생존 확률은 10프로 많으면

20프로로 봅니다.”

 

“생존한다면 대소변을

가릴 수는 있습니까?

저희는 능력상 그런 돌봄은

불가능합니다.”

 

“목사님, 수술 후 살아나와도 

의식이 돌아올 확률은

50프로 봅니다.”

 

기막힌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왜 수술을 권하는 것일까?

별난 많은 생각들이 순간 교차했다. 

살아나온 들 어찌한단 말인가!

불법 체류 상태인데

병원비 생활비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생명이 살아있으니 

하늘에 맡기고 수술해 보자 하였다.  

의사 선생님은 MRI 사진을

보여주면서 추가로 설명했다. 

“뇌 상부 쪽은 보시는 것처럼 

80프로는 종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미 한쪽 청각과 시각은 죽어서 

수술로 회복 불가능합니다. 

뇌 수액이 빠지지 않아 빼내고 있습니다. 

수술 위치가 숨골에 가까워 위험합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잘 설명 들었다는 것에 

사인을 하라고 하였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고 따뜻했지만 

나는 절망스런 마음으로

수고하시라는 말과 함께 

서명을 하고 나왔다. 

 

병원문을 나서니, 계절은 푸르른데 

하늘 아래 오갈 데 없는 자처럼 

무기력함과 고독이 밀려왔다.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이 길의 끝은 어디인가!

 

며칠 후, 평창 급비탈에

벌목을 하여 낙엽송을 속아내고 

잡목을 제거하며 산채밭을

만들고 있는데, 소식이 왔다. 

 

수술이 끝났다는 것이다. 

살아서는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감당 못할 앞날이 지친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며칠 후였던가?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기적에 감사하였다.

하지만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이튿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다. 

어제만 해도 너무도

희망적이었는데 

간밤에 뇌수액을 빼는

호스를 본인이 빼버려서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다. 

뇌수액이 밤새 차올랐고, 

어떤 결과가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중환자실은

1회 면회만 가능하였다.  

혹, 죽기 전에 한번은 만나보아야

하지 않을까! 

안정적으로 회복 중이라 하여

찾아갔다.  

중환자실은 심각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김OO 형제는 잠이 들었는지

의식 없이 누워 있었다. 

 

한 손으로 안수하며 

한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하였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기도 중에 내 손을 꽉 잡기 시작하였다. 

나도 용기가 나서 더 기도하였다. 

 

얼마 후, 그의 귀에 대로 

내가 갔다가 다시 올 테니

힘내라 하였다.   

순간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그를 진정시켰다. 

 

얼마 후, 기적처럼 서울의료원에서

나와 일반 자선병원에서

일시 머물다 퇴원하였다. 

의식은 물론 대소변도 스스로 가리며 

일상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기적이다! 기적!

주여 감사하나이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한쪽 얼굴은 신경이

대부분 죽어 일그러지고 

입술이 잘 움직이지 않아

식사가 불편했다.  

왼쪽 눈은 실명하였다.  

다음

 

평창산마루공동체

이주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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